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가족
5대 가족

시 고은 | 그림 이억배 | 바우솔
(발행 : 2014/04/25)


고은 시인의 시를 그림책으로 만나기는 두번째입니다. 그림이 매우 인상적이었던 “시튼 동물기“에 이어 고은 시인의 시를 그린 두번째 그림책이 나왔다는 소식에 부리나케 사들고 온 “5대 가족”.

고은 시인의 시를 그리다

이억배 작가의 그림엔 대자연과 그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순수한 티벳 유목민 가족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 숨쉬며 원작 시를 되새김질 시켜줌으로써 보는 이의 마음 속에 잔잔한 울림과 편안한 힐링을 전해 줍니다. 무엇보다도 텍스트만으로는 노벨상 후보에 늘 거론되고 있는 시인의 시심을 나누기에 아직 어린 우리 아이들에게 시인 할아버지와 교감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앞서 출간되었던 “시튼 동물기”와 갓나온 “5대 가족” 두권의 그림책은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5대 가족”은 드넓게 펼쳐진 초원을 배경으로 세대와 세대간의 조화와 계승을 통해 변함 없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티벳 유목민들의 일상을 시간의 흐름에 맞춰 한편의 서사시와 같은 느낌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림을 따라 싯구를 따라 한장 한장 넘기다 보면 그 속에 대를 이어 전해지는 삶의 지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삶, 그리고 가족의 참된 의미가 담겨져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5대 가족

양 떼들이 스스로 돌아왔다. 1백70마리쯤이었다.

그저께 한 마리가 죽었고 오늘은 한 마리가 태어났다.

가족의 참된 의미

아기 양 한마리가 새로 태어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여섯살배기 텐진이 달려와서는 할아버지들께 기쁜 소식을 알립니다. 할아버지에게, 증조할아버지에게, 고조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한마리 태어났어’ 하고 소리칩니다. 할아버지도 증조할아버지도 고조할아버지도 다 그냥 할아버지이고 모두가 그냥 가족입니다.

할아버지들에게는 세월의 연륜으로부터 배어 나오는 삶의 지혜가 있고, 아버지에게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성실함이 있습니다. 다른 집 양을 치는 쌍동이 형제들 젊은 청년들에게는 부지런함과 젊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늘 따스한 웃음으로 감싸주는 어머니와 할머니, 아내들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이들의 꿈이요 희망인 새로운 생명, 막내 여섯살배기 텐진과 새로 태어난 아기 양이 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서 살아가는 유목민 가족의 대서사시는 어제 한 생명을 보내고 오늘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며 흐르는 물처럼, 스치는 바람처럼 끝없이 이어집니다.

삶의 터전이며,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고, 기쁜 일은 함께 즐거워 하고 힘들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가족. 여섯살배기로부터 자신의 나이도 잊을만큼 오랜 세월 살아 온 고조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5대에 걸쳐 이룬 소박한 텐진 가족의 삶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5대 가족

고조할아버지도 증조할아버지도

그냥 할아버지도 다 할아버지였다.

대를 이어 전해지는 삶의 지혜

170마리의 양을 치는 텐진네 가족, 양을 쳐보지 않은 우리로서야 그 숫자의 많고 적음을 가늠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그저께 한마리가 죽었고 오늘은 한마리가 태어났다’는 대목에서 어느 한대에 일궈낸 숫자가 아닌 5대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늘리고 불어난 숫자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한마리가 새로 태어났지만 그저께 한마리가 죽었으니 텐진네 가족의 양떼는 지난 사흘간 줄어들지도 늘어나지도 않은 셈이죠. 우리가 주목할 것은 양이 죽은 것이 먼저고, 새로 태어난 양이 나중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의 소멸이 새로운 출발과 탄생을 가져오는 씨앗이자 밑거름임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요? 양들의 죽고 태어남을 통해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과 삶의 지혜를 통해 지금의 그들의 삶이 앞으로의 텐진의 삶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요?

5대 가족

내일은 다른 풀밭을 찾아가야 한다.

납작 엎드려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는 풀밭을

용케 고조할아버지와 양 떼 암컷들이 먼저 안다.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삶

유목민들의 삶에서 양에게 먹일 풀이 많은 곳을 찾아 내는 일만큼 중요한게 또 있을까요?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는 풀밭을 용케 고조할아버지와 양떼 암컷들이 먼저 안다’ 라는 구절 속엔 지난해 이맘때 저 산 너머 산등성이에 풀이 많았으니 올해에도 그곳에 가면 여전히 풀이 잔뜩 자라 있겠지… 하는 자연이 베풀어 줄거라는 기대와 믿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5대 가족

여섯살배기 텐진의 눈엔 고조할아버지와 양떼 암컷들이 먼저 아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겠지만 정작 당사자인 고조할아버지와 양떼 암컷들에게는 아무 일도 아닙니다. 지난 해, 지지난해 해마다 이맘때면 그자리엔 풀이 있었음을 먼저 경험했을뿐이고, 자연은 늘 한결같이 베풀어주고 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주어진 삶에 순응하고 기다리며 그것이 넉넉하건 부족하건 받은만큼 만족하고 살아가는 것 뿐일테니까요.

모든 것이 갖춰진 아파트에 정착하여 살면서 무엇이든 필요한 것은 마트나 인터넷을 통해 구할 수 있는 우리들의 눈에 늘 풀을 찾아 떠나야만 하는 텐진네 가족의 삶이 각박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자연과 더불어 자연이 주는 그대로 순응하며 살아가는 그들에게선 우리가 누리지 못하는 자유와 편안함이 있음을 느끼는 것은 저뿐만은 아닐거라 생각해봅니다.


비슷한 느낌의 그림책 : 할아버지의 이야기 나무


※ <5대 가족> 시 전문

5대 가족

고은

온전히 검은 바위산 비탈 밑
거기 숨어 있는 풀밭이 있다

어김없이 유목 살림 천막이 처져 있고
양 떼 있다

고조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막내아들 여섯 살배기 텐진

텐진이 달려왔다
“할아버지
한 마리 태어났어”

그러자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가 함께 대답하였다
“아 그래”
“아 그래”

고조할아버지도
증조할아버지도
그냥 할아버지도
다 할아버지였다

다만 고조할아버지는
귀머거리라
어린 양이 태어난다는 뜻 모르고
다녀왔어요라는 인사로 알고
“아 그래”

증조할아버지 72세
할아버지 53세
아버지 32세
텐진 6세
고조할아버지는 몇 살인 줄 모른다
아마 89세 90세
그 자신도 모른다

양 떼들이 스스로 돌아왔다
1백70마리쯤이었다
그저께 한 마리가 죽었고
오늘은 한 마리가 태어났다

산 넘어 텐진의 형 두 녀석은
12세 쌍둥이
녀석들은 다른 집 양 떼를 몰고 있다

밤하늘에 육안으로 별 9천 개를 절반 가까이 헤어보았다
그 별빛들
5대 가족의 잠든 눈동자 안에 내려와
잠든 별빛들

내일은 다른 풀밭을 찾아가야 한다
납작 엎드려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는 풀밭을
용케
고조할아버지와
양 떼 암컷들이 먼저 안다

“저기다 저기……”


Mr. 고릴라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 덕분에 그림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앤서니 브라운은 아닙니다. ^^ 이제 곧 여섯 살이 될 딸아이와 막 한 돌 지난 아들놈을 둔 만으로 30대 아빠입니다 ^^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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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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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와랑
수와랑
2022/04/22 13:46

책정보에는 영어 제목이 있고 두 사람의 번역가에 의해 영어로 번역된 시가 맨 뒷장에 함께 있던데, 왜 영어 번역을 붙였을지. 초판부터 계획된 것이었는지 나중에 추가된 작업인지, 외국에 판매하기 위한 번역이었는지, 모델이 된 가족을 위한 것이었는지~~ ㅎㅎㅎㅎㅎ 별 중요하지 않을 것도 같은 궁금증이 마구마구 생기네요.

가온빛지기
Admin
2022/05/02 07:50
답글 to  수와랑

번역자가 2명이었나요? 안선재 교수가 한 것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책이 어디 깊이 들어갔는지 도무지 보이질 않네요… 초판에도 번역본은 들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림책 중에는 뒷부분에 영어 번역본을 추가해놓은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이 책처럼 텍스트만 실은 경우도 있고, 그림책 본문 전체를 썸네일 형식으로 싣는 경우도 있구요. 목적이야 말씀하신 것처럼 해외 출간을 위한 것일 수도 있겠고, 교육열 높은 우리의 현실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고로 “5대 가족”의 경우는 이 그림책을 내려고 따로 번역했다기보다는 이미 안선재 교수가 번역해 놓은 것이 있었을 겁니다. 미투 문제로 이름을 더럽히긴 했지만 고은은 노벨문학상 후보로 여러 차례 올랐던 시인이고, 영국 출신으로 귀화한 안선재 교수는 고은 뿐만 아니라 시와 소설 등 우리 현대문학 작품들을 꽤 많이 번역해서 우리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데 기여한 분이니까요.

Last edited 1 year ago by 가온빛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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