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가루를 사러 가는 길에

초코가루를 사러 가는 길에

글/그림 박지연 | 재능교육
(발행 : 2018/11/19)

2018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초코가루를 사러 가는 길에”라는 제목이 굳이 없더라도 책표지 그림만 보면 곰이 지금 어떤 걸 마시는 중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얀 머그컵,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하고 달콤한 향기, 꽁꽁 얼었던 몸과 마음이 사르르 녹아드는 것만 같은 곰의 행복한 표정. 따뜻한 코코아(이 책에서는 ‘초코차’라고 표현합니다) 한 잔 생각이 절로 나는군요.

초코차의 달달한 향기와 포근함에 푹 빠진 곰이 들려주는 따뜻한 이야기 한 번 들어보세요.

초코가루를 사러 가는 길에

무엇이든 안아 주는 것을 좋아하는 곰이 있었습니다. 푹신한 소파도, 딱딱한 숟가락도, 집 앞의 커다란 나무까지도 꼬옥 안아 준대요. 그냥 어색하게 안아 주는 게 아니라 넉넉함과 푸근함을 가득 담아서 꼬옥 안아 준답니다.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나무를 꼭 껴안은 곰 한 번 보세요. 차가운 겨울바람에 메말랐던 나무가 봄이 온 줄 알 정도로 따뜻한 곰의 허그. 덕분에 겨울잠 자던 다람쥐도 깨어났나봅니다.

초코가루를 사러 가는 길에

무엇이든 안아 주는 걸 좋아하는 곰은 초코차를 아주아주 좋아한대요. 곰의 집 근처에만 가도 달콤한 초코차 향기가 흘러나올 정도로 말이죠. 벽난로에 불을 피워놓고 푹신한 소파에 앉아 마시는 달콤한 초코차,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따스함이 느껴지지 않나요?

그런데 하필 초코가루가 똑 떨어졌어요. 곰은 초코가루를 사러 언덕 두 개를 넘어가면 있는 초코가루 가게로 향합니다.

초코가루를 사러 가는 길에

초코가루를 사러 가는 길에 나무 뒤에서 울고 있는 여우를 만났습니다. 곰은 왜 우는지 물었어요. 여우는 눈물을 뚝뚝 흘려가며 곰에게 하소연을 늘어 놓습니다. 여우가 잘 속일 것 같아서 친구들이 잘 놀아 주지 않는다며 엉엉 우는 여우.

그 때…

초코가루를 사러 가는 길에

곰은 그런 여우를
꼬옥
안아 주었어요.

곰에게 안긴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한없이 서글펐던 여우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서서히 울음을 그친 여우는 마음 속에 포근함을 느끼며 조금씩 웃음을 찾았어요. 이렇게 말이죠.

초코가루를 사러 가는 길에

이런 여우의 행복한 미소라면 지금껏 여우를 의심하고 같이 놀아 주지 않았던 친구들도 마음을 바꾸지 않을까요? 무엇이든 안아 주는 곰 덕분에 여우는 친구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겠네요.

무엇이든 안아 주는 곰의 따뜻한 허그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초코가루를 사러 가는 길에

버스가 빨리 안 온다며 잔뜩 심통이 난 돼지에게도 방금 전 여우와 같은 환한 웃음을 전해주었구요.

초코가루를 사러 가는 길에

곰의 장바구니를 빼앗으려던 불량 토끼들도 무엇이든 안아 주는 곰의 허그 한 방에 요렇게 눈꼬리가 아래로 쏘옥 내려가면서 착한 토끼들로 변신합니다. 왼쪽 두 마리 토끼는 방금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놀란 표정, 오른쪽 노란 토끼는 그 단계를 지나 곰의 푸근함을 자신의 마음 속에 이미 받아들이고 행복에 젖어 있습니다. 갑작스레 착해진 전직 불량 토끼들의 표정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되네요.

초코가루를 사러 가는 길에

그렇게 길에서 만난 이웃들을 일일이 꼬옥 안아주느라 곰의 발걸음은 더뎌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초코가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문을 닫고 난 뒤였어요. 빈 손으로 집에 돌아와 벽난로 앞에 앉은 곰의 표정이 시무룩합니다.

그런데, 그 때 누군가 문을 두드립니다. 곰이 문을 열었더니 오늘 길에서 만났던 친구들이 모두 함께 찾아왔습니다. 무엇이든 안아 주는 곰이 제일 좋아하는 초코가루를 들고 말이죠.

초코가루를 사러 가는 길에

곰은 맛있는 초코차를 만들어
친구들과 나누어 마셨어요.
오늘 마시는 초코차는
더 달콤하고
더 따뜻했어요.

얼굴에 웃음 가득한 여우와 돼지, 그리고 선량 토끼들과 함께 마시는 초코차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달콤하고 따뜻합니다. 맛있는 초코차를 만드는 최고의 비법은 소중한 사람과 함께 마시는 것임을, 초코차를 더욱 달콤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건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는 넉넉한 마음임을 무엇이든 안아 주는 곰과 친구들이 가르쳐 주는 그림책 “초코가루를 사러 가는 길에”입니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게 백 마디 말보다 더 훌륭한 위로라고 하죠. 여우처럼 소외된 이들, 돼지처럼 분노와 혐오로 가득한 이들, 그리고, 내 가족과 우리 사회에 반목하고 반항하는 이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위로와 충고, 질책의 말이 아니라 그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 그들을 안아주는 것 아닐까요? 올 한 해 우리 모두 서로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서로를 보듬어주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이 인호

이 인호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 수다에 체력 고갈되어가는 아내를 18년째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남편. 한때 아내가 쓴 딸아이 육아일기에 '396개월 남아'로 등장했었던 그 남아. 그림책 좋아하는 542개월 남아로 폭풍 성장 중 ^^ | 2015년 7월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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