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은 너무해

기린은 너무해

(원제 : Giraffe Problems)
조리 존 | 그림 레인 스미스 | 옮김 김경연 | 미디어창비
(발행 : 2019/04/02)

2019 가온빛 추천 BEST 101 선정작


풍부한 질감과 깊은 색채, 파격적인 구성을 가진 그림으로 이야기를 풍성하게 전달하는 작가 레인 스미스는 짧고 유머러스한 이야기로 깊은 공감대를 선사하는 작가 조리 존과 함께 2016년부터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그림책 ‘너무해’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투덜거리지만 뭔가 매력 넘치는 투덜이 펭귄이 등장하는 그림책 “펭귄은 너무해” 출간 이후 2년 만에 두 사람은 “기린은 너무해”를 출간했어요. 오늘의 주인공 기린은 또 어떤 문제를 들고 우리를 찾아왔을까요?

기린은 너무해

기린 에드워드의 불만은 이렇습니다. 너무 길고 너무 잘 휘고 너무 가늘고 너무 무늬가 많고 너무 잘 늘어나고 너무 높고 너무 우뚝하고… 스카프를 셀 수 없이 여러 장 두르고 둘러도 다 감출 수 없는 목, 어딘가에 숨기에도 불편하기만 한 자신의 긴 목이 불만이에요. 에드워드의 긴 목을 타고 내려가며 불만들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한마디로…… 너무해.
맞아, 내 목은 너무해.

기린은 너무해

긴 목이 불만이다 보니 다른 친구들의 평범한 목이 자꾸만 눈에 들어옵니다. 줄무늬를 가진 얼룩말의 목은 멋져 보이고 코끼리의 목은 굵고 힘차면서 우아해 보여요. 풍성하게 물결치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갈기를 가진 사자의 목은 또 얼마나 부러운지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에드워드에게 마냥 부러움의 대상인 동물 친구들의 얼굴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거든요. 글쎄요, 다른 친구들 역시 나름대로 불만족스러운 것이 있기 때문일까요?

기린은 너무해

한숨짓는 에드워드 앞에 등장한 거북이 사이러스는 뜻밖의 이야기를 합니다. 에드워드처럼 긴 목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도 하루에 아주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이죠.

닿는 것도, 잡는 것도, 둘러보는 것도 난 못해.
그래도 난 많은 걸 해냈어.
그러면서 내 목을 조금은 받아들였지.

목이 긴 기린과 목이 짧은 거북의 만남이라니 얼핏 보기에도 상황이 참 재미있어 보이네요. 모양은 다르지만 목 때문에 속상하다는 사실 하나로 에드워드와 사이러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자 둘은 금방 친구가 되었어요.

기린은 너무해

높은 곳에서 익어가는 바나나를 일주일 내내 지켜보기만 했다는 사이러스를 위해 자신의 긴 목을 이용해 바나나를 따주는 에드워드, 그리고 그 모습을 짧은 목을 한껏 내밀고 지켜보는 사이러스. 에드워드가 톡! 하고 떼어낸 바나나가 사이러스 앞에 툭! 하고 떨어집니다. 에드워드의 고민 역시 툭하고 떨어져 나가버리는 것 같습니다.

똑같은 물방울무늬 나비넥타이를 사이좋게 멘 에드워드와 사이러스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갑니다.

우리 둘 다 목이 썩 괜찮지, 에드워드?

응, 사이러스. 지금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지금은…….

그림책 전반부에서 기린 에드워드의 긴목에 대한 불만이 토로되었다면 후반부에서는 거북이 사이러스의 관점에서 기린 에드워드의 긴 목이 얼마나 특별하고 근사한지를 보여줍니다. 둘도 없는 친구가 된 에드워드와 사이러스에게 이제 더 이상 남과 다르게 생긴 목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다양한 통로로 우리는 남과 비교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는 사이 점점 더 내가 가진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험을 하기도 해요. 어느 순간 작은 문제 하나가 내 모든 삶을 지배하는 것 같아 괴롭고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도 있어요. 잠시 주위 시선을 거두고 나 자신에게 집중해서 바라보세요. 문제라 생각한 것이 진짜 문제인 것인지 아니면 내 마음이 그런 것인지를 말이죠.

동그란 눈동자에 실린 다양한 감정들, 동물들의 움직임을 리드미컬하게 잘 살린 익살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레인 스미스의 그림들이 독백과 대화 방식으로 이어지는 조리 존의 센스 넘치는 이야기를 더욱 입체적으로 살려내고 있어요.

뚜렷하게 대비되는 신체 구조를 가진 기린과 거북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생각해 보게 만드는 그림책 “기린은 너무해”, 펭귄의 귀여운 투덜거림에 점잖게 충고해 준 바다코끼리, 극과 극인 신체를 가지고 있지만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가 된 기린과 거북, 어쩌면 이 둘의 조합은 이 시리즈를 탄생 시킨 두 작가 조리 존과 레인 스미스의 이야기인 것은 아닐까요? ^^ 멋진 콤비를 보여준 두 작가의 다음 ‘너무해’시리즈의 새 주인공은 누구일지 궁금해집니다.


※ 함께 읽어 보세요 : 천만의 말씀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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