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너무 공주

너무너무 공주

허은미 | 그림 서현 | 만만한책방
(발행 : 2018/11/15)

2018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깔끔한 하얀 바탕 위에 글자와 그림을 적절히 섞어 재미있게 만든 그림책 제목이 눈에 쏘옥 들어옵니다. “너무너무 공주”란 독특한 제목이 호기심을 자아냅니다.

‘ㄴ’자 옆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는 아이가 공주겠죠? 공주의 표정은 마냥 해맑은데 임금님의 표정은 근심으로 가득한 것 같기도 하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둘의 표정은 다르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공주가 임금님을 쏘옥 빼닮았다는 점이에요.

너무너무 공주

늘그막에 딸을 하나 낳은 임금님은 딸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며 사랑했어요. 임금님이 그토록 사랑한 공주는…

예쁘지는 않지만 못생기지도 않았어.
착하지는 않지만 못되지도 않았어.
똑똑하지는 않지만 멍청하지도 않았지.

놀고 싶을 땐 놀고, 자고 싶을 땐 자고
웃고 싶을 댄 웃고, 울고 싶을 땐 울었어.
좋은 건 좋다 하고, 싫은 건 싫다 했어.

그런 공주를 바라보면서 임금님은 늘 생각했어요. ‘공주는 대체 누구를 닮았을꼬?’ 누굴 닮았는지 누가 봐도 너무나 뻔~한데 임금님 자신만 모르고 있는 걸까요? 누구보다 사랑스럽지만 어느 것 하나 특별한 점 없는 평범한 공주를 생각할 때마다 임금님은 한숨을 내쉬었어요.

너무너무 공주

임금님의 한숨 소리에 잠에서 깬 잉어가 자신의 수염 세 가닥을 내어주면서 말했어요. 수염 하나에 소원 하나씩을 들어주겠다고 대신 소원을 빌 때마다 임금님은 늙고 쭈글쭈글해질 거라고 말이죠.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딸을 얻은 임금님, 하지만 그 사랑스러운 딸 때문에 한숨을 짓게 된 임금님. 임금님은 잉어의 수염으로 어떤 소원을 빌까요? 만약 여러분이 잉어의 수염을 받았다면 어떤 소원을 빌고 싶나요?

임금님은 첫 번째 수염을 들고 세상에서 가장 예쁜 공주가 되게 하라는 소원을 빌었어요. 그러자… 임금님은 조금 늙고 쪼글쪼글해졌고,

너무너무 공주

공주님은 너무너무 예쁘게 변했어요. 형광등 100개를 켠 듯한 공주의 빛나는 미모 때문에 눈이 부신 까막까치들이 자신의 눈을 가려버렸네요. ^^

그런데 사람들이 공주의 미모를 칭찬할수록 공주는 점점 웃음을 잃고 까칠하게 변해갑니다. 착하지는 않지만 못되지도 않았던 공주였는데 말이죠. 두 번째 잉어의 수염이 필요한 순간이군요. 보다 못한 임금님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공주가 되게 하라는 소원을 빌자 착하고 상냥하게 변하긴 했지만 자신의 진짜 마음을 밖으로 꺼내놓지 못하는 공주는 자꾸만 생기를 잃어갑니다.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반대쪽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공주님 역시 하나를 바꾸면 다른 쪽이 문제가 되어 터져 나옵니다. 그런 공주님 때문에 마음이 아픈 임금님은 무엇이 잘못된 건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결국 마지막 소원을 빌었어요.

수염아, 수염아……

너무너무 공주

임금님이 마지막 소원을 빌자 공주는 예쁘지는 않지만 못생기지도 않고 착하지는 않지만 못되지도 않고 똑똑하지는 않지만 멍청하지도 않은 공주가 되었어요. 생기를 잃었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돌아온 공주를 바라보면서 임금님은 낯설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런 의문이 들었어요.

‘이상하다.
분명 마지막 소원을 빌었거늘 어디가 달라진 게지?’

너무너무 공주

곰곰 생각에 잠겨있던 임금님은 소원만 세 번 바뀌었을 뿐 공주는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달라진 것은 더 이상 써먹을 잉어 수염이 한 가닥도 남아있지 않다는 점, 그리고 세 가지 소원들을 빌기 전보다 임금님이 조금(?) 더 늙어버렸다는 사실!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임금님만 늙어버렸으니 흠, 완전 손해 보는 장사였는데요.^^

임금님의 마지막 소원이 무엇인지는 끝까지 그림책에 나오지 않아요. 도대체 임금님은 마지막 소원을 뭐라고 빌었을까요?

뒤표지에 임금님이 공주 옆에서 이렇게 소원을 빌고 있는 장면이 나와요.

수염아, 수염아! 너무너무너무너무…… 되게 하라!

‘……’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요? ‘너무너무너무너무 행복하게 되게 하라!’ 내지는 ‘너무너무너무너무 공주답게 되게 하라!’ 이런 소원 아니었을까요? 여러분은 뭐라고 생각했나요?

반복되는 세 번의 소원, 그리고 원점으로 돌아온 공주. 세 번이나 소원을 빌었지만 결국 이뤄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현실, 뭔가 스토리가 많이 낯익게 느껴지는데요. 이 이야기는 옛이야기인 ‘세 가지 소원’을 모티브로 재구성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요정 앞에서 실수로 소시지가 먹고 싶다고 말한 할머니에게 화가 난 할아버지가 홧김에 소시지가 할머니 코에 붙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결국은 소시지를 할머니 코에서 떨어지게 하는 것으로 마지막 소원을 허무하게 다 써버린다는 이야기, 다들 기억하시죠?

원하던 소원이 이루어지면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서두르지 않고 시간을 두고 찬찬히 생각하게 된다면 우리는 좀 더 근사하고 멋진 소원을 빌 수 있을까요? 그림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소원이라는 것은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인데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율을 살린 허은미 작가의 글이 입에 착착 감겨들고 단순함 속에 숨은 뜻을 잘 담아낸 서현 작가의 그림이 빛을 발하는 그림책 “너무너무 공주”, 행복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어요. 단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 보일 뿐이죠.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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