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두사 엄마

메두사 엄마

(원제 : Mère Méduse)
글/그림 키티 크라우더 | 옮김 김영미 | 논장

(발행 : 2018/09/17)


바람이 세차게 부는 밤, 보름달빛 아래 망토를 두른 두 여자가 부지런히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습니다. 눈이 커다란 퉁퉁한 여자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두르고 있고 키 작은 여자는 투덜대면서도 연신 잰걸음으로 퉁퉁한 여자를 따라 걷고 있어요.

“오늘 밤이 확실해요?”
“틀림없다니까.”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내려진 커튼 사이로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는 어느 집 앞, 이곳은 지푸라기 같은 길고 노란 머리칼이 온몸을 뒤덮고 있어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메두사가 살고있는 집입니다.

메두사 엄마

오늘은 메두사의 출산일, 두 여자는 메두사의 출산을 돕기 위해 서둘러 이곳을 찾아온 것이었어요.

눈길을 끄는 것은 출산을 도와주는 산파에게조차 얼굴을 보이지 않을 만큼 메두사는 비밀투성이라는 점입니다. 힘겨운 진통을 하는 동안에도 메두사의 표정을 알 수 없었어요. 그저 머리칼이 늘어졌다 곤두섰다 조수를 움켜쥐었다 놓았다 하면서 자신의 상태를 노란 머리카락으로 보여줄 뿐이죠.

진통 끝에 메두사는 예쁜 딸을 낳았어요. 평온하게 잠든 아기를 안고 있는 메두사의 눈빛이 분명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을 거라는 것은 그녀의 조심스러운 손길을 보며 그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메두사 엄마

엄마가 된 메두사는 딸 이리제를 언제나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꽁꽁 싸매고 다녔어요. 어린 이리제에게 엄마 메두사의 머리칼은 온 세상인 셈이에요. 딸 이리제와 함께 있는 동안 메두사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아요. 이리제를 키우는 동안 머리카락 속에 파묻혀있던 메두사의 얼굴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사랑스러운 이리제를 안아보기라도 할라치면 메두사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이리제를 꼭 안고 이 아이는 내 아이라고 날카롭게 소리쳤어요. 메두사는 딸 이리제에게 늘 이렇게 말했어요.

“너는 나의 진주야. 내가 너의 조가비가 되어 줄게.”

조그맣고 영롱한 진주를 품은 조가비, 메두사는 세상으로부터 딸 이리제를 지키기 위해 노란 머리카락으로 이리제를 감싸고 또 감쌉니다. 이리제는 오로지 엄마 안에서 성장했어요. 엄마 메두사의 머리칼 둥지에서 낮잠을 자고 밥을 먹고 모든 순간을 엄마와 함께하며 자라났죠.

언제나 이리제를 꽁꽁 싸매고 있는 메두사의 노란 머리카락은 엄마의 신경 세포 하나하나가 온통 딸을 향해 있음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어떤 일이 있어도 이리제가 엄마품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메두사 엄마

자라면서 이리제는 자꾸만 새로운 것들에 눈길을 보내기 시작합니다. 또래의 아이들이 보이고 저 너머 세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나 학교에 가고 싶어요.”
“절대로 안 돼.”
“왜 안 돼요?”
“엄마가 내가 널 가르칠 수 있단다!”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나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어요.”

언제나 엄마와 모든 순간을 함께하면서도 이리제의 마음 한쪽은 호기심 가득한 세상을 향해 있어요. 엄마와 이리제 사이에는 노란색뿐이지만 이리제가 바라보는 세상은 형형색색 아름다운 빛깔, 다양한 모양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메두사 엄마

언제나 딸을 향해있는 엄마와는 달리 자꾸만 다른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딸 이리제, 엄마는 이제 알고 있습니다. 더 이상 자신의 울타리 안에 이리제를 억지로 가두어 둘 수 없음을.  메두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학교에 가고 싶냐고 묻자 이리제가 큰 목소리로 가도 되냐고 되물었어요. 어느 때 보다 밝은 얼굴로 말하는 이리제를 본 엄마 메두사의 얼굴은 충격에 휩싸인 표정입니다. 한 가닥 한 가닥 전기를 맞은 듯 쭈뼛 선 머리카락만으로도 메두사가 지금 어떤 심정인지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에요. 다음 날 학교에 가는 아이를 따라나서자 이리제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거든요.

“아니, 엄마는 따라오지 말아요.
엄마를 보면 아이들이 모두 무서워해요.”

언제까지나 내 품 안의 어린 아기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훌쩍 자라 홀로서기를 시작한 딸, 그 시간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이야. 이리제의 말을 들은 메두사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메두사 엄마

엄마 없이도 이리제는 야무지고 똘똘하게 학교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수업이 끝나자 가족들이 아이들을 데리러 왔어요. 그런데 낯선 이가 홀로 집으로 돌아가려는 이리제를 불러 세웠어요.

커다란 눈, 노란 머리칼, 검은 장화…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은 싹둑 잘리고 없지만 이리제를 부른 것은 분명 엄마 메두사입니다. 이리제가 커다란 목소리로 반갑게 엄마를 부르며 달려가 안깁니다. 모자 속에 꽁꽁 감추어져 보이지 않던 이리제의 노란 머리칼이 밖으로 나왔어요. 이제 보니 이리제는 엄마인 메두사를 꼭 닮았습니다.

엄마를 보면 아이들이 무서워할 거라는 말에 머리까지 싹둑 자르고 마중 나온 엄마 메두사. 엄마 메두사가 이리제를 이 세상에 데려와 주었고, 훌쩍 자란 이리제는 엄마를 세상 밖으로 꺼내주었습니다.

메두사 엄마

메두사가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모아봤습니다. 치렁거리는 노란 머리카락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메두사는 딸 이리제를 낳으면서 조금씩 얼굴을 드러내 놓아요. 그러면서도 세상에 대한 경계를 풀지는 못합니다. 얼굴을 조금씩 드러내긴 하지만 머리카락 안에 자신뿐 아니라 딸 이리제까지 꽁꽁 숨겨놓죠. 그런 메두사를 이리제가 이 세상에 꺼내놓습니다.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딸아이를 위해 치렁치렁 길었던 머리를 짧게 자르고 세상 밖으로 나온 메두사, 메두사와 이리제 두 모녀의 환한 웃음과 포옹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두사의 머리카락은 파괴적인 힘을 상징합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메두사의 머리카락은 딸 이리제를 위한 안전한 울타리이면서 세상과의 고립을 상징하고 있죠. 하지만 더 이상 울타리는 필요 없어졌어요. 이리제가 성장해 세상 밖으로 성큼 나섰으니까요. 덕분에 메두사 엄마도 자신을 가두고 있던 그 울타리를 거두고 딸아이를 따라 세상 밖으로 힘든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메두사와 이리제 모녀의 포옹은 세상을 끌어안는 용기입니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아기자기한 그림들과 함께 생각할 거리들을 가슴 가득 남기는 그림책 “메두사 엄마”,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 아빠도 아이를 따라 성장합니다. 메두사 엄마가 그랬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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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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