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열매

빨간 열매

빨간 열매

글/그림 이지은 | 사계절
(발행 : 2018/08/21)


기다란 나무 기둥 사이로 얼굴을 빼꼼 내민 아기 곰이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그림책 제목인 “빨간 열매”, 떨어질까 두려운지 발톱을 잔뜩 세운 앙증맞은 발로 나무를 꼭 붙들고 있습니다.  호기심 많은 아기곰의 색다른 일탈을 담은 이 그림책은 “할머니 엄마, “종이 아빠” 등의 그림책에서 신선한 시각으로 가족 사랑을 담아냈던 이지은 작가의 신작입니다.

아기곰 혼자 일찍 일어났어요.

빨간 열매

한참을 걷다 보니 배가 고파진 아기 곰이 커다란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는데 머리 위로 뭔가가 떨어졌어요. ‘톡’소리를 내면서 떨어지는 빨간 열매, 열매도 글자도 빨간색입니다. ‘톡’ 이란 글자를 오른쪽 페이지 아래쪽으로 내려써서 글자까지도  떨어지는 느낌을 더하고 있네요.

아기곰은 빨간 열매를 보자마자 입에 넣고 맛보았어요. 한입 맛본 아기곰의 눈이 동그래집니다. 맛있었거든요.

빨간 열매

또 먹고 싶어요.

머리 위에서 떨어진 맛있는 빨간 열매, ‘저기 어디쯤에서 떨어진 걸까?’하고 올려다보니 끝도 없이 아득한 커다란 나무가 아기곰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습니다. 나무가 어찌나 큰지 끝도 보이지 않아요. 나무 옆에 선 아기 곰은 작디작습니다. 하지만 빨간 열매를 먹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나무보다 훨씬 커다란 모양입니다. 아기곰에게 커다란 나무는 빨간 열매를 따 먹기 위해 그저 올라서야 할 대상일 뿐이죠.

다음 장을 넘기면 나무 기둥에 아기곰 왼쪽 뒷 발바닥만 보입니다. ‘올라가요’라고 쓴 글자는 세로로 쓰여있어 아기곰이 성큼성큼 나무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쉽사리 상상해 볼 수 있어요. 한 발 두 발 내디디며 나무 위로 올라가는 아기곰, 목표만 생기면 우선 저지르고 보는 아이들 모습 같습니다.

그렇게 위로 올라가고 올라가던 아기곰 눈앞에 빨간 무언가가 보입니다. ‘아!’하고 내뱉는 짧은 감탄사, ‘드디어 빨간 열매를 손에 넣었구나!’하는 생각에 아기곰만큼이나 반가운 마음이 앞서갑니다.

빨간 열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빨간 열매가 아니었어요. 빨간 열매를 꼭 닮은 빨간 애벌레였죠. 아기곰은 처음 만난 애벌레에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나눕니다. 부분만 보고는 전체를 알 수 없어요. 세상에는 같은 듯 다른 것들이 넘쳐나니까요. 누구보다 일찍 깨어난 아침, 아기곰은 새로운 것을 만나고 알게 됩니다. ‘안녕하세요?’하고 나누는 인사는 아기곰 스스로 알게 된 세상을 향해 던지는 인사입니다.

그렇게 아기곰은 올라가고 또 올라가고 그럴 때마다 빨간 무언가와 만납니다. 하지만 나무 위에서 만난 것은 아기곰이 애타게 찾고 있는 그것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실망하지 않아요. 애벌레를 만났을 때처럼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나누죠. 그렇게 올라가는 동안 만나는 ‘빨간 것’들이 점점 커지면서 아기곰의 기대치도 점점 커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빨간 열매

그렇게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나무 꼭대기 끝! 기대와는 달리 아무 것도 없어요. 텅빈 하늘만 아기곰을 맞이하고 있는 이 상황이 난감하고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노력만으론 이룰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깨달은 걸까요? 아기곰의 표정, 언젠가 거울 앞에서 본 내 표정 같기도 하네요.

두 손 두 발로 꼭 붙들고 있는 나무 꼭대기는 위험하기 그지 없어 보입니다. 그 때 무언가 아기곰의 시야에 들어왔어요. 빨간 것, 아기곰을 이 곳까지 이끈 그것의 기운이 슬금슬금 퍼져옵니다.

빨간 열매

엄청 큰 빨간 열매!

온 숲을, 온 세상을 다 덮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빨간 열매! 세상 밖으로 막 얼굴을 내밀고 있는 둥근 햇님이 아기곰의 눈에 들어옵니다. 이토록 커다란 열매를 만나기 위해 이렇게 높은 곳까지 왔던 모양입니다. 그럼 그렇지,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 것도 없을리가요.

두 발을 딛고서 떠오르는 커다란 빨간 열매를 마주하고 있는 아기곰의 표정은 경이로움으로 가득차 있겠죠? 이른 아침 부지런하게 서둘러 나무 위로 오른 이유,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나요? 말없이 서서 빨간 열매를 바라보던 아기곰이 커다란 빨간 열매를 향해 풀쩍 뛰어오릅니다. 커다란 빨간 열매 한 가운데를 향해서……

아기곰이 커다란 나무 아래로 떨어지고 떨어집니다. 올라가면서 만났던 빨간 것들을 스쳐 지나가며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던 아기곰이 떨어진 곳은…

빨간 열매

포근포근 푹신푹신한 엄마 품속! ^^

그리 높이 올라갔던 아기곰이 되돌아온 곳은 결국은 엄마 품, 뛰어봤자 벼룩 부처님 손바닥이란 말을 이럴 때 써야 할까요? ^^ 아주 살짝 놀란 듯한 엄마의 표정이 웃음을 자아냅니다. 시종일관 무덤덤한 표정이었던 아기곰은 엄마를 닮았나 봐요.

먼먼 여행 끝에 아기곰이 제자리로 돌아왔어요. 빨간 열매를 찾아 떠난 긴 여정, 그 끝에서 만난 것은 이미 엄마 곰이 준비해둔 빨간 열매입니다. 자기 몫의 빨간 열매를 맛있게 먹는 아기곰의 표정이 재미있어요. 올라가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지만 때로는 떨어져도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죠. 모든 행동에는 결과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동그랗고 노란 달님이 둥실 떠오른 숲속의 밤, 웅크린 엄마 품속에서 모두 잠이 들었는데 이 밤 아기곰만 잠들지 못했군요.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고 누구보다 늦게 잠드는 아기곰이 하염없이 노란 달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호기심이 가득 묻어있어요. 달밤 아기곰의 모험이 다시 시작되는 것일까요?

하얀 여백 위에 먹의 농담으로 그린 아기 곰과 숲의 풍경을 제외하고 빨간 열매와 빨간 열매로 추정되는 것들만 색상을 넣어 표현한 그림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글은 그림책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정도로 최소한으로 담고 원경과 근경을 오가며 잡아낸 그림이 리드미컬하게 상황을 그려내며 수많은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순수한 그 마음 잊지 말고 오늘도 한 걸음 한 걸음 부딪쳐 나가보라고, 그렇게 가다 보면 알게 된다고 이야기하는 그림책 “빨간 열매”, 매일매일 다른 색깔로 세상을 맞이하는 아기곰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오늘은 무슨 색깔과 만났나요?’하고, 마주한 그것에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했냐고 말이죠.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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