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곰에게 잡혀간 우리 아빠
책표지 : 여유당
불곰에게 잡혀간 우리 아빠

허은미 | 그림 김진화 | 여유당
(발행 : 2018/01/25)


그림책 속에 등장하는 아빠들은 다양한 시련을 겪곤 합니다. 아이의 즐거운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금붕어 2마리랑 교환이 되기도 하고, 종이가 되기도 하죠. 심지어 오늘 소개하는 그림책 속에서는 아빠가 불곰에게 잡혀가는 모양이네요. 아빠는 어쩌다 작고 귀여운 반달곰도 아닌 무시무시하고 커다란 불곰에게 잡혀갔을까요? 아빠는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요?

면지에는 숲속 커다란 나무 사이에 수사슴의 뿔만 삐죽이 나와 있어 무슨 의미일까 궁금해집니다. 속표지에는 곰 가죽 옷을 벗으려는 곰의 뒷모습이 나와요. 가지런히 벗어놓은 구두 한 켤레, 수사슴 뿔과 곰 가죽 사이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불곰에게 잡혀간 우리 아빠

우리 엄마는 별명이 불곰이다.
화가 나면 얼굴이 불곰처럼 빨개진다.

아빠도 아닌 엄마의 별명이 불곰이라니… 심상찮은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포효하고 있는 불곰, 다음 장면을 펼치면 포효하고 있는 엄마 얼굴이 나와요. 아침마다 집안을 들었다 놨다 하는 엄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폭발하듯 터져 나오고 그 때문에 주변 나무까지 뽑혀버렸어요. 음, ‘아침마다’라는 말에 어쩐지 우리 집 이야기 같다는 분 안 계시나요? ^^

불곰에게 잡혀간 우리 아빠

자, 이런 상황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후다닥 집을 나오는 것! 불곰에게 쫓겨 후다닥 상황을 마무리하고 집을 나오는 가족들 모습이 웃음을 자아냅니다. 그 와중에 겁을 집어먹은 아빠는 제일 앞에서 달리고 있어요. 머리카락이 휘날리도록 뛰는 아이들보다 더 빨리, 더 민첩하게……^^ 아이들은 이런 아침이 하루 이틀도 아니라는 듯 아주 능숙하게 숲길을 날듯이 달리면서 여유로워 보이는데 아빠는 잔뜩 겁먹은 표정이에요. 아무래도 엄마가 아이들보다는 아빠에게 더 무서운 모양인가 봐요.

그렇게 쫓겨나듯 간 학교에서 아이들은 동시 짓기를 했어요. 가족 이야기를 동시로 썼는데 가족 하나하나(고양이 순덕이까지 포함해) 좋은 이유가 떠오르는 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엄마는 왜 좋은지 모르겠다는 사실이에요. 머리가 길어서 엄마가 좋다는 아이도 있고 엄마가 집에 있어서 좋다는 친구도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이는 엄마가 좋은 이유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불곰에게 잡혀간 우리 아빠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엄마가 왜 좋은지 물었어요. 동생은 엄마가 푹신해서 좋대요. 안기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아빠는 엄마가 좋은 이유가 튼튼해서 좋대요. 언제든 아빠를 업고 뛸 수 있으니까(하, 아빠를 업고 뛸 수 있는 튼튼한 엄마라니 아빠가 정말 든든하겠는데요).

그러면서 아빠가 들려준 기가 막힌 비밀 이야기는 이랬어요. 예전에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정신이 가물가물해질 무렵 불곰을 만났대요. 그 불곰 덕에 목숨을 구했고 고마운 마음에 결혼을 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듣자 아이가 물었어요.

“설마, 그 불곰이 엄마는 아니죠?”
“어, 어떻게 알았지? 쉿! 이건 비밀인데,
네 엄만 사람이 아니라 불곰이야.
진짜 불곰.”

불곰에게 잡혀간 우리 아빠

가장 힘든 순간 불곰에게 잡힌 덕분에 내가 있고 우리 가정이 생겼다는 아빠의 장난 같은 말에 아이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아침마다 으르렁대는 엄마를 생각해 보니 그럴듯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빨랫줄에 걸린 생선을 본 기억도 떠오른 모양이네요.

해가 뜨면 거죽을 벗고 사람이 되었다가 밤이 되면 다시 불곰이 되는 엄마, 아침마다 사람으로 변신한 엄마가 거울을 보면서 화장하는 모습도 떠올려봅니다. 재미있는 것은 불곰인 엄마가 화장을 하니 하얀 북극곰으로 거울에 비쳐 보인다는 사실…^^ 아이는 사슴 같이 여릿여릿한 아빠가 무시무시한 불곰한데 잡혀가는 모습이 자꾸만 어른거렸어요. 아, 면지 속 사슴뿔의 주인은 아빠였군요. 사슴 같은 엄마가 아닌 사슴 같은 아빠라니, 그래서 아빠가 유독 엄마를 무서워했었나 보네요.

불곰에게 잡혀간 우리 아빠

외할머니 댁에 간 아이는 할머니가 꺼내 준 사진첩 속에 귀여운 아기가 엄마라는 할머니 말씀이 믿기지 않았어요. 수줍은 소녀 시절의 곱디고운 엄마, 꽃처럼 고왔던 사진 속 아리따운 아가씨가 엄마라니…… 할머니는 오래전 엄마도 잘 웃었던 시절이 있었대요. 그러면서 할머니가 말끝을 흐리십니다.

“와, 엄마도 이렇게 예쁠 때가 있었어요?”
“네 엄마, 지금은 저래도 젊었을 땐 얼마나 고왔는지 몰라.
웃기도 잘 웃고…….
새끼들 데리고 먹고 산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고왔던 엄마가 할머니 말씀처럼 이리저리 삶에 치이다 결국 불곰처럼 변해 버린 걸까요? 이해할 수 없는 낯선 사진 속 엄마의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오래전 사진 속 엄마 얼굴에 지금의 내 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아이는 오랫동안 엄마 사진을 보고 또 보았어요.

불곰에게 잡혀간 우리 아빠

물론 불곰이었던 엄마가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온종일 힘들게 일하다 보면 다리가 퉁퉁 붓고 목소리가 점점 거칠어다 결국 엄마는 무시무시한 불곰이 되고 말죠. 불곰이 된 엄마가 소리칩니다.

어서 일어나지 못해!

엄마가 매일 같이 견디고 버티며 보내는 힘든 하루를 상상하며 결국은 불곰으로 변해버릴 수밖에 없었겠구나 생각한 아이의 상상을 멋지게 그려낸 그림이 압권입니다.

자, 오늘 아침도 시작입니다. 불곰에게 쫓겨 후다닥 밥을 먹고 후다닥 옷을 입고 후다닥 학교로! 엄마가 왜 좋은지 모르겠다고 썼던 아이는 동시를 다시 쓰기로 합니다. 아빠는 까치처럼 구렁이처럼 은혜를 갚아서 좋고 엄마는 아빠를 구해 주고 나를 낳아줘서 좋다고, 참 좋다고…

이야기를 다 듣고 보니 아빠가 아닌 엄마의 시련이야기였군요. 한때는 고왔던, 그리고 자신만의 꿈을 가슴에 품고 살던 생글생글 잘 웃던 한 여인, 하지만 결혼 후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에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무서운 불곰처럼 변해버린 엄마 모습을 아이의 시선에서 재미있게 그려낸 그림책 “불곰에게 잡혀간 우리 아빠”. 외갓집에서 발견한 앨범에서 자신과 꼭 닮은 엄마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고 또 보는 딸아이의 모습이 담긴 장면은 왠지 가슴이 짠해집니다.

아이들에게는 큰 웃음을, 엄마들에게는 무언가 코 끝 찡한 뭉클함을 전해주는 이야기 “불곰에게 잡혀간 우리 아빠”.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엄마 아빠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한때는 엄마도 자기들 같았던 때가 있었음을 요 녀석들이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을까요? ^^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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