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선물할게
책표지 : Daum 책
꽃을 선물할게

글/그림 강경수 | 창비
(발행 : 2018/04/20)


커다란 곰의 손, 곰 손톱 위에 내려앉은 작은 무당벌레, 색색깔 화려한 꽃들이 캄캄한 밤하늘을 수놓는 화려한 불꽃같은 꽃다발. 곰의 커다란 손과 작디작은 무당벌레 그리고 한 줌 꽃다발까지 이들은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요? 누가 누구에게 꽃을 선물하겠다고 약속한 것일까요?

이야기는 어느 봄날 아침에서 시작됩니다.

숲을 산책하던 곰은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어요.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다급함이 담겨있는 목소리였죠. 곰은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고개를 숙였어요. 커다랗게 묘사된 곰의 발아래, 갓 피어난 꽃들이 자리 잡고 있어요. 그 꽃들 사이 어딘가에서 다급한 목소리로 곰을 부른 것은……

꽃을 선물할게

거미줄에 걸린 무당벌레였어요. 무당벌레는 곰에게 거미가 돌아오기 전에 자신을 구해 달라고 애원했어요.

거미줄에 매달린 채 곰에게 애원하는 무당벌레에게서 초조함과 간절함을 읽을 수 있지만 그와 달리 곰의 표정은 알 수 없어요. 그저 잠시 무당벌레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이죠. 하지만 두 손을 양옆에 꼭 붙인 채 무당벌레의 말을 듣고 있는 곰의 태도로 보아 아주 작은 일에도 섣불리 관여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한시가 급한 무당벌레를 앞에 두고 생각에 잠겼던 곰은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너를 살려 준다면 거미가 굶겠지?
그건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는 일이야.”

말을 끝내고 나서 곰은 무당벌레를 놔둔 채 그 자리를 떠났어요. 성큼성큼 가던 길을 가버리는 커다란 곰의 뒷모습이 참으로 매정하게 느껴지는 건 내 마음이 작은 무당벌레에게 더 가까이 닿아있기 때문일까요?

꽃을 선물할게

사라지는 곰의 뒷모습을 쓸쓸히 바라보면서 무당벌레는 생각했어요.

하늘에 구름이 몰리면 날이 흐린 건 자연의 법칙이죠.
태풍이 불면 나무가 뽑히는 건 자연의 법칙이죠.
그렇게 큰 걸 바라는 게 아닌데.
그저 곰님이 그 큰 손을 아무렇게나 흔들어
거미줄이 찢기는 정도면 될 텐데.
당신은 성큼성큼 사라지네요.

자유롭게 길을 가던 커다란 곰과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작은 무당벌레, 둘이 주고받는 대화로 이어지던 이야기는 곰이 떠난 후 혼자 남은 무당벌레의 독백으로 이어집니다. ‘하늘에 구름을 불러달라는 것도 아니고 태풍에 뽑히는 나무를 구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그 큰 손을 아무렇게나 흔들어 거미줄을 찢어 달라는 부탁일 뿐인데’ 자연의 법칙에 어긋남을 운운하며 가버린 곰에 대한 무당벌레의 독백 속에는 서운함을 넘어서 체념하는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이렇게 무당벌레의 독백으로 숲의 아침은 막을 내리고 이제 점심으로 넘어갑니다.

꽃을 선물할게

곰은 이번에도 거미줄에 걸린 무당벌레가 있는 곳을 지나가게 되었어요. 돌아온 곰을 본 무당벌레의 표정은 환하게 변했습니다. 생각을 바뀐 곰이 돌아온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곰은 그저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며 여전히 자신의 생각에는 변함없다고 말했어요. 두 번의 실낱같은 희망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순간, 무당벌레는 혼잣말처럼 ‘애벌레로 땅속에서 칠 년이나 보내고 이렇게 허무하게 생을 마감해야 한다니’하고 한탄합니다.

그때 곰이 무당벌레를 스쳐 지나가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그건 매미 이야기 아니야?

은근 예리한 면이 있는 곰에게 허를 찔리는 순간입니다. 이런 걸 웃프다고 표현해야 하나요? 곰의 넓은 아량에 기대어 보려던 무당벌레, 그 말이 통하지 않자 거짓말로 속여 목숨을 구해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통하지 않고 말았습니다.

어설픈 아첨은 그만 안녕.
난 그저 자연의 일부이자 방관자.
무리한 부탁은 그만 안녕.
성냥불 하나가 온 산을 다 태우는 법.
거짓말하는 너는 그만 안녕.
자연은 위대해. 모든 걸 다 꿰뚫고 있지.
누군가는 거미에게 먹히는것도 자연의 법칙.
올여름 통통하게 살찐 거미가
사악한 모기들을 막아 주기를.

점심의 이야기는 곰의 독백으로 마무리됩니다. 자신은 그저 자연의 일부이자 방관자일 뿐 이 모든 건 그저 자연의 법칙일 뿐이라고. 성냥불 하나가 온 산을 다 태우는 법이라고. 자연은 위대해서 모든 걸 다 꿰뚫고 있다고…….

이제 숲에 저녁이 찾아왔어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무당벌레는 아직도 거미줄에 매달려 생사를 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운명처럼 곰이 그 길을 또 지나가게 되었어요. 무당벌레는 다시 만난 곰에게 혹시 마음이 바뀌었는지를 묻습니다. 물론 곰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어요. 그저 집으로 가는 길일뿐 곰이 싫어하는 모기를 잡아먹는 거미는 좋은 동물이라는 자신의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다고 말합니다.

꽃을 선물할게

애원도 거짓말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무당벌레는 줄곧 자연의 법칙만을 앞세우는 곰 앞에 자신에게 얽힌 자연의 법칙을 꺼내놓습니다. 이번만큼은 곰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여기서 곰을 놓쳐버리면 이제 더 이상의 기회는 없을 테니까요.

곰님은 꽃을 좋아하시나요?
그럼 저도 좋은 동물이에요.

거미는 못된 모기를 잡지만 자신은 모두가 좋아하는 꽃을 못살게 구는 진딧물을 잡아먹기 때문에 자신 역시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동물이라고 말한 무당벌레는 이렇게 자신의 말을 마무리합니다.

곰님이 꽃을 좋아하신다면 적어도 한 번쯤은
저를 거미줄에서 구해 줄 의무가 있는 거죠.

‘적어도 한 번쯤은’이라는 말이 진심으로 가슴에 와닿는 순간입니다. 곰은 찬찬히 무당벌레를 내려다보며 곰곰이 생각이 잠겼어요. 이번에도 곰의 눈은 보이지 않아요. 처음처럼 똑같이 날카로운 이빨과 까만 코만 보일 뿐. 숲은 깊은 적막에 잠겼습니다.

꽃을 선물할게

적막에 잠긴 숲, 숲에 찾아온 밤, 까만 하늘에 박힌 수많은 별들, 거미줄에 걸린 채 긴 하루를 보낸 무당벌레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곰은 마음을 바꾸었을까요?

아침에 시작되어 점심을 지나 저녁에 이르기까지 무당벌레의 입장과 곰의 입장에서 전개되었던 이야기는 밤 하늘에 총총 박힌 별빛 아래 고요한 숲을 배경으로 잠시 흐름을 멈춥니다. 아마도 독자들에게 잠시 생각할 시간을 남겨주는 것이겠죠? 다음 장을 넘기면 드디어 하루 종일 보이지 않았던 거미가 등장해요. 거미줄은 아주 가까이 클로즈업 되어있고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커다란 거미는 굉장히 무시무시하게 보입니다. 과연 무당벌레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곰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겨울이 가고 다시 봄이 찾아왔습니다. 화창한 봄날 곰은 꽃들이 만발한 들판 한가운데 여자친구와 나란히 서있어요. 여자 친구 옆에서 빨간 꽃 한 송이를 쥐고 서있는 곰의 뒷모습은 뭔가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만발한 봄꽃들은 지난가을 곰이 살려준 무당벌레의 보은일까요? 아니면 그저 자연의 법칙대로 무심하게 피어난 것뿐일까요?

곰과 무당벌레의 대화와 그 사이사이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하는 독백으로 마치 무대 위에 펼쳐지는 한 편의 연극처럼 한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긴장과 웃음, 재미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그림책 “꽃을 선물할게”. 산책길 만난 한들한들 봄꽃 한 송이는 지난가을 누군가 무당벌레에게 베푼 친절의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여름밤 귀찮은 모기가 보이지 않는다면 거미의 수고 덕분일 수도 있겠네요. 누군가의 사소한 행동 하나가 세상의 빈틈을 살짝 바꾸어 놓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들이 어쩐지 조금은 달라 보입니다.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4 Replies to “꽃을 선물할게

  1. 나쁜 사람은 차라리 미워하면 되니깐 쉽지요. 입장차와 가치관의 차이는 정답이 없어서 너무 어려워요. ㅠㅠ

    1.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지요…^^
      흠, 나와 다르구나, 내가 틀린 것도 아니고 저 사람이 이상한 것도 아니구나, 그렇구나~이렇게 두루뭉술 넘어가버리는 것도 쫌 그럴까요?

  2. 쥔장의 의견에 저도 한 표요.
    입장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를 이해하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오해하게 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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