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 안녕달
책표지 : 창비
안녕

글/그림 안녕달 | 창비
(발행 : 2018/07/20)


만날 때 나누는 ‘안녕’이란 인사는 언제 들어도 괜스레 설레고 기분 좋아지지만 이별의 ‘안녕’은 언제나 마음속에 아쉬움을 남깁니다. 마음속에 많은 여운을 남기는 인사말 ‘안녕’, 그림책 제목 “안녕”은 어떤 ‘안녕’을 말하는 걸까요? 만남, 이별? 궁금해집니다.

255페이지에 달하는 제법 두툼한 그림책을 표지부터 찬찬히 살펴봅니다. 표지 그림에 독특한 등장인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분홍색 소시지가 초록색 스쿠터 바구니에 하얀 개를 담고 어딘가로 가고 있어요. 색색깔 별사탕 같은 별들이 제각기 빛을 발하고 있는 캄캄한 밤, 스쿠터 노란 불빛에 의존해 밤길을 달리는 이들의 모습이 오랜 향수를 불러오는 것 같습니다. 잊어버린 기억, 아련한 추억 같은 것들을 말이죠. 뒤표지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있어요.

드넓은 우주, 어느 별에서
소시지 할아버지는 작은 개를 만났습니다.

안녕

총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 “안녕”의 첫 번째 장에는 어느 소시지 가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분홍색 길쭉한 엄마 소시지에게서 태어난 아기 소시지, 엄마 품에서 마냥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시간이 흘러 훌쩍 자란 아기 소시지는 문밖 세상을 동경하게 됩니다. 세상 밖으로 나갔던 아기 소시지는 상처받고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오게 되죠. 늘 그래왔던 것처럼 엄마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아기를 사랑으로 보듬고 정성으로 품어줍니다.

안녕 안녕달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어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 모든 것은 언젠가는 변해버리기 마련이죠. 긴 세월 속에 아기였던 소시지는 어느새 할아버지가 되고 사랑하는 엄마와 영영 작별하게 됩니다.

둘이 함께 시간을 보냈던 소파는 이제 텅 비어버렸어요. 함께 있을 누군가가 절실했던 소시지 할아버지는 엄마 무릎을 대신할 곰인형을 구해와 빈 소파에 두고 마음을 기대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곰인형은 엄마를 대신할 순 없었어요.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을 수는 있지만 먼저 손 내밀어 주지도 못하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줄 수도 없으니까요.

안녕

소시지 할아버지가 하얀 강아지를 만난 것은 어느 애완견 가게 앞에서 였어요. 애완용품 진열장에 놓인 채 누군가 자기를 선택해 주기만을 기다리던 강아지는 결국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하고 거리로 내몰립니다. 길거리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고 있는 강아지가 안쓰러워 우산을 씌워주고 갔던 소시지 할아버지는 결국 다시 돌아와 자신의 초록 스쿠터에 태워 집으로 데리고 갔어요.

엄마와의 슬픈 작별을 경험한 소시지 할아버지 앞에 우연히 나타난 하얀 강아지, 그렇게 둘 사이에 새로운 인연이 시작됩니다.

안녕

전혀 다른 둘이 만나 진짜 가족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소시지 할아버지는 행여나 강아지가 자신을 잘라 먹지는 않을까 두려운 나머지 우주복을 입고 생활합니다. 사랑받고 싶어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는 강아지의 마음을 알 길이 없는 소시지 할아버지는 같이 살면서도 강아지가 다가올까 두렵기만 해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외면할 수 없어 강아지를 데리고 왔지만 소시지 할아버지는 우주복 속에 갇힌 채 자신의 사랑을 어떻게 보여주어야 할지, 타인의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지 못해요. 소시지 할아버지의 전신을 감싸고 있는 우주복은 할아버지의 그런 마음을 그대로 대변합니다. 한 지붕 아래 같이 살고 있지만 우주복을 사이에 두고 둘 사이에는 커다란 마음의 벽이 놓여있습니다.

안녕

시간은 많은 것을 앗아가기도 하지만 많은 것을 가져다주기도 하죠. 소시지 할아버지도 강아지의 마음을 차츰 알게 됩니다. 강아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자신의 곁에 함께 있고 싶은지.

우주복을 벗어던진 소시지 할아버지가 조심스럽게 강아지에게 다가갑니다. 강아지가 풀쩍 뛰어 할아버지 품에 뛰어듭니다. 소시지 할아버지가 강아지를 힘차게 안아주는 장면은 무언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듭니다. 평생을 함께 하면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상처만 남긴 채 끝나는 인연이 있는가 하면 우연히 만나 서로를 사랑으로 이해하고 서로의 아픔을 극복해가는 인연도 있죠.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어요. 소시지 할아버지와 엄마에게 이별이 다가왔던 것처럼 소시지 할아버지와 강아지에게도 그런 순간이 다가오고 맙니다.

안녕

강아지에게 남겨진 것은 오래전 할아버지가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데려다 놓았던 커다란 곰인형뿐, 어느 날 강아지는 우유 투입구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지나치는 이들 모두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강아지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풀죽은 채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을 때 강아지에게 다가와 슬며시 손을 내민 것은 폭탄 아이였어요. 강아지와 폭탄 아이는 분수대에서 혼자 울고 있는 불의 아이와도 친구가 됩니다. 다들 기피하는 폭탄 아이와 불의 아이였지만 외로운 이들에게 그런 것은 큰 문제가 되어 보이지 않습니다.

안녕

이들은 소시지 할아버지가 남겨놓은 집으로 돌아와 함께 알콩달콩 지냅니다. 지치고 외로웠던 마음을 서로 달래주고 감싸 안아주면서. 한 공간 안에서 시간이 흐르며 인연의 시작과 끝이 이어지고 또 이어집니다. 강아지 혼자 남아 쓸쓸했던 집안은 이제 온기로 가득합니다. 곰인형은 오랜 시간 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그들 곁에서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어요. 늘 한결같은 표정으로…

안녕

이제껏 글 없이 그림만으로 진행되었던 이야기는 마지막 장에 이르면 작고 아담한 천문대에 사는 거미 할아버지의 관점에서 진행됩니다. 거미 할아버지는 오랜 세월 동안 천문대에서 죽은 이들에게 그들이 살던 별을 보여주는 일을 해왔어요. 어느 날 그곳을 찾아온 소시지 할아버지는 거미 할아버지에게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냅니다.

“내 개가 보고 싶소.”

두고 떠나온 그 자리에 남겨진 이를 걱정하는 소시지 할아버지의 말에 마음이 울컥해집니다. 끼끽 덜컹 따캉 소리와 함께 소시지 할아버지와 살았던 강아지의 모습이 화면에 비쳤어요. 온종일 말없이 자신이 두고 온 강아지를 바라보던 소시지 할아버지는 외롭게 지내던 자신의 강아지가 친구를 만나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괜찮다고 여러 번 되풀이해 말합니다. 하지만 그 표정은 몹시 미묘해 보여요. 사랑하는 이가 잘 지내는 것이 다행이면서도 사랑하는 이에게 잊혀지는 것에 대한 서운함, 지금 할아버지의 마음이 그럴 거예요.

안녕

하지만 소시지 할아버지의 인연은 여기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거미 할아버지와 소시지 할아버지는 그 별에서 자신들을 찾아온 이들에게 그들의 별에 두고 온 것을 보여주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면서 함께 살아갑니다.

찾아온 이에게 건네는 ‘안녕’, 떠나간 이에게 고하는 ‘안녕’, 수많은 ‘안녕’들이 그림책 속에 반복되면서 우리 삶을 아련하고 따스하게 그려낸 그림책 “안녕”, 이 드넓은 우주에서 우리는 어떤 인연으로 만났을까요? 짧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함께하는 이들에게 얼마나 많이 얼마나 자주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고 있을까요?

누군가 그들의 별에 두고 온 것을 보기 위해서 오늘 밤 저 별이 저리도 빛나는 것은 아닐지, 상상력 가득한 이야기 속에 다양한 감정들을 담아낸 그림책 한 권에 마음이 촉촉해지는 여름밤입니다.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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