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짝할 사이
책표지 : Daum 책
눈 깜짝할 사이

호무라 히로시 | 그림 사카이 고마코 | 옮김 엄혜숙 | 길벗스쿨
(발행 : 2018/01/30)


우리는 하루에 눈을 몇 번이나 깜빡일까요? 그림책을 보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하루에 보통 1만 번 가량 눈을 깜빡인다고 해요. 눈 한 번 깜빡하는 순간은 몇 초에 지나지 않지만 그 짧은 순간들이 모여 나의 하루가 되고 길게는 한 삶이 지나간다 생각하니 느낌이 좀 이상하네요. “눈 깜짝할 사이”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눈 깜짝하는 사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짧은 순간에도 아주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치밀하게 보여주는 그림책이에요.

눈 깜짝할 사이
“눈 깜짝할 사이” 속 표지 그림(왼쪽), 마지막 페이지 그림(오른쪽)

속 표지 그림에는 한 소녀가 살포시 눈을 감은 그림이 나와있고 마지막 페이지에는 소녀가 눈을 뜬 그림이 그려져있어요.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이렇게 속 표지 그림과 마지막 그림 사이에 넣어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을 효과적이면서 감각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장의 그림은 그대로 그림책 제목이기도 해요. 그러고 보니 마지막 장면을 보는 순간 ‘눈 깜짝할 사이 그림책 한 권을 다 읽었네’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눈 깜짝할 사이

눈 깜짝할 사이

눈 깜짝할 사이

연속된 3장의 그림으로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을 보여주고 있어요. 눈 깜짝할 사이는 ‘사-뿐’ 개망초 꽃잎 위에 내려앉았던 나비가 다시 날아가는 시간입니다. 첫 두 장면은 아무 변화가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개망초 꽃잎이며 풀잎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어요. 아스라이 비치는 빛도 조금 다르고요. 하지만 실제로는 피부로 직접 느끼지 못할 만큼 아주 짧은 시간이죠. 나비가 날아왔는지, 꽃잎이 흔들렸는지 바람이 불어왔는지조차도 알 수 없을 만큼…

눈 깜짝할 사이는 그런 시간이에요. 나비가 꽃잎 위에 잠시 앉았다 떠나는 시간, 시곗바늘이 12시를 알리면 뻐꾸기가 나올 준비를 하는 시간, 재빠른 손놀림으로 고양이가 장난감 생쥐를 낚아채는 시간, 홍차에 퐁-하고 떨어뜨린 각설탕이 스르르 가라앉으며 녹아드는 시간.

짧은 시간을 이야기하기 위해 텍스트는 최소화했어요. 눈 깜짝할 사이 페이지를 넘길 수 있도록 말이죠.

눈 깜짝할 사이

연속된 3장의 그림으로 짧은 순간 벌어지는 작은 변화들을 보여주는 이야기는 갈래머리 여자아이가 찻잔 앞에 조용히 앉아있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아마도 찻잔 속에 각설탕을 넣었던 작은 손은 갈래머리 여자아이의 손이었겠죠.

찻잔 앞에 조용히 앉아있는 여자아이는 다음 장을 넘기면 그림 옆 ‘갈래머리 여자아이’라는 텍스트만 사라졌을 뿐 아무 변화가 없어요. 홍차도 그대로 남아있고요.  저는 두 번째 장면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분명 세 번째 장면에서는 정면을 주시하고 있는 여자아이가 있을 거라고,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를 보여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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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사이

나비가 날아오르는 사이, 각설탕이 찻잔 속에서 녹는 사이 눈 깜짝할 사이 갈래머리 여자아이는 어느새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눈 깜짝할 사이 벌어진 일이에요.

짧은 순간들을 묵직하게 그려낸 연속된 그림들이 좋아서 페이지마다 감탄을 하며 그림책을 넘기다 마지막 장면에 온몸에 전율을 느꼈어요. 놀라움과 경악 사이의 ‘아!’하는 짧은 탄성을 지르고는 한참 동안 마지막 장면에 머물렀습니다.

순간의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그려낸 그림책 “눈 깜짝할 사이”는 그림책이 다른 장르의 책들과 다른 이유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책이에요. 수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주는 그림책의 무게감이 오래도록 가슴에 여운을 남깁니다. 거울 속 내 모습이 왠지 낯설게 느껴지는 오늘, 마지막 장면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면서 억겁의 시간도 결국 찰나의 순간들이 모여 이룬 것임을 새삼 느껴봅니다.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2 Replies to “눈 깜짝할 사이

  1. 사카이 고마코작가님 그림은 정말 소장용이지요! ㅠㅠ 어른동화에 이만큼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몇 안될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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