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랑 줄넘기

여우랑 줄넘기
책표지 : Daum 책
여우랑 줄넘기

아만 기미코 | 그림 사카이 고마코 | 옮김 김숙 | 북뱅크
(발행 : 2018/06/25)

 이 그림책은 2005년 8월 주니어김영사에서 “아기여우 리에의 소원”으로 나왔던 그림책으로 구판이 절판된 후 2018년 “여우랑 줄넘기”라는 제목으로 북뱅크에서 새롭게 출간했습니다.


폴짝폴짝 함께 어울려 줄넘기를 하며 즐거워하는 여우와 아이들, 초록 풀밭이 넓고 푸른 하늘 같고 푸른 하늘이 싱그러운 초록 풀밭입니다. 행여나 꼬리가 줄에 걸릴까 바짝 힘주어 올린 북슬북슬 여우 꼬리, 뒤꿈치를 들고 높이높이 뛰어오르는 가벼운 몸짓, 어린 시절에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가능했던 것 같은데 지금도 저렇게 가볍게 폴짝폴짝 뛸 수 있을까요? 누구하고나 어울려 저렇게 신나게 놀 수 있을까요?여우랑 줄넘기

공원 나뭇가지에 걸쳐 놓고 깜빡 잊은 줄넘기가 생각난 아이는 얼른 가서 찾아오겠다며 서둘러 공원으로 줄넘기를 찾으러 갑니다. 동생은 그런 누나를 따라나섰어요.

하지만 이미 줄넘기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어요. 바람에 날아갔을 리도 없고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훅 불어오는 바람에 즐겁게 노는 아이들의 소리가 실려왔어요.

오누이는 소리를 따라갑니다. 억새풀 무성한 쪽으로 들어가 좁다란 길을 따라 점점 더 안쪽 깊숙이 걸어 들어가다 보니 여럿이 와글와글 떠드는 소리, 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려왔어요. ‘꼬마야 꼬마야 뒤로 돌아라, 돌아서 돌아서 땅을 짚어라.’ 저절로 따라 부르게 되는 줄넘기 노래는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누굴까? 누가 이렇게 깊은 숲속에서 저렇게 즐겁게 줄넘기 노래를 부르며 놀고 있는 걸까?

여우랑 줄넘기

세상에나, 풀밭에서 꼬마 여우들이
줄넘기를 하고 있는 거야.
나랑 동생은 나무 뒤에 숨어서 훔쳐봤어.

초록 들판 저편에서 신나게 줄넘기를 하고 노는 꼬마 여우들, 이쪽 세상에서 살며시 그들을 지켜보는 아이들을 따라 숨죽이고 가만히 여우들을 지켜봅니다. 두 마리는 열심히 줄을 돌리고 일곱 마리는 열심히 줄넘기 줄을 넘고 있어요. 한 마리는 이미 줄에 걸렸는지 풀 죽은 모습으로 이들을 지켜보고 있고요. 제각각 너무도 열심히 줄넘기를 하는 모습이 재미있어 쿡쿡 웃음이 납니다.

그런데 그만 동생 때문에 들켜버리고 말았어요. 북슬북슬 긴 여우 꼬리가 자꾸만 줄에 걸리는 모습을 보고 아이는 손으로 입을 막고 웃었는데 어린 동생이 못 참고 키득하고 소리를 냈거든요. 놀라 허둥대는 꼬마 여우들에게 아이가 먼저 ‘안녕!’하고 인사를 합니다.

여우랑 줄넘기

여우와 오누이는 금방 친구가 되었어요. 작은 것 하나로도 마음 열고 친구가 되는 아이들처럼 줄넘기 하나로 금세 이어진 아이와 꼬마 여우들, 잃어버린 줄넘기는 그만 잊고 다 함께 즐겁게 폴짝폴짝 뛰며 ‘꼬마야 꼬마야 뒤로 돌아라’를 함께 부르면서 신나게 줄넘기를 합니다.

꼬리를 등 쪽으로 올려붙여 보라는 아이의 충고를 들은 여우들은 이제 모두 줄넘기를 잘하게 되었어요.

여우랑 줄넘기

그런데 술래가 된 아이가 줄을 잡고 보니 줄넘기 손잡이에 ‘리에’라고 씌어있었어요. ‘리에’는 아이 이름이에요. 자신의 이름을 보자마자 리에는 내 줄넘기가 여기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줄넘기 때문에 이어진 아이와 여우의 인연이라니……. 여기까지 읽고는 줄넘기를 찾으러 갔다 꼬마 여우들과 친구가 되어 한바탕 즐겁게 함께 놀고 무사히 줄넘기를 찾아오는 따뜻한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또 한 번의 깜짝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재미있게 잘 놀고 헤어질 때 리에가 이건 자기 줄넘기라고 말하려는데 가장 어린 여우가 자랑스럽게 툭 나서며 이렇게 말했어요.

“그거, 내 거야.
아까 여기로 걸어오면서 내가 여우들의 신에게 소원을 빌었거든.
우리 다 같이 줄넘기하고 싶다고.
그랬더니 글쎄, 공원 나뭇가지에 떡하니 이 줄넘기가 걸려 있더라니까.
이것 좀 봐. 내 이름까지 씌어 있잖아.”

여우랑 줄넘기

아이 이름도 리에, 가장 어린 여우 이름도 리에. 여우 리에와 인간 리에가 마주 보고 있습니다. 함께 뛰어놀았던 숲속 공터가 노을 때문에 노란빛으로 물들고 있어 더욱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어요.

초록으로 가득한 여우들의 공간에 발을 디딘 아이들, 인간의 물건을 갖게 된 꼬마 여우 리에, 서로 다른 존재가 어울려 하나가 된 공간은 노란빛으로 가득합니다. 그 공간 안에서 이름이 똑같은 둘이 서로를 바라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뭔가 가슴 뭉클합니다.

동생이 불쑥 끼어들려는 걸 말리며 리에는 집으로 돌아갔어요. 리에의 가슴이 이상하게  찡합니다. ‘다행이야, 정말 잘 됐어’라고 말하며 리에는 환하게 웃던 어린 여우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질감은 살리고 표정이나 형태를 뭉개서 표현하는 사카이 고마코의 그림은 이야기 속에 녹아있는 다양한 감정을 독자에게 투영 시켜 묵직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어린 여우의 동심을 간직해주기 위해 자신의 줄넘기를  양보하고 돌아온 리에, 뭉클하면서도 진한 향수가 느껴지는 이 이야기는 사카이 고마코의 그림과 어우러져 따스하면서도 아련하게 리에의 마음을 전달합니다.

가끔 그때의 나를 지금의 내가 만나게 된다면 이렇게 말해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해본 적 있나요? 환상의 세계에 들어가 재미있게 놀다 돌아온 리에가 만난 어린 여우 리에는 좀 더 어린 시절의 리에 자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의 미묘한 정서가 섬세하게 담겨있는 그림책 “여우랑 줄넘기”, 줄넘기하는 여우와 아이들의 다양한 동작과 표정이 생생하면서도 아련하게 펼쳐지는 이 그림책을 읽다 보면 오래전 나와 만난 듯 반가우면서도 마음이 뭉클해지고 촉촉해집니다.

메마르고 튼 감정에 마음이 퍼석퍼석해진 날, 여우랑 한바탕 재미있게 줄넘기하러 그림책 속으로 들어가 보세요. 내가 리에였다면 상상하며 마음껏 즐겨 보세요. 초록빛 상상의 세상 그곳에는 언제나 어린 날의 더없이 순수했던 내가 기다리고 있답니다. 당신이 언제라도 ‘안녕!’하고 인사하며 성큼 들어설 그날을 기대하면서요.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