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다

나는 개다

글/그림 백희나 | 책읽는곰
(발행 : 2019/04/15)


“나는 개다”라고 당당하게 선언한 듯 보이지만 표정이나 앉아있는 폼이 뭔가 소심해 보이는 이 녀석, 어딘가 낯익다 싶은 이 개는 2017년 출간된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알사탕”에 나왔던 동동이네 개 구슬이입니다.

알사탕
2017년 출간된 그림책 “알사탕”에 등장했던 구슬이와 동동이

마뜩잖은 표정으로 동동이를 따라다니던 구슬이, 알사탕을 먹은 동동이에게 이제 너무 늙어서 자꾸 눕고 싶어 그런 거지 동동이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며 오해를 풀고 싶다 말했던 강아지 구슬이예요. 구슬이가 8년 전 어떻게 동동이와 한 가족이 되었는지 구슬이의 시점에서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개다

슈퍼집 방울이네 넷째로 태어난 구슬이가 동동이네 가족이 된 것은 엄마 젖을 떼고 처음 밥을 먹기 시작했을 무렵입니다.

구슬이도 동동이도 아기예요. 러닝셔츠에 잠옷 바지 차림의 아빠, 꽃무늬 원피스에 뽀글 파마한 할머니(이 두 사람 역시 “알사탕”에서 동동이에게 마음의 소리를 들려줬던 분들이죠), 그리고 그 곁에 구슬이만큼이나 어린 동동이가 서 있어요. 덤덤하게 구슬이를 맞이하는 할머니랑 아빠와 달리 아주 놀랍다는 표정을 하고서요.

처음 만나 새로운 가족이 되는 순간을 배경을 생략해 인물들만 돋보이게 표현했어요. 덕분에 동동이 가족의 눈에는 구슬이만 보이고 구슬이의 눈에는 동동이네 가족만 들어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나는 개다

동네에서 마주치는 개들이 거의 다 자신의 형제자매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할 만큼 구슬이 엄마 방울이는 해마나 엄청나게 많은 새끼를 낳았어요. 구슬이는 밤마다 베란다에 나가 하울링을 하며 목소리로 자신의 형제자매를 만납니다. 어두운 아파트 너머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아우우 아우 아울~’ 하는 소리에 똑같은 방식으로 답을 하며 구슬이는 생각합니다.

기억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가족이다.

베란다 바깥쪽을 바라보면서 하울링 하는 구슬이의 눈빛이 촉촉해요. 하지만 ‘구슬이 조용!’ 하는 아버지의 호령에 이내 현실로 돌아옵니다. 베란다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구슬이는 나름의 방식으로 아빠를 이해해요.

아부지는 인간이니까 어쩔 수 없다.

나는 개다

아침이면 아빠나 동동이를 따라 자기도 나갈 수 있을까 기대해 보지만 번번이 무너집니다. 아빠와 동동이가 나간 뒤 곱게 단장하고 계신 할머니를 보며 또 기대하지만 역시나… ^^ 굳게 닫힌 문 앞에 망연자실 앉아있던 구슬이는 베란다로 나갑니다. 그곳에서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게 구슬이 일상의 대부분입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구슬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해집니다. 저러니 산책 시간이 찾아오면 이리저리 흥분하며 날뛸 수밖에요. 볼 것도 많고 들를 곳도 많은 세상은 구슬이에게 온통 호기심 거리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니까요.

이토록 즐거운 산책길 구슬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동동이를 만나는 일이에요. 훌쩍 자란 동동이는 기억할까요? 구슬이가 온 힘을 다해 동동이를 향해 달려왔던 시절을… 다섯 살이나 먹고도 나약하기 그지없는 동동이를 바라보며 자신이 지켜주어야만 한다 결심했던 구슬이의 마음을 동동이도 알고 있을까요?

나는 개다

어느 밤 잘못을 저지르고 그 벌로 베란다에 갇힌 구슬이는 눈치로 다 알고 있어요. 오늘 밤은 큰 소리로 하울링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구슬이에게 베란다 공간은 얼굴도 모르는 형제자매의 목소리에 화답하는 공간, 외출한 가족들을 무료하게 기다리는 공간, 잘못을 저질렀을 때 갇혀있는 공간입니다. 베란다는 구슬이에게 그리움을 분출하는 장소이며 무료한 기다림을 지속하는 장소예요.

그곳에서 구슬이가 작은 목소리로 혼자 울고 있는데 그때 어둠 속에서 동동이가 나타났어요. 손에 파란 이불을 들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울었는데… 동동이에게 다 들렸나 봅니다.

나는 개다

동동이는 구슬이 옆에 누워서 들고 나온 파란 담요를 함께 덮고 다시 잠이 듭니다. 동동이와 구슬이가 나란히 함께 잠들었어요. 구슬이에게 베란다는 더 이상 그리움의 장소가 아니라 가장 소중한 친구와 함께 하는 곳입니다. 세상 모든 평화와 행복이 함께하고 있는 따스한 밤입니다.

프리퀄 격인 “나는 개다”를 읽고 다시 “알사탕”을 읽어보면 새삼 동동이와 구슬이 사이에 흘러간 시간이 느껴집니다. 할머니는 더 이상 가족과 함께 계시지 않아요. 아주 먼 여행을 떠나셨거든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빠는 여전히 무뚝뚝해요. 아빠 방귀를 싫어했던 체크무늬 소파는 8년 전에도 동동이네 집에 있었어요. 어느새 훌쩍 자란 동동이, 그리고 자꾸만 눕고 싶어 세상만사 다 귀찮은 구슬이까지 다시 보는 “알사탕” 속 등장 인물들의 모습들에 나의 세월이 저만치 흘러간 것 마냥 마음이 울컥해집니다.

알사탕을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상대의 속마음을 알아차렸던 동동이, 하지만 한때 동동이는 알사탕 없이 구슬이의 마음을 탁하면 척하고 알아들었던 시절이 있었죠. 흘러간 세월 속에 쌓인 크고 작은 경험과 선입견들이 생명과 생명 사이의 교감을 막아버린 것은 아닐까요.

이상한 엄마/나는 개다
편안히 잠든 모습이 마음에 평온함을 일으킵니다(“이상한 엄마”(왼쪽) / “나는 개다”(오른쪽) )

저는 백희나 작가의 “이상한 엄마”의 힘든 하루를 보낸 엄마와 호호가 꼭 안고 편안하게 잠든 장면이 참 좋아요. 모든 경계심을 풀고 함께 잠들 수 있다는 건 서로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호호와 엄마가 구름 위에서 세상 모르고 달콤하게 잠든 모습처럼 동동이와 구슬이가 함께 잠든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가만히 바라보아 주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 있죠. “나는 개다”의 구슬이와 동동이처럼요. 말하지 않아도 사랑하면 보이고 사랑하면 들려요.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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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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