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없어!

별거 없어!

글/그림 정진영 | 낮은산
(발행 : 2018/04/05)

2018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여유로운 표정으로 꽁무니에서 실을 뽑아내고 있는 거미,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멋지게 지은 집 위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상상을 하고 있는 걸까요? 그것도 아니면 거미줄 위에서 맛난 식사를 할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 걸까요? 거미의 등장에 놀랐는지 작은 애벌레가 나뭇가지 위에서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거미를 주시하고 있어요.

“별거 없어!”는 처음으로 집을 짓는 아기 거미의 이야기입니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알쏭달쏭 어렵고 두렵기만 한 아기 거미가 집 짓기에 성공할 수 있을지 지켜봐 주세요.

별거 없어!

아기 거미가 처음으로 집을 지으려고 합니다.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똑같이 생긴 열일곱 마리의 아기 거미들, 생긴 것은 똑같아 보여도 표정은 제각각입니다. 다들 집을 어디에 어떻게 지어야 할지 걱정하고 있는 중일까요? 얽히고설킨 거미줄이 이런저런 감정들로 복잡한 아기 거미들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진 아기 거미는 고민 끝에 이웃들의 도움을 얻기로 했어요.

별거 없어!

아기 거미는 거미집을 지어본 경험이 있는 거미들을 찾아가서 어떻게 집을 짓어야 하는지 물어보았어요. 멋진 거미집 위에 있는 아저씨 거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별거 없다면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고 했어요. 건너편 나무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던 할머니 거미는 끈끈이에 발이 엉겨 붙지 않게 조심하면 된다고 말했고요. 커다란 나뭇잎 아래 쉬고 있는 할아버지 거미는 그냥 몸을 던지면 된다고 합니다. 아기들을 등에 업고 바쁘게 움직이던 아주머니 거미는 바람을 기다리라고 했고 눈이 큰 거미는 폴짝 뛰어 먹이를 잡으면 되기 때문에 집은 필요 없다고 말했어요.

별거 없어!

자신만의 집짓기 노하우를 알려주면서 다들 ‘별거 없어!’하고 덤덤하게 말했지만 아기 거미는 점점 더 혼란스럽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나무 아래를 내려다보기만 해도 다리가 바들바들 떨리는데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니, 게다가 거미줄에 발이 엉겨 붙을 수도 있다니, 심지어 높은 곳에서 몸을 던져야 하고 보이지도 않는 바람을 기다려야 한다니……

물어보면 물어볼수록 머릿속은 점점 더 복잡해지기만 했어요.

뱅글뱅글 돌아가게 배치한 글자의 배열이 미궁 속으로 점점 더 빠져드는 아기 거미의 마음 같습니다. 혼란에 빠진 아기 거미의 그렁그렁한 눈에서 폭포처럼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요.

별거 없어!

아기 거미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했어요. 이곳저곳에 다른 거미들이 지어놓은 멋진 거미집들을 보니 마음은 조급해졌고 자신감은 더 없어졌어요. 그때 어디선가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낀 아기 거미는 바람을 기다리라는 아주머니 거미의 말뜻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힘껏 실을 뽑아낸 아기 거미는 용기를 내어 집을 짓기 시작합니다.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몸을 던지면서 발이 엉겨 붙지 않게 조심하면서 말이죠. 영차! 영차! 아기 거미의 얼굴에 조금씩 웃음이 번져갑니다. 나뭇가지 이쪽에서 저쪽으로 부지런히 옮겨 다니면서 아기 거미는 서툴지만 처음으로 자신의 집을 지었습니다.

별거 없어!

아기 거미의 첫 번째 집이 완성되자 다들 찾아와 축하해 주었어요. 잘했다고 칭찬하는 아저씨 거미, ‘좋아!’하고 말해주는 할머니 거미, 멋지다고 웃어주는 아주머니 거미, 집 따위 필요 없다 말했던 거미는 우아~하고 감탄사를 내뱉었어요. 그런데 할아버지 거미는 뭔가 조금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채 아무 말이 없네요.

자, 이렇게 힘들게 집을 완성했으니 이제 먹이가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때 저쪽에서 뭔가가 날아오고 있어요. 까맣고 커다란 눈, 팔랑이는 날개를 보니 파리인 것 같은데요. 아기 거미는 파리 사냥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마지막 남은 이야기는 그림책을 통해 확인해 보세요. 할아버지 거미의 못마땅한 눈빛의 의미도 한 번 미리 짐작해 보구요. 뒤표지까지 확인하는 것 깜박하면 안됩니다! ^^

처음으로 집 짓기에 도전하는 아기 거미, 설렘과 두려움 반반의 마음이었겠죠. 누구보다 잘해 보기 위해 아기 거미는 용기 내어 이웃들을 찾아갑니다. 그들에게 어떻게 집을 짓는지 물어보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을 거예요. 아기 거미에게 집 짓는 노하우를 설명해주는 어른 거미들은 꼭 한 마디씩 덧붙입니다. ‘별거 없어!’라고요. 이 간단한 말 한 마디에는 어린 거미가 두려움 없이 세상을 향해 한 발자국 성큼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하는 어른들의 바람이 담겨있었을 것입니다. 이웃과 소통하고 직접 경험하면서 한 뼘 더 성장한 아기 거미, 처음은 엉성한 거미집이었지만 이제 곧 아기 거미도 좀 더 섬세하고 완성도 높은 집을 지을 수 있을 거예요. 세상에 경험만큼 좋은 선생님은 없으니까요.

“별거 없어!”는 모든 것은 ‘시작’에 있다는 사실을 아주 경쾌하고 발랄한 그림과 이야기로 들려주는 그림책입니다. ‘처음’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어렵게 느껴지기 마련이죠.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어쩌지, 혼자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시작했다 괜히 창피만 당하는 건 아닐까 싶은 두려운 마음 때문에 첫 발을 내딛지도 못한 채 할까 말까 망설이는 이들의 마음이 아기 거미의 집짓기 과정에 그대로 들어있습니다. 막상 벌여놓고 보면 별거 없는 것을, 조금은 서투르더라도 결국 시작이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어요.

그러고 보니 표지에 나온 여유로운 표정의 거미는 이미 집 짓기의 모든 것을 알게 된 한층 성장한 거미인 모양입니다. 어느 날, 또 다른 아기 거미가 찾아와 묻는다면 이렇게 말해주겠죠. ‘먼저 부딪쳐 보는 거야, 까짓것 별거 없어!’라고요.


그림책에 등장하는 거미들 모두 저마다 독특한 습성을 가진 게 궁금해서 어떤 거미인지 하나하나 한 번 찾아보았습니다.

별거 없어!

‘줄무늬 아저씨 거미’는 노란색 알록달록한 무늬로 보아서 아마도 호랑거미인 듯 합니다. ‘아기를 업고 다니는 아주머니 거미’는 늑대거미로 보입니다. 늑대거미는 알에서 깬 어린 거미들을 며칠 동안 등에 업고 다닌다고 해요. 눈동자에 촛점이 없을 정도로 아기를 돌보느라 바쁜 엄마 거미의 모습이 짠하게 표현했어요. 폴짝 뛰어 먹이를 잡으면 되기 때문에 집이 필요없다는 것을 보면 ‘눈이 큰 거미’는 깡충거미로 보입니다.


※ 함께 읽어 보세요 : 처음의 설렘과 두려움을 담은 그림책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0 0 votes
Article Rating
알림
알림 설정
guest

2 Comments
오래된 댓글부터
최근 댓글부터 좋아요 순으로
Inline Feedbacks
모든 댓글 보기
부루
부루
2018/05/14 13:39

그림책 리뷰 잘보고 갑니다.
시작의 두려움을 귀엽게 풀어냈네요 ㅎ

가온빛지기
Admin
2018/05/17 10:40
답글 to  부루

부루 님, 반갑습니다! ^^

2
0
이 글 어땠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주세요!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