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곰으로 보이니?

내가 곰으로 보이니?

(원제 : Do I look like a bear?)
글/그림 야엘 프랑켈 | 옮김 황정혜 | 후즈갓마이테일
(발행 : 2019/03/20)


멍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곰이 왠지 쓸쓸해 보여요. 누가 보아도 분명 곰으로 보이는데 “내가 곰으로 보이니?”하고 묻는 그림책 제목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곰의 간절한 질문처럼 들립니다.

내가 곰으로 보이니?

길을 걷던 에밀리아가 자신의 곰인형 피트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합니다.

피트야, 너 그거 아니?
난 어제 또 이런 말을 들었어.

에밀리아의 속삭임을 경청하려는 듯 곰인형의 두 귀가 쫑긋 세워져 있습니다. 작은 인형을 향해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는 에밀리아의 눈빛은 진지하면서도 간절해 보여요. ‘또’라는 말을 보아서는 에밀리아가 오늘 들었다는 말은 이전에도 수차례 비슷한 양식으로 반복되어 들은 말인 모양이에요.

내가 곰으로 보이니?

“에밀리아는 개를 닮았어!”

한쪽에 오늘 에밀리아에게 ‘개를 닮았다’고 놀려댄 다른 아이들이 서있어요. 기억 저편에 자리 잡은 아픈 말들을 쏟아낸 아이들의 입이 빨갛습니다. 눈도 코도 보이지 않아요. 에밀리아 마음에 생채기를 입힌 아픈 말을 쏟아낸 입만 빨간색이죠. 빨간 입들이 쏟아낸 말을 들은 에밀리아의 귀도 빨간색이 되었어요. 개의 모습을 하고 한 편에 풀 죽은 얼굴로 쭈그리고 앉아있는 에밀리아는 곰인형 피트를 바라보고 있어요. 저쪽 끝으로 나동그라진 곰돌이 인형 피트의 모습이 무척이나 쓸쓸해 보입니다. 세상에 혼자 동떨어진 것 같은 에밀리아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처럼요.

내가 곰으로 보이니?

아이들은 에밀리아를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말들을 쏟아냅니다. ‘개를 닮았다’고 놀려댄 것을 시작으로 ‘개가 아닌 곰을 닮았다’고 놀려댄 아이도 있었죠. 처음 안경을 썼던 날에는 ‘안경 쓴 원숭이’란 놀림도 당했어요.

놀림을 당했던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에밀리아는 놀림을 당한 동물로 바뀝니다. 개로 곰으로 원숭이로 오리로 변하며 본 모습을 잃어버려요. 에밀리아의 동그란 두 눈은 슬픔과 외로움으로 가득 차있어요. 길을 걷는 동안 아무와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주변을 애써 외면하기도 해요. 에밀리아의 머리 위에는 슬픔처럼 먹구름이 졸졸 따라다녀요. 에밀리아는 작디작은 우산으로 먹구름이 쏟아내는 빗방울을 간신히 막고 있어요.

시달림 끝에 겁에 질린 에밀리아는 자신이 노래를 부르면 아이들이 코끼리 울음소리 같다고 놀릴까봐 지레 겁먹으면서 다시는 노래하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힘든 하루를 보낸 에밀리아는 독백처럼 곰인형 피트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아무도 듣는 이 없지만 억누를 길 없는 슬픔을 스스로 터뜨려 버리고 싶은 아이처럼.

내가 곰으로 보이니?

지금까지 조용히 이야기를 경청해 주던 곰인형 피트가 에밀리아에게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너 혹시 그거 아니?’하고 말이죠. 이야기를 시작하는 피트의 눈을 에밀리아가 조용히 응시합니다.

넌 언제나
나의 소중한 친구야.

네가 어떤 모습이어도
난 네가 좋아.

배척받고 놀림당하는 동안 에밀리아는 잊고 있었어요. 에밀리아가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던 에밀리아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는 소중한 친구가 곁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피트의 말에 뭉개지고 억눌린 에밀리아의 마음이 슬며시 풀어집니다. 피트는 에밀리아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냥 너니까.

‘피트야 그거 아니?’하고 시작한 에밀리아의 말에 ‘에밀리아, 너 혹시 그거 아니?’하고 답을 돌려준 피트, 노란 말풍선 안에 들어있는 피트의 말은 따스한 위로가 되어 마음을 어루만져 줍니다. 에밀리아의 마음뿐만 아니라 그림책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까지도.

아이들이 덧씌운 것은 그저 놀리기 위해 만든 수많은 가면일 뿐, 본질은 변하지 않아요. 에밀리아는 에밀리아일 뿐 개도 곰도 원숭이도 오리도 아니니까요. 네가 좋아, 넌 그냥 너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는 곰돌이 피트, 철학자의 미소를 가지고 있네요. 에밀리아의 입가에도 슬며시 미소가 맴돌기 시작해요.

따돌림에 상처받은 아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그림책 “내가 곰으로 보이니?”, 상처 입고 스스로 수렁에 빠진 것 같은 날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속삭여 보세요. ‘너 혹시 그거 아니? 너라서 좋아. 넌 그냥 너니까’. 슬픔에 빠진 친구에게 다정하게 속삭여 주세요. ‘너라서 좋아, 너니까 좋아’라고. 겹겹이 쌓인 껍데기를 벗겨낸 그 본질을 사랑하는 것, 진짜 우정 진실한 사랑은 그런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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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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