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나는 섬이야

쉿! 나는 섬이야

(원제 : Eiland)
글/그림 마크 얀센 | 옮김 이경화 | 주니어김영사
(발행 : 2018/07/09)

2018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거북이 등 위에 작은 오두막집이 그려진 표지 그림을 보니 나무와 풀이 무성한 고래 등이 섬인 줄 알고 다가갔다가 한바탕 소동을 빚었던 신밧드의 모험이 생각나 잠시 어린 시절을 소환해 보았습니다. 화려하고 시원한 색감이 눈길을 사로잡는 그림책 “쉿! 나는 섬이야”“용기 모자”에 일러스트를 그렸던 네덜란드 작가 마크 얀센의 신작입니다. 어쩌다 거북이는 등 위에 집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거북이 등 위에 지어진 저 오두막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요?

쉿! 나는 섬이야

휘몰아치는 폭풍우에 배 한 척이 난파되고 말았어요. 폭풍우 속 바다는 검붉은 용암이 들끓는 것 같습니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알 수 없는 거센 바다 위에서 배는 두 동강나 버렸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끝장내지는 못했어요. 부서진 배의 조각을 잡고 살아남은 소피와 아빠는 잠잠해진 바다 저 멀리에 있는 무엇인가를 보았습니다. 그것을 본 순간 이들은 반가움에 소리를 질렀어요.

“저기 좀 봐, 섬이다!”

망망대해에서 만난 섬, 그들의 목소리 속에는 ‘살았다’는 안도감이 담겨있습니다.

쉿! 나는 섬이야

봉긋하게 물 위로 솟아와 올라와 있는 것, 넓디넓은 바다 위 나무판자 하나에 의지한 채  바라보았을 때 그것은 분명히 섬이었어요. 아빠와 소피와 개는 허둥지둥 섬 위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부터 초록 섬의 독백이 이어집니다.

등이 간지러워서 돌아보니
한 남자와 여자아이, 개 한 마리가
내 등 위에 올라와 있는 거야.

거북의 등 위에 올라타 안도의 숨을 쉬고 있는 아빠,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있는 소피와 개, 그리고 수면 아래에 자신의 등 위에 올라온 가족을 주시하고 있는 거대한 바다거북. 이렇게 이야기는 거북이의 독백과 거북이의 등을 섬이라 생각한 소피 가족의 대화를 번갈아 들려주면서 진행됩니다.

거북이는 소피 가족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등을 내어줍니다. 몸은 바닷속에, 자신의 등은 물 밖으로 내어놓고는 원래부터 있었던 섬인척 가만히 있었어요 . 밤이고 낮이고 조심조심 행동하는 거북이의 눈길은 언제나 자신의 등 위에 있는 소피의 가족에게 쏠려 있어요. 행여나 이들에게 섬이 아닌 걸 들키기라도 할까봐, 이들이 불편할까 걱정하는 마음이 거북이의 동그랗고 커다란 눈에 가득합니다.

쉿! 나는 섬이야

그렇게 여러 날이 흐릅니다. 어느새 거북이 등 위에는 작은 오두막이 하나 생겨났어요. 마치 처음부터 섬이었던 양 조심조심 행동하는 거북이를 위해 바다 친구들의 행동 역시 조심스러워 보입니다.

커다란 물고기가 달려드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지만 거북이는 소피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찬 바람 부는 겨울이 찾아왔지만 차가워진 바다 물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거북이는 꼼짝도 하지 않고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소피 가족을 구해줄 그 누군가를…….

쉿! 나는 섬이야

북쪽으로 떠났던 새들이 다시 돌아오는 봄이 되자 소피는 자기도 언젠가는 집에 돌아갈 거라고 믿었어요. 여름이 되자 바다는 알록달록한 색으로 빛납니다. 온갖 색깔 물고기가 찾아온 바다, 알록달록 새들로 가득한 섬에서 소피는 여러 새들과 어울려 놀면서 이곳이 참 좋다고 아빠에게 말했어요. 외롭고 두려운 나날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소피는 조바심치지 않고 기다립니다. 작고 포근한 섬에 아빠와 나란히 누워 이 순간 이 모든 것들을 사랑하면서.

알록달록 생명들로 가득한 바다는 소피 마음속 가득한 희망의 빛깔처럼 아름답게 반짝입니다. 긍정 에너지로 가득한 소피의 마음이 빚어낸 빛깔이면서 타인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해내는 거북이의 아름다운 사랑이 만들어낸 빛깔이기도 합니다.

쉿! 나는 섬이야

드디어 그날이 찾아왔어요. 바닷속 친구들이 커다란 배가 오고 있다고 거북이에게 알려주었죠. 저 멀리 아침 안개를 헤치며 다가오는 커다란 배 한 척이 보입니다. 거북이의 주변을 스쳐 지나는 날치들의 푸른 날갯짓이 곧 자유를 얻게 될 소피의 앞날을 축복하는 것 같습니다.

거북이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움직였어요.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여전히 조심조심하면서.

작은 섬 위에 기다란 사다리가 내려옵니다. 개를 안고 배에 오르는 아빠 뒤를 소피가 따랐어요. 무사히 구출되는 모습에 안도감이 들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조금은 서운해집니다. 마지막까지도 거북이는 그저 섬인척 조용히 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내 마음이 서운한 걸까요? 작별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기기 때문일까요?

그런데 그 순간 첨벙 하는 물소리를 내면서 소피가 사다리에서 뛰어내렸어요.

쉿! 나는 섬이야

소피가 내 얼굴을 안아 주었어.
“고마웠어, 나의 섬.”

배웅 나왔던 물고기들도 이들의 아름다운 작별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어요. 완벽한 섬이었던 거북이는 그저 말없이 소피를 바라봅니다. 그동안 소피를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았던 커다란 눈은 여전히 작고 예쁜 소피를 응시하고 있어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할 말을 잃고 한동안 마지막 장면을 바라보았습니다. ‘고마웠어, 나의 섬’이라는 말이 계속해서 귓가에 맴돕니다.

생명과 생명이 신의를 지켜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멋지게 그려낸 그림책 “쉿! 나는 섬이야”, 지켜주고 싶은 것, 뭉클하고 아름다운 것,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것, 사랑은 바로 그런 것! 아닐까요?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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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숙
전정숙
2018/08/13 10:19

아 정말 뭉클합니다. 마지막 한 마디 감동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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