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금살금, 까치발...

살금살금, 까치발…

(원제 : À Pas De Loup…)
크리스틴 슈나이더 | 그림 에르베 삐넬 | 옮김 이성엽 | 지양사
(발행 : 2018/08/15)


아주 조그만 소리조차 커다랗게 울려 퍼질 것 같은 깊은 밤, 두 아이가 조심스럽게 복도를 걸어가고 있어요. 행여나 무슨 소리라도 들리지 않을까, 작은 실수라도 하지는 않을까 까치발을 들고 살금살금 숨죽여 걷는 아이들의 몸짓이 무척이나 조심스러워 보입니다.

아이들 뒤에 놓인 북슬북슬한 주황색 꼬리가 궁금해 그림책 표지를 활짝 펼쳐 보니 어둠 속에서 호랑이 한 마리가 근엄한 표정으로 우리를 주시하고 있어요. 어둠 속 두 아이를 지키는 든든한 수호자의 눈빛을 하고 있는 호랑이는 우리에게 넌지시 ‘이 이야기는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살금살금, 까치발...

할머니와 할아버지 집 침대에 누워있던 클레르와 루이는 배가 고프다며 부엌에 가 보기로 했어요. 두 아이는 까치발을 하고 어둠 속을 조심스럽게 걸어갑니다.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는 길고 어두운 복도는 왠지 으스스해 보여요. 금방이라도 무언가 깨어날 것 같은 분위기예요. 하지만 아이들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 걸어나갑니다. 살금살금, 가만가만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실수로 촛대를 쓰러뜨리고 말았어요. 덜커덩! 쿵! 커다란 소리를 내면서 떨어지는 촛대, 아마도 원래의 소리보다 훨씬 더 크게 들렸을 것 같아요. 들키면 절대 안 될 것 같은 비밀을 들킨 분위기, 위기는 생각보다 훨씬 일찍 아이들을 찾아왔어요.

살금살금, 까치발...

그 소리에 할머니가 침실 문을 열고 복도를 살펴봅니다. 때마침  날갯짓하는 앵무새를 보고는 할머니가 잔소리를 하셨어요.

“촛대를 쓰러뜨린 게 바로 네 녀석이구나, 코코.”
“어서 둥지로 들어가! 잘 시간이야.”

짙푸른 어둠 속에 잠긴 대저택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가운데 오직 할머니와 앵무새만 색상을 가지고 있어요. 할머니 방에서 비치는 오렌지색 은은한 불빛이 따사롭게 느껴집니다. 짙푸른 밤의 고요함 속에 갇힌 이쪽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처럼 말이죠.

촛대를 쓰러뜨린 순간 나타난 앵무새는 우연이었을까요? 아니면 아이들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동물일까요? 어둠 저쪽 구석에 두 아이가 숨은 그림 찾기라도 하듯이 조용히 숨죽이고 서있습니다.

살금살금, 까치발...

부엌까지 가는 길은 참 멀고도 험난합니다. 가까스로 난관 하나를 통과하면 또 다른 난관이 나타나고 그럴 때마다 어둠을 가르는 요란한 소리에 할머니 할아버지는 밖을 내다보십니다. 그리고 때맞춰 나타난 동물들이 아이들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꾸중을 들어요. 어둠 속에서 클레르와 루이는 때로는 항아리처럼, 때로는 벽지처럼 숨죽이고 서서 이 상황이 지나가기만 기다리고 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말썽을 피운 동물들에게 하는 말이 꼭 아이들에게 하는 말 같아요. ‘잘 시간이야.’, ‘다들 안 자고 왜 그러니?’, ‘자, 이제 얼른 들어가서 자! 밤 12시야!’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다들 한 번쯤은 들었을 익숙한 잔소리, 생각해보면 새록새록 그리운 잔소리입니다.

배고프다던 아이들은 마당에서 체리까지 따며 달빛 아래 숨바꼭질을 거듭합니다. 적막을 가르며 울려 퍼지는 다양한 소리들이 깊어가는 어둠을 깨우고 있어요. 그들 뒤를 따라다니며 뒷감당을 하느라 바쁜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두 아이를 지켜주는 다양한 동물들. 그렇게 밤이 깊어갑니다.

살금살금, 까치발...

마침내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보아뱀 계단을 밟고 잠자리로 돌아가는 클레르와 루이, 환하게 뜬 달빛만이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처럼 보이네요. 둥근 보름 달이 할머니의 얼굴 같기도 하고 할아버지의 마음 같기도 해요.

환한 보름달이 뜬 짙고 푸른 밤, 마법이 일어나기 아주 좋은 밤이죠.  방에서 복도로, 계단 지나 부엌을 거쳐 마당까지 낯선 할머니 집을 한바퀴 돌면서 한바탕 놀고 돌아온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보아뱀입니다. 처음 있었던 제자리로 돌아가는 길을 인도하는 보아뱀의 모습이 너무나 환상적으로 보입니다. 믿는 자에게만 보이고 들리고 만들어지는 환상의 세계, 이 밤이 그 세계를 아이들 앞에 펼쳐보이고 있어요.

살금살금, 까치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포근한 침대에 누워 깊은 잠에 빠진 두 아이, 창가에서 보아 뱀이 조심스럽게 방 안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두 아이가 혹시라도 깨어날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이 천사 같은 아이들 좀 보세요!”
“그런데, 얘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요?”
“뭐랬는데요?”
“고양이를 갖고 싶대요.”

아이들은 정말 잠이 들었던 걸까요? 그림책 마지막 장면이 묘한 여운을 남겨 주며 마무리됩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모르는 척 두 손주의 귀여운 저지레를 가만 눈감아 주었던 것일까요? 클레르와 루이가 말썽을 피울 때마다 귀신같이 등장하는 동물들은 할머니네 집 박제일까요? 아이들 방에 있던 인형일까요? 진짜 환상의 세계에서 날아온 상상의 동물들일까요? 이 모든 것은 두 아이가 만들어낸 환상의 세계일까요? 아니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아이들의 꿈일까요? 두 아이는 왜 고양이를 갖고 싶어 했을까요? 그림책은 끝까지 알쏭달쏭하게 마무리됩니다. 마치 아이들만 간직하고 있는 비밀을 풀어놓듯이 말이죠.

낯선 할머니 집에서 보내는 밤, 모든 것이 알쏭달쏭하기만 한 한밤의 해프닝을 멋지게 그려낸 그림책 “살금살금, 까치발…”, 상상이든 현실이든 그것을 지켜주는 믿음직한 수호자들이 있어 든든했던 어린 시절의 수많은 날들을 떠올리게 하는 환상적인 그림책입니다.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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