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니까 좋다

나오니까 좋다
책표지 : Daum 책
나오니까 좋다

글/그림 김중석 | 사계절
(발행 : 2018/05/23)


숲길을 달리는 작은 자동차 지붕 위에 바리바리 싼 캠핑용품들이 정겹습니다. 손글씨로 쓴 “나오니까 좋다”라는 문구만 봐도 부러워지는 걸 보니 어디라도 한 번쯤 훌쩍 떠나 푹 쉬었다 올 때가 된 모양인가 봐요. 시원한 초록 숲 향이 솔솔 나는 것 같고 뾰로롱 뾰로롱 기분 좋은 새소리가 들려올 것 같아 표지 그림만 봐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후비적후비적 콧구멍을 후비며 뒹굴뒹굴하던 고릴라가 도치에게 말했어요.

아~ 심심해.
도치야 뭐 해?
날씨도 좋은데 캠핑 안 갈래?
응?

당장이라도 서둘러 따라나설 줄 알았는데 도치는 내일까지 끝내야 할 일이 많으니 혼자 가라며 뒤도 돌아보지 않아요. 밀린 일 때문에 성이 났는지 뾰족뾰족한 가시가 온통 빳빳하게 선 도치를 릴라가 잘 설득할 수 있을까요?

바람 쐬고 와서 하면 더 잘 될 거라고 나만 믿으라는 릴라,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 너무 귀엽죠? ^^ 도치는 ‘이번 딱 한 번만’이라며 어쩔 수 없는 척 릴라를 따라나서요. 느릿느릿 느리지만 무엇이든 긍정적인 커다란 고릴라와 투덜투덜 성질 급한 자그마한 고슴도치가 친구라는 설정이 재미있습니다.

두 친구는 그렇게 캠핑을 떠나게 되었어요. 캠핑 가는 길에도 릴라는 연신 ‘나오니까 좋다’를 외치며 운전을 하고 뒷좌석에 앉은 도치는 ‘집에 가고 싶다’며 떠나온 길을 돌아보고 있어요.

여유를 만끽하며 길을 가는 릴라 때문에 도로가 꽉꽉 막혀 뒷자리에 탄 도치가 뒤따라 오는 차들을 향해 ‘죄송하다’고 사과를 해야만 했어요. 숲속에서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기도 했고요.

간신히 도착해서는 바리바리 싸온 짐들을 정리하느라 또 시간이 흐릅니다. 릴라는 땀을 뻘뻘 흘리며 짐 정리를 하면서도 ‘조금만 기다리라’고 도치를 달랩니다. 하지만 뭔가 어설퍼 보이는 릴라, 언제 텐트를 치고 언제 짐 정리를 다 끝내고 한숨 돌릴 수 있을까요? 도치 말대로 그냥 집에 있었으면 이 고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에요.

도치는 실수투성이 릴라가 영 마뜩지 않습니다. 덩치 큰 릴라랑  같이 누워있기엔 해먹은 너무 비좁고 숲에는 벌레도 너무 많아요. 게다가 춥고 심심하고 슬슬 배까지 고파옵니다. 저녁만큼은 제대로 하겠다던 릴라는 허둥지둥 실수 연발! 정작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 같았던 도치가 바쁘게 왔다 갔다 하면서 일을 마무리하는 상황이에요. 아, 이래서 도치가 밖에 나오는 걸 그리도 싫어한 걸까요? ^^

릴라와 도치를 보고 있자니 신나 들떠있긴 하지만 하는 일 모두 어설프기만 한 아빠와 투덜거리면서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모든 일을 마무리하는 엄마를 보는 것 같습니다. 주거니 받거니 둘 사이를 오가는 대화가 현실감이 느껴져 더욱 재미있어요.

우여곡절 끝에 마련된 저녁은 카레라이스! 종일 시달렸던 탓인지 저녁이 준비되었다는 릴라의 말에 도치의 얼굴이 비로소 환해졌어요. 아기자기한 숲속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는 동안 ‘맛있지?’하고 묻는 릴라의 질문에 도치는 ‘응!’하고 커다랗게 대답합니다. ‘응!’ 이란 긍정의 답 한 마디에 종일 쌓였던 피로는 저 멀리 싹 달아난 것처럼 보여요.

숲에 밤이 찾아왔어요. 온종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실수투성이 릴라와 그런 릴라가 못 미더워 투덜투덜 대던 도치가 한숨 돌리고 나란히 앉아 함께 별을 바라보고 있는 풍경이 편안해 보입니다. 도심의 빛과 소음에서 벗어난 깊고 푸른 숲속의 밤, 풀벌레 소리며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이곳까지 전해오는 것 같아요.

성격이 완전히 다른 두 친구 릴라와 도치의 마음이 일치하는 절정의 순간, 아무런 대사도 넣지 않고 오로지 숲 풍경과 그 한가운데 있는 두 주인공만 넣은 이 장면이 참 좋습니다. 나오니까 좋은 이유, 이 그림 한 장에 다 담겨있어요.

나오니까 좋다

하룻밤 사이 완전히 달라진 도치가 분주하게 다니며 숲속 친구들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여기 너무 좋다!’며 통통 뛰어다니는 도치 곁에서 릴라는 그저 여유로운 표정으로 찬찬히 캠핑용품을 정리하며 ‘나오길 잘했지?’하고 묻고 있어요. 웅크리고 앉아 투덜대던 도치에게 바람 쐬고 와서 일하면 더 잘 될 거라던 릴라 말 그대로 다시 돌아가면 무슨 일이든 더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초록초록한 파워가 가슴속에서 마구 솟아날 테니까요.

물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끝까지 안심할 수 없어요. 실수투성이 어설픈 릴라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 한…….^^

편안하게 슥슥 그린 그림 속에 펼쳐지는 두 친구의 소소한 일상, 커다란 사건 사고가 없어도 웃음이 나고 자꾸만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여름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처지가 되더라도 이 그림책 한 권 만 들고 있으면 위로가 될 것 같아요. 휘리릭 펼치면 그곳에 숲이 있으니까요.

재미있고 시원시원하게 그려진 그림, 일상의 소소함을 즐기는 캠핑 이야기가 매력적인 그림책 “나오니까 좋다”, 그림책을 들고나가 야외에서 한 번 읽어 보세요. 어디라도 좋아요. 꼭 자동차 타고 멀리 가야만 맛이 아니죠. 슬리퍼를 질질 끌고 동네 야트막한 뒷산 나무 벤치나 약수터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서 한 번 읽어 보세요. 나오니까 좋지? 나오니까 좋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올 거예요. (혼자 이러면 좀 이상해 보이려나요? ^^)

숲속 여기저기에서 계속 등장하는 여러 마리의 뱀들, 어떤 사건이 터질까 싶어 처음부터 끝까지 뱀을 보며 긴장했어요. 그림책을 다 보고 나서야 내게 뱀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는 생각에 긴장을 풀고 그만 웃었습니다. ^^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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