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쥐의 서울 구경

시골 쥐의 서울 구경

방정환 | 그림 김동성 | 길벗어린이
(발행 : 2019/05/05)


“시골 쥐의 서울 구경”은 이솝우화 ‘집쥐 들쥐’를 방정환 선생님이 각색해 1926년 10월 잡지 ‘어린이’에 발표한 동화로 만든 그림책입니다. 집쥐와 들쥐가 서로의 집을 방문한다는 원작과 달리 방정환 선생님이 각색한 동화에서는 서울 구경을 나선 시골 쥐가 우연히 만난 서울 쥐의 안내로 서울 구경을 한다는 이야기예요.

1920년대의 거리 풍경이 김동성 작가의 서정미 가득한 그림으로 아련하면서도 정겹게 펼쳐지는 “시골 쥐의 서울 구경”, 100여 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그 시절로 들어가 볼까요? 우리 모두 어린이가 되어서요.

시골 쥐의 서울 구경

시골 쥐가 서울 구경에 나섰어요. 짐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서야 서울에 도착한 시골쥐가 남대문 정거장 앞에서 어디로 가야 할까 망설이고 있을 때 누군가 시골 쥐를 불렀어요. 서울 쥐였어요. 서울 쥐는 갈 곳을 정하지 않은 시골 쥐에게 선뜻 서울 구경을 시켜 주기로 합니다.

시골 쥐 앞에 펼쳐진 서울 거리, 왠지 낯익고 정겹습니다. 영화에서 본 거리 같기도 하고 역사 교과서에서 만난 풍경 같기도 해요. 바삐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놀라고 있는 한복 입은 작은 시골 쥐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그만 웃고 말았습니다.

시골 쥐의 서울 구경

소리를 뿡뿡 지르면서 달아나는 자동차 구경도 하고 잉잉 울면서 달리는 집채만 한 전차도 구경했어요. 사람들이 왜 저렇게 황급히 뛰어가느냐는 시골 쥐의 질문에 한가히 지내다가는 굶어 죽는다는 서울 쥐의 대답이 쓸쓸합니다.

저렇게 바쁘게 굴어도, 그래도 돈벌이를 못하는 때가 많으니까요.

시골 쥐의 서울 구경

지금은 생소한 남대문 정거장이며 옛날 전차와 자동차,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차림새며 표정들이 그 시대를 그림책 속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아요. 1920년대의 서울 거리 곳곳을 시골 쥐 서울 쥐와 함께 걷는 것 같은 느낌은 김동성 작가의 뛰어난 연출력 덕분이겠죠.

으리으리한 남대문도 구경하고 대한문을 지나 한참을 걸어 서울 쥐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서울 쥐의 집이니 당연히 뭔가 으리으리하고 먹을 것도 많은 그런 집을 기대했어요. 시골 쥐의 마음도 그렇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서울 쥐가 늘어놓는 자기 집 자랑을 듣고 있자니 어딘가 조금 독특합니다. 새빨간 칠을 한 우뚝하게 솟은 양옥집, 높은 곳에 있는 좁은 문까지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서 기어 올라가야 하는 집, 서울 쥐가 사는 곳은 도대체 어디일까요?

시골 쥐의 서울 구경

이곳은? 서울 쥐가 사는 집은 바로 우체통입니다. ^^

지금 우체통과는 모양이 다른 둥글고 길쭉한 원통형의 우체통이에요. 이 집은 무엇보다 고양이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잠잘 땐 편지 봉투를 이불로 덮고 잘 수도 있어요. 가끔 먹을 것이 없을 땐 풀칠 많이 한 봉투를 뜯어 먹을 수도 있어 좋다는 서울 쥐의 말이 너무나 소박해 그만 웃고 말았습니다. 이솝 동화 속 화려하고 풍요로운 도시 쥐의 삶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네요.

문득 서울 쥐가 보고 있는 신문에 눈길이 갔습니다. ‘경성일보’는 통감부와 총독부의 기관지였다고 합니다. 잠시 검색해 보니 저 기사는 1937년 4월 30일 자 호외 기사로 사회주의 계열 항일운동가 이재유의 체포를 다룬 기사입니다.

시골 쥐의 서울 구경

서울 쥐가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간 사이 시골 쥐가 우편물과 함께 실려가 버렸어요. 우체국은 시골 쥐의 등장에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어요. 간신히 도망쳐 숨은 시골 쥐는 생각했습니다.

‘아아, 서울은 무섭다. 무서운 곳이다! 서울 쥐들은 친절하지만 양옥집도 무섭고, 흑사병도 무섭다. 에엣 가방 구멍으로 내다보고 서울 구경은 꽤 한 셈이니, 인제는 어서 달아나야겠다. 달아나야겠다.’

자그마한 생쥐가 무서워 벌벌 떠는 사람들, 하지만 생쥐 입장에서는 사람들이야말로 커다란 공포겠죠. 그토록 소원했던 서울 구경, 이제 어서 빨리 돌아가야겠다 생각했으니 말이에요.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들고 어린이 잡지 ‘어린이’를 창간하고 어린이 인권 활동에 온 힘을 쏟았던 소파 방정환 선생님의 손길 아래 새롭게 태어난 “시골 쥐의 서울 구경”, 일제강점기 어둡고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었던 방정환 선생님의 마음이 오롯이 와닿습니다. 시골 쥐 덕분에 우리도 서울 구경 재미있게 했습니다. 그 시절을 살았던 아이들도 선생님의 동화를 읽으며 이런 마음이었겠지요.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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