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영감과 토끼

녹두영감과 토끼

글/그림 강미애 | 이야기꽃
(발행 : 2019/01/31)


몸집이 작고 날렵한 토끼는 호랑이만큼이나 우리 민담 속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입니다. 꾀 많고 영리하고 부지런한 동물로 말이죠. “녹두영감과 토끼”는 정성껏 지은 녹두 농사를 토끼에게 모두 빼앗기고 그저 속수무책 당하고 만다는 구전 설화 ‘녹두영감’을 바탕으로 만든 그림책이에요. 삶의 터전을 두고 아웅다웅 다투는 토끼들과 영감의 모습은 자연과 인간의 한판 대결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못 말리는 말썽꾸러기 아이들의 끝없는 장난질에 잔뜩 화가 난 어른들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해학과 익살 넘치는 탈놀이 굿판에 맛깔스럽게 담아낸 그림책 “녹두영감과 토끼”, 같이 보실래요?

녹두영감과 토끼

쿵딱 쿵딱 쿵쿵딱 쿵딱! 얼씨구!
옛날, 한 영감이 뒷산에 밭을 일궈 녹두를 잔뜩 심었지.
아 근데, 이것 봐라. 뒷산 토끼들이 날마다 밭에 와서
제 것인 양 녹두를 따 먹는 거라.

쿵딱 쿵딱 얼씨구! 소리만 듣고도 절로 어깨가 들썩이는 건 제 피 속에도 어김없이 한민족 흥의 정서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겠죠? ^^

녹두 농사 열심히 지어놨더니 토끼들만 신이 났습니다. 날마다 뒷산 토끼들이 찾아와 영감 네 녹두를 제 것인 양 따 먹고 또 따 먹어대니 어디 눈 감고 모른 체할 수 있나요? 고약한 토끼 녀석들 혼쭐을 내줄 수밖에.

녹두영감과 토끼

영감이 온몸에 대추며 밤, 호두를 꽂고는 녹두밭에 가 벌렁 드러누웠어요. 아니나 다를까 영감이 죽었다고 생각한 토끼들은 다 같이 녹두영감 초상을 치러주기로 합니다.

가는구나 가는구나 녹두영감 가는구나
북망산천 멀다더니 녹두밭이 북망일세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오실 날이나 일러 주오
어어와 어어와 어와너엄차 어어화

능청맞게 누워있던 녹두영감, 와락 토끼들에게 달려들었어요. 제일 처진 토끼 한 놈이 결국 영감 손에 잡히고 말았죠.

녹두영감과 토끼

꼼짝없이 붙들려 가마솥에 들어가게 된 토끼, 이것이 마지막이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집니다. 부지런히 농사지은 녹두, 토끼가 다 따먹었는데 왜 자꾸만 토끼 편에 서게 되는 것인지 이 마음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

이렇게 끝인가 싶은 순간 이야기는 엎치락뒤치락 더욱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영감이 옆집에 부싯돌을 빌리러 간 사이 도망친 토끼들이 합세해 다 같이 줄행랑을 치고 말았거든요. 커다란 녹두영감 자그마한 토끼들, 보나 마나 뻔해 보이는 승부는 자꾸만 예상을 뒤엎습니다.

녹두영감과 토끼

가마솥에서 쌓아 둔 볏가리로, 또 장독대로 초가지붕 위로 아슬아슬 달아나는 토끼들, 그만 애간장이 탄 녹두영감 조바심이 화를 불러일으킵니다. 쫓고 쫓기고 속이고 속고…… 결국 토끼의 꾀에 넘어간 녹두영감 볏가리를 날리고 장독을 박살 내고 초가삼간까지 홀랑 불태우고 맙니다.

화르르르르 펑! 펑! 이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불꽃놀이일까요? 불구경에 신난 토끼는 춤추고 녹두영감 망연자실 넋 놓고 서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승부가 끝날 리 있나요?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녹두영감 와락 달려들어 처음 잡았던 그 토끼의 뒷다리를 냉큼 잡아채자 토끼가 이렇게 말했어요.

“알렐레 알렐레 불쌍한 녹두영감,
토끼 다리 어디 두고 애먼 징채를 붙잡소?”

녹두영감 잡아챈 것은 토끼 녀석의 말대로 정말 징채였을까요? 아니면 토끼 뒷다리였을까요?

녹두영감과 토끼

토끼 꾀에 넘어가 다 잡았던 토끼 다리 놓고 애먼 징채로 바꿔잡은 녹두영감, 이대로 울고 있을 수만은 없죠. 에라~ 이왕 잡은 징채 들고 한바탕 속풀이나 할 수밖에.

‘에라 모르겠다.
징채 잡은 김에 징이나 실컷 치자.’
징~ 징~ 징 징 지이잉~
녹두영감 징을 치고 토끼들은 신이 났지.

쿵딱 쿵딱 쿵쿵딱 쿵딱!
얼씨구나, 놀아 보자~!

탈놀이 구경하던 이도 들썩들썩 꾀돌이 토끼들도 하루 종일 골탕 먹은 영감도 들썩들썩 신명하는 탈놀이 한마당, 승자도 패자도 없는 이야기 속에 함께 어우러져 흥겹게 난장판을 벌이고 나면 나도 모르게 쌓여있던 마음속 감정들이 모두 풀어지고 새로이 활력이 솟는 것 같습니다.

꾀 많은 토끼들이 크고 힘센 녹두영감을 골려준다는 “녹두영감과 토끼” 이야기는 작고 보잘것없는 살림살이들이 할머니와 힘을 모아 호랑이를 혼내주고 자신들의 터전을 지킨다는 “팥죽할멈과 호랑이” 이야기와 비슷한 구조지만 다른 결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침입자로 인해 녹두영감은 터전도 잃고 살림살이도 몽땅 잃고 말지만 팥죽할멈은 살림살이들로부터 도움을 얻어 침입자로부터 자신의 터전을 지켜내죠. 두 이야기 모두 작은 것도 나누며 더불어 함께하는 삶에 대한 우리 조상들의 염원을 담아 만든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조마조마한 마음에 가슴 졸이면서도 결국에는 한바탕 커다랗게 웃게 되는 그림책, 놀이처럼 즐겁고 신명나는 흥이 한가득 펼쳐지는 그림책 “녹두영감과 토끼”입니다.


※ 함께 읽어 보세요 : 공존의 아름다움 고라니 텃밭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2 Replies to “녹두영감과 토끼

  1. 재밌는 책이네요.녹두영감이라는 옛이야기는 들어보지못해서인지 더더더 읽어보고싶습니다^^

    1. 녹두영감 팥이영감이라는 이야기로 전해져 내려오는 민간설화예요.
      원작의 잔인한 결말 때문에 스토리에 수정을 거쳤다고 하네요.
      탈놀이 판 특유의 흥이 가득한 그림책, 꼭 읽어 보세요. 영미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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