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많고 많은 파랑

세상의 많고 많은 파랑

(원제 : Blue)
글/그림 로라 바카로 시거 | 옮김 김은영다산기획
(발행 : 2019/04/20)


‘파랑’이란 단어를 듣는 순간 바로 떠오르는 것이 있나요? 푸른 바다, 파란 하늘같이 색깔과 결합된 일반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분들도 있을 테고 누군가와 함께 바라보았던 그날의 파란 하늘, 누군가와 함께였던 그날의 푸른 바다처럼 색깔과 추억을 함께 간직하고 계신 분들도 있겠죠.

다양한 초록색의 향연으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 그리고 세상에 대한 무궁무진한 사랑과 관심을 보여준 그림책 “세상의 많고 많은 초록들”로 2013년 칼데콧 명예상을 수상한 작가 로라 바카로 시거, 그녀는 오늘의 그림책 “세상의 많고 많은 파랑” 속에 또 얼마나 많은 파랑을 풀어 놓았을까요? 찰랑이는 파랑, 꿈틀거리는 파랑, 옴짝달싹하지 않는 파랑… 그림책 속에 살아 숨 쉬는 세상의 많고 많은 파랑을 지금 만나러 갑니다.

세상의 많고 많은 파랑

아기와 강아지가 함께 잠들었어요. 밀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곤히 잠든 둘을 연결하고 있는 것은 연 파란색 스카프입니다. 둘은 ‘보들보들 아기 파랑’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누구보다 평화롭게 잠들어 있어요.

시각적 심상인 색깔을 ‘보들보들 아기 파랑’이라는 촉각적 심상으로 표현했어요. 잠드는 순간에도 놓치고 싶지 않은 파란 스카프의 보들보들 부드럽고 포근한 감촉이 느껴집니다. 아기의 꿈도 강아지의 꿈도 보들보들 부드러운 아기 파랑으로 가득할 것 같아요.

이렇게 그림책은 글로는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파랑을 이야기하면서 그림 속에 아이와 강아지의 일상들을 담아내고 있어요. 시시각각 변하는 파랑 속에 둘만의 추억 가득한 시간들이 흘러갑니다.

세상의 많고 많은 파랑

파란 블루베리를 한 바구니 가득 담아 강아지와 함께 카트에 실은 아이에게 세상은 ‘새콤달콤 열매 파랑’으로 보입니다. 푸른 하늘 아래 파란 날개를 팔랑이는 나비를 잡으려고 강아지와 이리저리 뛰어다닌 봄날은 ‘팔랑팔랑 나비 파랑’으로 기억되고 철썩이는 푸른 바다로 신나게 뛰어든 날은 ‘철썩철썩 바다 파랑’으로 기억되는 날입니다.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성큼 계절이 바뀌어 있어요. 아기와 강아지도 훌쩍 자라있죠. 한 권의 성장 앨범을 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시간이 흐르고 두 주인공들은 시간을 따라 성장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많고 많은 파랑

눈앞에 아른거리는 파랑, 만져질 듯 말 듯 간질간질한 파랑, 가만 손대면 느껴질 것 같은 파랑,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파랑들이 날마다 달마다 계절마다 시시각각 밀려왔다 밀려갑니다.

처음 둘이 함께 공유했던 파란색 스카프는 아이 목에 둘러져 있다 아웅다웅 내 것이라 다투고 난 후 강아지의 스카프가 됩니다. ‘내 것’을 주장하던 아이가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 자신의 것을 선뜻 내어줄 줄 아는 아이로 자라났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어요.

아이는 쑥쑥 자라고 그 곁에서 늘 함께했던 개는 점점 늙어갑니다. ‘아기 파랑’이었던 시절은 멀리 흘러가 버렸고 이제 힘 없이 누워있는 시간이 더 많은 ‘는적는적 늙은 파랑’의 시절이 찾아왔어요. 우리는 알고 있죠. 흘러간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사실을.

세상의 많고 많은 파랑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함께하는 시간 동안 서로 얼마나 진실하고 사랑했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아이와 반려견이 뜨거운 작별 인사를 나누는 순간 세상은 ‘서로서로 진실한 파랑’의 빛깔이 되어 둘의 가슴을 물들입니다.

홀로 남겨진 아이에게 ‘아슴아슴 슬픈 파랑’이 찾아옵니다. 이별의 아픔이 먹먹하게 담긴 파랑, 떠난 이는 알까요? 남겨진 이에게 수렁처럼 밀려드는 슬픔을. 저 멀리 떠나가는 돛 단 배 한 척이 마치 떠나간 반려견처럼 보입니다. 차마 고개 들어 바라보지 못하고 짙푸른 슬픔 속에 아이가 잠겨있어요.

파랑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아요. 커다란 슬픔을 딛고 일어선 순간 아이는 그만큼 단단해지고 그만큼 성장했을 테니까요. 그런 아이에게 또 다른 색깔을 지닌 새로운 파랑이 찾아온답니다.

새록새록
새로운 파랑

훌쩍 자란 소년을 찾아온 새로운 파랑의 빛깔입니다.

얼핏 제목만 들어서는 색깔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 생각하지만 그림책을 다 보고 나면 먹먹한 사랑에 찔끔 눈물 훔치다 반짝 웃게 되는 그림책 “세상의 많고 많은 파랑”, 그림이 시각 언어가 되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파랑들 속에 숨어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며 이야기를 확장 시켜가는 아름다운 그림책입니다. 그저 일상적으로 보고 지나치던 세상 모든 것들 속에 사랑과 추억, 그리고 지나온 세월 나를 스쳐 지나갔던 온갖 감정들이 살아 숨 쉬고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파랑이 있어요. 하지만 우린 알고 있죠. 널 닮은 파랑은 세상에 꼭 하나뿐이란 사실을…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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