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야 뽕잎 줄게 비단실 다오

누에야 뽕잎 줄게 비단실 다오 : 누에나방 한살이 관찰 일기

글/그림 권혁도 | 보리
(발행 : 2019/03/25)


깊은 사색에 잠긴 모습처럼 보이는 누에, 실은 고치를 짓기 위해 입에서 실을 토하려는 중입니다. 이제 번데기 과정을 거치고 나면 누에나방으로 변신을 하니 먹고 자고를 반복하며 성장을 거듭해왔던 지난 시간과는 다른 날들이 기다리고 있겠네요.

“누에야 뽕잎 줄게 비단실 다오”는 그림책 부제목 그대로 관찰 일기 형식으로 누에나방의 한살이를 그린 그림책이에요. “배추흰나비 알 100개는 어디로 갔을까?” 외 각종 식물도감, 동물도감 속에 섬세하고 아름다운 세밀화 그림을 선보여왔던 권혁도 작가는 어린 시절 집에서 누에를 쳤던 정겨운 기억을 떠올리며 49일 동안 누에를 친 일기를 바탕으로 이 그림책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한 생명이 나고 지고 다시 또 태어나길 반복하는 그 신비한 생명의 순환이 그림책 속에 숭고하면서도 아름답게 펼쳐집니다.

누에야 뽕잎 줄게 비단실 다오

누에나방의 알을 누에씨라고 부른대요. 식물이 아닌 누에 알을 누에씨라고 부르다니 좀 의아하지 않나요?

왜 누에알을 누에씨라고 하는지 알아?
누에는 워낙 쓸모가 많아서
누에농사라고 할 만큼 귀하게 여겼거든.
그래서 볍씨처럼 누에알을 누에씨라고 한 거지.

‘누에씨’란 명칭에는 한 해 가장 중요한 벼농사만큼이나 누에농사를 중요하게 여긴 우리 조상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이야기는 처음 받아온 노란 누에씨에서 시작해 누에씨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자라 고치를 짓고 번데기가 되고 누에나방으로 변신해 짝을 찾고 다시 알을 낳기까지 49일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요.

그림책에는 관찰 일기 그대로 날짜와 관찰일 수, 소제목들이 적혀있고 누에만 집중적으로 묘사한 세밀화와 함께 대화하듯 들려주는 친근한 설명이 담겨있어요. 한 페이지에 세밀화는 두 파트로 나뉘어요.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채색 세밀화에는 누에가 크는 과정을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묘사했고 아래쪽에는 연필 스케치로 누에가 자라는 환경을 자세히 묘사해 이해를 돕고 있어요.

누에야 뽕잎 줄게 비단실 다오

오직 뽕잎만 먹고 자라는 애벌레, 그냥저냥 꿈틀거리는 건 다 똑같은 애벌레라고만 생각했는데 1령 누에가 어떻게 자라 어떻게 허물을 벗고 2령 누에가 되고 3령, 4령, 5령 누에가 되는지 각각의 특징, 생김새, 행동, 습성까지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어요. 곁에서 누군가 자상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누에가 싼 까만 똥은 소가 아주 잘 먹는다고 해요. 영양이 많아서 짐승 먹이나 약으로도 쓰인다는 사실은 그림책으로 처음 알았어요.

사각사각 어석어석 먹성 좋은 5령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는 소리는 소나기 오는 소리 같대요. 고요한 밤에 들으면 석석석 비 오는 소리 같다던 외할머니 말씀이 생각납니다. 5령 누에가 입에서 실을 토해 낼 때까지 부지런히 뽕잎을 따 먹여야 하는 시기를 보여주기 위해 작가는 그림책에 대문 접지를 활용했어요. 싱싱한 뽕잎을 수북이 덮어준 페이지의 접지를 열면 어느새 뽕잎을 다 먹어치우고 까만 똥을 잔뜩 눈 누에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누에야 뽕잎 줄게 비단실 다오

관찰 31일째가 되니 누에가 하얀 누에고치를 짓고 애벌레는 고치 속으로 사라졌어요. 고치 한 개에서 나온 실의 길이가 1.5킬로미터나 된다고 하니 정말 어머어마하네요. 1.5킬로미터면 100미터 달리기를 15번이나 해야 하는 길이잖아요. 고치를 짓기 전 누에가 쉴 새 없이 뽕잎을 먹었던 이유가 다 여기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누에는 고치 속에서 마지막 허물을 벗고 번데기가 됩니다. 날개가 돋으면 고치 밖으로 누에나방이 모습을 드러내죠. 좁쌀보다 작은 누에씨에서 시작해 관찰 40일 만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누에야 뽕잎 줄게 비단실 다오

나방으로 변신한 누에나방은 날개가 있지만 날지 못해요. 더욱 놀라운 건 입은 있지만 퇴화되어 아무것도 못 먹는다는 사실이에요. 날지도 먹지도 못하는 누에나방이 할 수 있는 일은 딱 한 가지, 짝짓기를 한 후 알을 낳는 것! 알 한 개라도 더 낳으려고 온갖 애를 다 쓰고 나면 누에나방은 모든 임무를 마치고 죽음을 맞아요. 이렇게 한 생명의 삶이 스러지고 또 다른 생명의 삶이 다시 시작됩니다. 한 개의 알에서 깨어난 누에나방이 562개의 생명을 남겨놓았습니다.

누에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누가 도와주지 않아도
뽕잎을 먹고 자라서 또 알을 낳을 거야.
무럭무럭 자라서 후손을 이어갈 거야.

성장 과정이 담겨있는 한 권의 그림책 속에 누에가 허물을 벗는 과정, 성장 단계에 따라 애벌레 머리와 똥의 크기를 비교한 그림, 다 자란 누에나방 암컷과 수컷의 차이 등등 흥미를 끄는 다양한 이야기도 재미있고 그림책 뒷부분에 단군할아버지 때부터 누에와 함께한 우리 겨레의 역사, 누에나방의 한살이, 누에가 실을 만드는 원리 등 알찬 정보도 흥미롭습니다.

더하고 뺄 것 없이 있는 그대로의 우리 삶이 누에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아 더욱 애틋하고 감동적인 생태 그림책 “누에야 뽕잎 줄게 비단실 다오”,  섬세한 묘사와 아름다운 색감으로 생명체가 지닌 고유의 생명력을 그려내는 세밀화 속에는 예술과 과학이 치밀하면서도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어요. 생명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녹여낸 한 장 한 장의 기록들을 보다 보면 절로 나태주 시인의 시 한 편이 떠오릅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풀꽃” – 나태주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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