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수집가

단어 수집가

(원제 : The Word Collector)
글/그림 피터 레이놀즈 | 옮김 김경연문학동네
(발행 : 2018/06/20)


“단어 수집가” 굉장히 근사한 느낌이 들어요. 우표나 레코드 판, 동전, 스티커 등 무언가 특별한 것을 모으는 이들은 많이 봤지만 단어를 모은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해서일까요?

특별하게 무언가를 모으는 사람을 ‘수집가’라고 하죠. 그림책에 등장하는 아이 제롬도 수집가입니다. 제롬이 수집하는 것은 ‘단어’입니다. 제롬은 ‘단어 수집가’입니다. 단어를 수집한다니 제롬이란 친구 참 특이하죠?

단어 수집가제롬은 이야기를 듣다가 왠지 관심이 가는 단어, 지나다가 눈길을 끄는 단어, 책을 읽다 문장 속에서 톡 튀어나오는 단어들을 모았어요. ‘사랑해’, ‘불꽃놀이’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단어, ‘생일’, ‘속삭이다’처럼 소중한 단어, ‘마다가스카르’, ‘트리케라톱스’처럼 노래 같은 단어, ‘음유시인’, ‘탐미주의자’처럼 뜻은 모르지만 소리 내어 말하면 근사하게 들리는 단어, ‘겅중겅중’, ‘울퉁불퉁’처럼 들으면 저절로 그림이 그려지는 단어들도 모았어요. (표현이 참 예쁘죠? 그림책 속에 나오는 단어들을 세세히 살펴보다 보면 제롬의 마음에 동화되어 저절로 ‘아, 그렇네!’하고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됩니다). 그런 단어들을 모으는 제롬의 표정은 기쁨으로 가득해요.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표정이 그렇듯이요.

제롬은 단어들을 낱말책에 모으고 모았어요. 그렇게 수집한 단어가 점점 많아지자 분류를 하기 위해 낱말책을 옮기려고 했죠. 그런데 그만!!!

단어 수집가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어요. 하나하나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낱말책에서 빠져나온 단어들이 이리저리 섞여 모두 뒤죽박죽이 되어버렸어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제롬은 흐트러진 낱말들을 모아 하나하나 줄에 매달았습니다. 다시 제롬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져갑니다.

단어 수집가

‘소곤소곤’ 옆에 ‘교향곡’이라는 단어가 그 옆에 ‘평화’라는 단어가 내걸립니다. 이제껏 모으기만 했지 나란히 있으리라 상상도 안 해 본 단어들을 줄에 걸고 가만히 바라보던 제롬은 그 단어들로 시를 쓰고 노래를 만들었어요. 친구들에게 들려주자 모두가 감동했어요. 제롬의 단어가 따스한 빛이 되어 친구들의 마음을 온기로 가득 채워줍니다. 즐거운 일을 할 때 제롬 입가에 번지던 온화한 미소가 친구들에게 그대로 전해집니다.

그렇게 제롬의 낱말책에 갇혀있던 책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어요. 단어와 단어가 이어져 한 편의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누군가를 위로해주는 말이 됩니다. 제롬은 더 많은 낱말을 알게 될수록 여러 생각과 느낌과 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신기하거나 예쁘거나 색다르다고 생각해 모아왔던 각각의 단어들이 함께 모이면 더 의미 있는 문장을 만든다는 사실을, 단어는 책장 속에 갇혀있을 때가 아닌 밖으로 나왔을 때 훨씬 더 반짝반짝 빛난다는 사실을, 단어와 단어가 이어질 때 사람들 마음을 더욱 따스하게 어루만져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단어 수집가

제롬은 그동안 모은 단어들을 수레에 싣고 가장 높은 산으로 올라갔어요. 그리곤 산꼭대기에서 낱말들을 모두 날려 보냈어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제롬을 행복하게 해주었던 수많은 단어들, 다리도 없고 날개도 없는 단어들은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훨훨 멀리멀리 날아갔어요. 지금껏 제롬의 낱말책 속에서만 살아왔던 단어들이 필요한 사람들 곁으로 자유롭게 훨훨……

그림자 처리되었지만 세상 꼭대기에서 소중하게 모아왔던 것을 미련 없이 떠나보내고 있는 제롬의 표정이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나요? 함께 할 때 더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가진 세상 둘도 없는 보물을 기꺼이 나누는 제롬의 마음을 멋지게 담아낸 장면입니다.

단어 수집가

바람에 실려 날아간 단어들은 이제 모두의 것이 되었어요. 기쁨으로 단어를 맞는 사람들,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또 누군가에게는 사랑을 전해주겠죠. 그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하고 소중한 것이 될 것입니다.

어떤 단어는 엄마 손처럼 마음을 따스하게 데워 줍니다. 어떤 단어는 아침햇살처럼 마음을 환하게 만들기도 하고요. 또 어떤 단어는 깊은 숲속 초록 바람 냄새를 데려오기도 하죠. 눈도 귀도 손도 발도 없는 단어나 한 마디 말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요.

“단어 수집가”는 아마도 피터 레이놀즈 자신의 이야기를 그대로 엮어 만든 그림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집한 단어를 모으고 엮어 저 높은 산꼭대기에서 세상을 향해 뿌린 그림책이 바로 이 그림책이 아닐지. 자신이 소중하게 모은 것들로부터 얻은 기쁨과 희망을 주변과 나눌 수 있을 때 그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진정한 수집가의 자세이기도 할 거고요.

읽는 순간 마음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지는 그림책, 그래서 언제나 말이 필요 없게 만드는 피터 레이놀즈의 그림책들, 오늘도 상상 이상 기대 이상인 피터 레이놀즈의 그림책 “단어 수집가”를 읽고 역시~ 하고는 엄지 척! 했습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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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OROOM
KOOROOM
2018/08/06 16:31

와. 제가 생각하고 있던 내용이 이미 책으로 나와있네요 ㅋㅋㅋ 이런 ㅋㅋㅋ 항상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박선미
박선미
2022/03/22 22:26

가지고 있는다고 보물이 아니다. 활용해야하고 나눠야하는 당위성을 그리는 책. 단어를 모으니 멋진 문장이 되고 멋진 문장이 모여 글이 되는 마법을 아이들에게 누릴 수 있게 만들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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