어떡하지?

어떡하지?

글/그림 팽샛별 | 그림책공작소
(발행 : 2017/12/26)

2017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온갖 상념에 사로잡혀 쪼그리고 앉아 있는 아이 머리 위로 아이 몸집보다 몇 배는 더 커 보이는 먹구름이 둥실 떠있어요. 먹구름에는 아이 마음이 담긴 그림책 제목뿐 아니라 각종 숫자, 그림책공작소 출판사 로고까지 스리슬쩍 숨어있습니다. 비는 아이를 향해 퍼붓듯 쏟아지고 있는데 아이가 쪼그려 앉아있는 바닥은 샛노란 색깔로 눈에 띄게 환해요. 심각한 표정으로 걱정하고 있는 아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어떡하지?수업을 마친 고은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쌩하니 달려간 곳은… 화장실이었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화장실은 청소 중입니다. 왜 그러냐고 묻는 아줌마에게 ‘아니에요’라고 답한 고은이는 아직 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빨리 집으로 가기로 했어요. 부끄럼 때문에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고은이는 청소 아줌마 앞에서 작아지고 작아져 아주 조그만 요정 같아 보여요. 쏴아아 시원하게 물이 뿌려지며 깨끗하게 청소되고 있는 화장실은 오줌을 참느라 마음이 조급한 고은이와는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어떡하지?

고은이는 생각했어요. 숫자를 세면 더 잘 참아진다고. 하나둘 숫자를 세면서 고은이가 바람처럼 달려갑니다. (그 와중에 고은이가 다니는 ‘샛별 초등학교’라는 학교 이름이 눈에 띄네요. 흠, 팽샛별 작가 이름이 초등학교 이름으로 아주 잘 어울리는데요.^^)

고은이의 다급한 마음과 달리 오늘따라 집까지 가는 길은 멀고 험난하기만 합니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소모된 칼로리가 누적되어 쓰여있는 육교 계단은 점점 더 오줌이 마려워지는 고은이의 상태 같아요. 길을 막아선 어른들 사이에 낀 고은이가 다급한 마음으로 ‘비켜 주세요’하고 소리쳐 보지만 소리가 들리는지 마는지 다들 무심한 표정으로 느릿느릿 제 갈 길 갈 뿐입니다. 얼굴은 붉으락 푸르락 다리는 배배 꼬여가는데 오늘따라 신호등은 왜 이렇게 초록 불이 들어오지 않는 걸까요? 고은이처럼 화장실이 급해 보이는 신호등 빨간 불이 웃음을 자아냅니다. 초록 불이 켜지면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갈 것 같은 빨간 불빛은 고은이의 현재 심정이겠죠. ^^

어떡하지?

고은이는 오늘 오묘하고 복잡한 게임 속으로 빠져들어간 것 같아요. 친구 김수다가 쏟아내는 폭풍 수다를 간신히 버텨낸 후 떠올린 놀이터 화장실은 오늘따라 공사 중입니다. 바람은 또 얼마나 세게 불어대는지 빨리 가고픈 마음과 달리 자꾸만 뒤로 밀려나는 것 같아요. 오늘따라 머피의 법칙이 고은이만 졸졸 따라다니는 것 같네요. 전봇대 옆에서 강아지도 시원하게 볼일을 보고, 공사 중인 화장실 빗물 홈통도 빗물을 콸콸 시원하게 쏟아내고 있는데 오직 고은이만 꾹꾹 참아내며 어떻게든 버터 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이제는 다리에 힘을 줘도
오줌이 찔끔찔끔 나오는 거 같다.
숫자는 몇까지 셌더라?
안 돼! 정신 차려!

커다란 태풍의 눈 한가운데에 서있다면 이런 기분일까요? 엄청난 힘 조절이 필요한 절체절명의 순간, 몇 번이나 다시 정신을 차려서 간신히 집에 도착했어요. 이제 문만 열고 들어서면 이 모든 고통이 드디어 끝나는구나 싶었던 바로 그 순간….

어떡하지?

긴장의 끈이 그만 탁 풀려버렸던 걸까요? 장대비처럼 세차게 쏟아져 내리는 노오란 물줄기……. 어쩌면 노랗게 질려버린 고은이 마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흠, 그러고 보니 표지 그림에서 땅바닥이 노란색이었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군요. (으흠 어험 어허허허 하하하!)

이 순간 무방비 상태가 된 채 멍하게 서 있을 고은이의 표정이 자꾸 생각나 안타까우면서도 연실 웃음이 나옵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하면서 이제껏 달려온 고은이가 진짜 ‘어떡하지?’하고 있을 것 같아 괜찮아, 괜찮아 토닥토닥 등 두드려주고 싶어지기도 하고요. 이제껏 롱샷으로 고은이의 순간순간 위기 상황들을 재미있게 담아낸 것과 달리 강렬한 색감으로 클로즈업해 보여준 이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억세게 꼬인 오후를 보낸 고은이의 남은 이야기는 그림책으로 확인해 보세요.

어떡하지?

화장실이 급한 고은이의 모습만 모아봤어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심각해지는 상태는 고은이의 표정과 자세만 봐도 알 수 있어요. 그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우면서도 사랑스러워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옵니다. 그림책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고은이를 따라 절박한 심정으로 숫자를 따라 세고 연실 어떡하지를 연발하게 되는 걸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있었을 법한 경험을 너무나 실감 나게 잘 살려냈기 때문이겠죠. 이 이야기는 팽샛별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담이었다고 하네요. ^^

상황마다 콜라주 기법을 적절히 활용한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그림으로 상황을 절묘하게 표현한 재미난 그림책 “어떡하지?”, 실수하면서 자라고 실수하면서 배워가는 세상의 모든 고은이들에게 그림책 속 고은이가 이야기합니다. 모든 상황은 생각하기 나름이란다… 라구요.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 뭐 그런 날도 있지, 그렇게 배우면 되는 거야~^^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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