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해

따뜻해

글/그림 김환영 | 낮은산
(발행 : 2019/04/30)


“따뜻해”는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 권정생 선생님의 “빼떼기”, “강냉이”에서 인상 깊은 일러스트를 보여주었던 김환영 작가가 쓰고 그린 첫 그림책입니다. 작가의 ‘첫 그림책’이라는 말이 낯설게 다가오는 건 오랜 시간 다양한 동화와 그림책을 통해 선 굵은 인상 깊은 그림들을 만나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배고플 때마다 종이를 뜯어 먹는 송이로, 혹은 꿈을 품고 살아가는 입싹의 모습으로, 때론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빼떼기로 긴 시간 김환영 작가와 만나왔으니까요.

엄마랑 장에 갔어요. 사람들이 아주 많아요.

바삐 오가는 사람들 다리 사이로 보이는 자그마한 아이가 ‘감자’예요. 감자처럼 동글동글 작고 어여쁜 아이입니다.

따뜻해

사람들이 오가는 장마당 한쪽 구석 닭장에 갇힌 검은닭 한 마리가 감자 눈에 들어옵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말간 얼굴로 감자가 닭을 지켜보고 있어요. 검은닭은 온몸을 부풀리고 앉아 감자를 바라보고 있고요.

네모난 작은 닭장을 경계로 감자와 닭의 세상이 나누어져 있어요. 관심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지만 만날 수는 없는 서로 다른 세상. 하지만 그 경계를 허무는 흥미로운 일이 벌어집니다. 검은닭이 품고 있던 알 하나가 철망을 쏘옥 빠져나와 감자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갔거든요.

닭장 안에서 굴러 나온 달걀 하나가 감자에게 다가간 순간 둘 사이에 놓인 경계가 허물어져 버렸어요. 보기에도 비좁아 보이던 닭장은 어느새 사라져버리고 세상에는 감자와 검은닭 그리고 하얀 달걀만 존재합니다.

따뜻해

달걀이 참 따뜻해요.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엄마 품에서 감자 품으로 옮겨간 달걀, 감자는 생명이 전해주는 따스함을 가만히 느껴봅니다. 검은닭이 고개를 쭈욱 빼고 감자와 달걀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어요. 웅크리고 앉아있을 때 감자랑 비슷한 크기였던 검은닭이 아주 커다래졌어요. 감자가 있는 공간으로 들어온 검은닭은 엄마처럼 크고 엄마처럼 강인해 보여요. 그 사이 어미 닭이 품고 있던 달걀에서 병아리들이 깨어나 흥미로운 눈길로 이들을 바라보고 있어요.

따뜻해

검은닭이 감자를 덥석 물어 번쩍 들어 올렸어요. 병아리들이 놀란 표정으로 이들을 지켜보고 있어요. 달걀을 가져간 감자에게 화가 난 걸까 생각했는데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어요.  검은닭은  감자를

품에 넣었어요.

이제껏 따스하게 품고 있던 병아리들처럼 검은닭은 흔쾌히 감자를 자신의 세상으로 데리고 들어옵니다. 거꾸로 들린 순간에도 어미닭의 품 안으로 들어간 순간에도 감자는 태연해요. 자신이 있는 모든 곳이 다 자기 세상인 것처럼요.

삐악 삐악 병아리들이 감자에게 몰려옵니다. ‘내 동생 내놔’하고 외치는 것 같아요. 달걀을 주고 싶지 않은 감자는 달걀을 안고 줄행랑을 칩니다.

따뜻해

감자가 달아나자 병아리들이 감자를 따라 달리고, 병아리가 쫓고 그 뒤를 감자가 따라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바탕 즐거운 놀이가 시작되었어요. 따스하고 안전한 어미 품 속에서 벌어지는 한바탕 재미난 축제예요. 그렇게 즐겁게 뛰어노는 사이 달걀에서 병아리가 깨어났어요. 동그랗게 둘러서서 막내의 탄생을 모두 함께 기뻐합니다. 이렇게 함께 기쁨을 누리고 있을 때 세상이 다시 환하게 열렸어요.

따뜻해

어미닭이 열어준 세상 밖으로 나아갑니다. 검은닭은 날개를 퍼덕거리며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함께 어우러지는 생명의 축제, 모두 함께 힘차게 날아올라요.

감자도 병아리도 모두 모두 날아올라요.

한바탕 즐겁게 놀고 있는데 어디선가 감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감자야!’하고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감자는 현실로 돌아왔어요.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쉬운 마음에 감자가 되돌아 뛰어가 보았지만 이제 검은닭도 병아리도 보이지 않아요. 아쉬운 마음으로 가득한 감자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텅 빈 하얀 공간만 남아있습니다. 다들 어디로 간 걸까요? 지금껏 이 모든 건 감자가 꿈꾼 환상이었을까요?

감자가 품었던 환상의 세상은 감자의 마음 한 편에 남아있을 거예요. 검은닭의 평화롭고 따사로운 품, 함께 날아오르던 그 신나는 순간을 기억하는 세상 모든 감자들은 그 힘으로 건강하게 쑥쑥 자라날 것입니다.

검은 깃털, 동그란 눈까지 쏘옥 빼닮았기 때문일까요. 그림책을 읽는 내내 불의의 사고로 모습이 일그러진 바람에 어미닭조차 품지 않고 쪼아버린 병아리 “빼떼기” 생각이 많이 났어요. 10년이 넘는 시간 “빼떼기” 그림 작업에 몰두했던 김환영 작가는 “따뜻해”를 통해 그간의 먹먹함을 털어내고 생명이 가진 희망 가득한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생명들의  경계가 허물어진 세상에서 누구든 실컷 뛰어놀아 보라는 작가의 따스한 마음이 담긴 그림책, 책과 사람 사이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어 책 속 온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따스한 그림책, 진실한 그림이 전해주는 힘이 마음 가득 느껴지는 그림책 “따뜻해”입니다.

한 아이를 생각했어요.
세상에 와 처음으로 눈 맞춘 그림은 내 그림이었고,
아이가 엄지발가락을 조물거리며
내리는 비를 끝도 없이 바라보던 광경이
내 눈과 가슴에 아직도 오롯이 남아 있어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싶었어요.
어미 닭의 자애로운 품만이 아니라
성장과 분리와 환영에 대해서도 말해 보고 싶었어요.
동시집도 내고 그동안 여러 책에 그림을 그려 왔지만,
내가 쓰고 그린 그림책은 이 책이 처음이에요.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평생 되새길 빛과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겠지요.
이 책을 읽어 주는 어른들은
당신이 지나온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게 될까요?
그 모든 시간에 사랑과 격려와 응원을 보냅니다.

 – 김환영-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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