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을 걷다

골목을 걷다

글/그림 남성훈 | 계수나무
(발행 : 2018/11/30)

예전 작업실이 있던 충정로역 주변엔 요즘 보기 드문 골목길이 세 군데나 있습니다. 종근당 뒷편에 자리잡은 작은 식당들 옹기종기 모인 골목길, 이 곳에서 길 건너가면 있는 알라딘 본사 건물 에워싼 골목길,  마지막으로 철길 건너 미동초등학교 뒷쪽에 자리잡은 또 하나의 골목길. 점심 먹고 부른 배 소화 시킬 겸 산책할 때 이 골목 저 골목 들여다보며 ‘야~ 여긴 아직 이런 게 다 있네!’하며 혼잣말로 중얼대기도 하고, 그 안에 사는 분에게 들킬까봐 조심조심 대문 안쪽 들여다보던 기억이 납니다. 대문 밖에 내놓은 타고 남은 허연 연탄조차 신기해하며 봤었는데… 그사이 5년 여의 시간이 흘렀으니 그 시간만큼 또 변해 있겠군요.

이제는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든 골목길, 그래서 만나면 반가운 골목길, 들어서는 순간 아련한 옛 추억으로 나를 이끄는 골목길. 사람들 마음이란게 참 별나다는 생각이 새삼 드네요. 기껏 없애놓고 그리워들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골목을 걷다

문방구 앞을 지나며 재잘대는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만 같은 풍경입니다. 우리 학교 앞엔 여남은 개의 문방구들이 한줄로 늘어서 있었더랬습니다. 돼지 문방구, 뽀빠이 문방구, 우정 문방구, 학교 이름 딴 문방구… 거기서 거기인 물건들을 팔지만 문방구 저마다 자신만의 진열 노하우로 아이들 마음을 끌어당겼고, 나름 자기들만의 전문 분야가 있었습니다. 돼지 문방구는 여름엔 아이스크림, 겨울엔 호빵을 맨 앞에 배치 시킵니다. 뽀빠이 문방구 아저씨는 전자오락기가 가장 많았고 최신 오락도 제일 먼저 들여온다는 자부심이 아주 강했었는데… 교문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할머니네 문방구는 사건 안 사건 들린 아이들 손에 알사탕 하나씩 쥐어주시는 감성 마케팅을 구사하셨었죠.

골목을 걷다

“이따가 공터에서 만나자.”

“너 딱지 몇 장 있어?”

집에다 책가방 던져놓고 놀 궁리하는 아이들의 대화를 듣다보니 골목 말고도 없어진 게 또 하나 있습니다. 공터. 그러고 보면 요즘 아이들이 스마트폰, TV, 게임, PC방 등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골목도 공터도 없어진 지금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놀만한 곳이 없으니 말입니다. 우리 때는 구슬치기, 딱지치기, 왔다리갔다리, 짬뽕, 오징어포, 삼팔선, 비석치기, 잣치기, 제기 발야구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다양한 놀이들을 골목이나 공터에서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끝없이 해댔었는데…

골목을 걷다

집에 가는 길 구멍가게를 그냥 지나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호주머니에 동전이 똑 떨어졌으면 또 모를까 밤 맛 하드 한 입 두 입 베어무는 재미, 노랑 하양 초코 아폴로 윗니와 아랫니로 살살 훑으며 빨아 먹는 재미는 도저히 포기 못하죠.

그날 따라 같이 몰려다니던 녀석들 모두 빈털터리일 때는 그중 아무네 집이라도 상관 없이 우르르 몰려가 찬밥 남은 것 싹 비우기도 했고, 계란 후라이나 진주햄 소시지라도 있으면 황송해서 어쩔 줄 몰랐죠. 아버지가 택시 기사 하시던 친구가 있었는데 사나흘에 한 번씩 아버지 쉬는 날 가면 늘 짜장면을 시켜주셨었습니다. 누구네 집으로 갈까 정하기 전에 꼭 걔네 아버지 쉬시는 날인지 확인하곤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

골목을 걷다

학교에서 집까지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 가다보면 집이 가까운 놈들부터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우리 집은 버스 종점 근처라 혼자 남는 건 늘 저였습니다. 대신 우리 동네에서 제일 놀기 좋은 공터가 우리집 바로 아래에 있어서 일찍 집에 간 놈들은 책가방 던져놓고는 부랴부랴 뒤따라오곤 했죠. 집에 가는 길에 신기한 거라도 발견하거나 이미 뭔가 놀기 시작한 친구 녀석들 만나기라도 하면 거기서 한동안 신나게 놀다 밥 때 놓쳐서 엄마한테 혼나기도 하구요.

골목을 걷다

평상에 앉아 아이들 노는 것 지켜보다 무리 중에 책가방 맨 채 날뛰는 놈이라도 발견되면 동네 어른들이 호되게 잔소리를 하기도 하죠. 누구야~ 너 가방도 안갖다 놓고 그러구 있냐, 숙제는 다 하구 노냐 이러면서 말이죠.

집집마다 대문 앞이나 담벼락 옆에 내놓고 말리는 건 또 왜 그리 많았는지. 놀다보면 걸치적거려서 골목 안쪽으로 옮겨놓거나 대문 안에 슬쩍 들여놨다가 그 집 할머니한테 잔소리 듣기도 했습니다. 빨리들 집으로 가라고 쫓아내는 아저씨들도, 옥수수나 고구마 먹으라고 건네는 아주머니들도, 축구라도 할라치면 자기들도 은근 끼고 싶어서 자꾸만 기웃거리며 공 그렇게 차면 안된다는 둥 지분거리던 동네 삼촌들, 그들 모두 우리 이웃이었는데… 골목이 사라지면서 우리 이웃도 함께 사라져 버린 건 아닌지…

골목을 걷다

오빠,
엄마가 밥 먹으래!

밥 먹게 오빠 불러오란 말에 여동생은 입이 한 뼘은 튀어나왔을지도 모릅니다. 십중팔구 방금 전 엄마 심부름으로 저 아래 구멍가게 가서 콩나물도 사왔을테니까요. 어쩌면 오늘만도 서너 번은 더 왔다갔다 했을 그 길을 오빠 데리러 또 나서야 하니 말이죠.

오빠 부르는 여동생의 고함 소리는 골목길 이웃들에게 저녁 때가 다 되었음을 알려줍니다. 그 위로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합니다. 친구들끼리, 사이 좋은 이웃끼리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진 골목길이 오늘은 하얀 눈으로 이어지겠네요. 그리고 내일 아침엔 또 삼삼오오 모여 쌓인 눈 치우며 서로의 땀을 나누겠지요.

아이와 함께 골목길 산책 어떤가요? 날은 춥지만 정감 어린 골목길을 누비다 마주친 찻집에서 따뜻한 핫쵸코 한 잔에 몸과 마음이 사르르 녹는 행복을 만끽해 보시길. 이화동, 성북동, 해방촌 등 서울엔 아직도 골목길들이 많습니다. 벽화마을이나 골목길 열풍에 전국에 유명세를 탄 골목들도 꽤 여러 곳입니다. 그 골목엔 어떤 맛집들이 있는지도 미리 찾아봐야겠지만 그 곳엔 어떤 이웃들이 살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고 아이와 이야기 나누는 것도 잊지 마시길.

시간도 없고 너무 추워서 엄두를 못내는 분들은 서점에서, 도서관에서 이 책을 찾아보세요. 정감어린 골목길의 풍경을 차분하게 그려낸 그림책 “골목을 걷다”, 여러분을 포근한 골목길로, 어릴 적 행복했던 어느 한 때로 안내해 줄 겁니다.


함께 읽어 보세요 : 골목이 데려다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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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호

이 인호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 수다에 체력 고갈되어가는 아내를 18년째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남편. 한때 아내가 쓴 딸아이 육아일기에 '396개월 남아'로 등장했었던 그 남아. 그림책 좋아하는 542개월 남아로 폭풍 성장 중 ^^ | 2015년 7월 | ino@gaonbit.kr

5 Replies to “골목을 걷다

    1. 그 시절을 겪었건 그렇지 않건 옛 추억에 관한 이야기들은
      늘 잔잔한 감동을 주지 않나 싶습니다.
      바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라 그런 거겠죠? ^^

  1. 아!~~ 참 정감이 있네요. 그림이^^ 우리가 저런 시절을 살았는데.. 감사해요! 잊혀져 가는 것을 기억시켜 주어서요!!

    1. 늘 그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그림책을 보면서 깨닫게 되네요. 은자님의 정감이란 말씀에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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