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님과 농부

글 권정생 | 그림 이성표 | 창비
(발행 : 2018/10/12)


‘권정생 문학 그림책’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 “장군님과 농부”는 1988년 출간된 동화집 “바닷가 아이들”에 수록되었던 15편의 단편동화 중 한 편으로 이성표 작가 특유의 맑고 깨끗한 색채에 상징으로 가득한 그림으로 재해석된 그림책입니다.

전쟁터에서 혼자 살아남아 도망친 장군과 사람들이 모두 떠나 텅 빈 마을 지키며 살아가던 늙은 농부, 얼핏 보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의 우연한 만남과 동행을 통해 삶의 진실성과 인간애를 통찰력 있게 그려낸 작품이에요.

장군님과 농부

전쟁터에서 혼자 허겁지겁 도망쳐 나온 장군님은 텅 빈 시골 마을 오두막에 홀로 남은 농부 할아버지와 만났습니다. 인적 없는 마을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보고 기뻐했어요.

둘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할아버지는 큰 힘이 되어 주는 장군님을 만났고
장군님은 다스리고 부릴 수 있는 농부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부하도 없이 도망쳐 나온 볼품없이 마른 장군님의 어깨와 모자 위에 붙은 별 계급장만이 그의 지위를 말해줍니다. 마주 선 할아버지의 그을린 검은 팔뚝이며 커다란 밀짚모자는 그가 고된 농사일을 하며 살아가는 농부임을 말해주고 있죠.

이제껏 해온 그대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할아버지에게 명령만 내리는 장군님, 그저 장군님의 명령에 무엇이든 기쁘게 따르는 순박한 농부 할아버지,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나누는 대화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장군님과 농부

할아버지가 삶아준 감자를 먹고 오랜만에 달콤하고 편안한 잠에 빠져들었던 장군님은 대포 소리를 듣고 함께 도망치자며 그곳에 남겠다는 할아버지를 재촉했어요.

산을 넘고 또 넘어 안전한 곳을 찾아 두 사람은 도망칩니다. 산 넘어 산, 쏟아지는 폭격, 탱크와 비행기, 쫓아오는 군인들, 길 끝에 서있는 두 사람은 몹시도 피곤해 보입니다. 짐 하나 들지 않고도 몹시 지쳐있는 장군님, 자루 가득 감자를 짊어지고 구부정한 상태로 장군님을 보호하며 길을 걷는 할아버지, 다스리고 부릴 수 있는 할아버지를 만난 것은 장군님에게 분명 큰 행운이지만 장군님은 할아버지에게 어떤 힘이 되어주고 있는 걸까요?

투명하고 맑게 채색한 그림 위에 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순진하게 그려진 비행기며 탱크와 호랑이의 모습이 급박한 상황을 아이러니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 무서운 전쟁 한복판을 뚫고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까요?

장군님과 농부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장군님을 모시고 할아버지는 연장 하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돌도끼로 뗏목을 만들어 냅니다. 바다 한가운데까지 들려오는 육지의 대포 소리가 두 사람을 무섭게 위협하고 있어요.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면서도 장군님은 그저 어서 빨리 가자고 재촉할 뿐 노를 젓는 이는 오직 할아버지 한 사람뿐이에요. 명령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떼쓰기를 하고 있는 어린아이 같은 장군님 곁에서 할아버지는 오직 손으로 묵묵히 모든 것을 실천하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갑니다.

바다에서의 기약 없는 날들이 흘러갑니다. 두려움 속에 여러 날을 보낸 후 두 사람은 무인도에 도착하게 되었어요. 그곳에서의 삶 역시 할아버지 몫입니다. 할아버지가 가꾼 땅 위에 초록 생명이 싹을 틔웁니다. 할아버지도 움튼 새싹도 생명력 가득한 초록색입니다.

장군님은 그저 먼 바다를 바라보며 육지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모시러 올 날만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요. 그리고 어느 날 그토록 기다리던 그날이 찾아왔습니다.

장군님과 농부

섬을 향해 다가온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어요. 둘 다 누더기를 입고 머리가 더부룩하고 수염이 자라있었어요. 우두커니 서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농부 할아버지에 달려가 엎드려 절하며 장군님이라고 불렀어요. 장군님이 자신의 누더기에 붙어있던 낡은 계급장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자신이 장군이라고 말하자 사람들은 이렇게 소리쳤어요.

“그것도 모두 가짜요. 당신은 우리 병사들과 백성들을 싸움터에 남겨 놓고 혼자서만 도망치지 않았소?”

어려울 때 큰 힘이 되어 줄 거라 생각했던 장군님, 하지만 정작 어려움이 닥치자 혼자서만 살겠다고 도망친 사람이 스스로를 장군님이라고 말할 수 있다니 그 용기만큼은 대단한 듯합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어떤 것도 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그저 계급장을 보이며 자신이 진짜 장군이라 말할 수 있다니…… 하지만 우리 역사에 이런 지도자들이 실제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마음이 서글퍼지네요.장군님과 농부

한 병사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어요. 쉴 새 없이 노동을 하여 거칠고 못이 박힌 손, 주름지고 굴곡진 농부의 마디 굵은 손은 한평생 땅과 함께 진솔하고 우직하게 살아온 그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장군이 보여준 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진실하고 성실함이 담겨있는 손입니다. 거칠고 투박한 손에서 저절로 환한 빛이 퍼져 나가는 것 같습니다.

“나는 장군이 될 수 없지만, 장군이 되는 것도 싫습니다.”
“그렇습니다. 할아버지. 그렇게 장군이 되기 싫은 분이 바로 장군의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백성들이 바로 장군인 것입니다. 이젠 우리나라에는 저런 장군 같은 사람은 필요 없습니다.”

사람들은 할아버지만 배에 태워 떠나면서 울부짖는 장군님에게 진정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싶다면 스스로 배를 만들어 타고 건너오라는 말을 남깁니다. 할아버지를 태운 배는 섬에서 점점 멀어집니다.

묵묵히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한 사람들이 가꾸어 가는 세상이라면 전쟁의 공포 없는 세상이 찾아오지 않을까요? 노란 배는 이제 희망을 싣고 바다를 건너 갈 것입니다. 세치 혀로 휘두르는 폭력에 얼룩진 공포의 바다가 아닌 희망으로 출렁이는 평화의 바다를……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에는 어린이나 동물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도 많지만 “사과나무밭 달님”, “해룡이”, 그리고 오늘 소개한 “장군님과 농부”처럼 어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도 제법 많습니다. 생전에 선생님은 어린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어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들을 쓰셨다고 합니다.

그림을 그린 이성표 작가는 윤동주 시인의 “소년”의 아름다운 싯구들을 파란색의 깊고 얕은 농담으로 담담하게 그려냈었죠. 그의 파란 물감은 이번에도 글 작가의 마음을 아주 멋스럽게 살려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푸른색 톤의 메인 그림들과 함께 다양한 상징적 이미지들을 활용해 권정생 선생님이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마음과 바람을 감동적으로 전달하는 그림책 “장군님과 농부”였습니다.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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