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소나무

할아버지와 소나무

글/그림 이명환 | 계수나무
(발행 : 2019/07/30)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주들간의 관계는 부모자식 관계와는 또 다르죠. 우리 부모님들을 봐서는 분명히 자식보다는 손주가 더 예쁘고 각별한 듯 합니다. 물론 조손 사이의 멀고 가까움은 얼마나 자주 보냐에 달려 있을 것 같긴 합니다만…

스케치북을 들고 잔뜩 주눅 든 채 그림책 표지 속 꼬마가 바라보는 건 바로 근엄한 할아버지의 뒷모습입니다. 시골에서 오랜만에 찾아오신 할아버지가 꼬마는 무섭기만 합니다. 뭔가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 같긴 한데 엄마 아빠는 바쁘기만 하고 할아버지에게 물어보자니 선뜻 입이 떨어지질 않는 모양입니다.

할아버지와 소나무

할아버지는 솜이가 무서워하는 호랑이를 닮았어요.

자주 뵙지 못해 안그래도 어려운데 아빠랑 엄마 역시 할아버지 말씀 한 마디에 이리저리 부산하게 움직이는 걸 보니 더더욱 무섭기만 한 할아버지입니다. 마치 호랑이처럼 말이죠 ^^

아빠는 할아버지 시중 드느라 바쁘고, 엄마는 할아버지 드실 음식 장만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할아버지에게 엄마 아빠를 빼앗긴 것 같아 내심 서운한 꼬마가 혼자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이것저것 한참 그리다 소나무 한 그루가 그리고 싶어졌는데 어떻게 그려야 할지 아리송해진 꼬마는 엄마 아빠를 쫓아다니며 물어보지만 돌아온 대답은…

엄마 지금 바쁘니까, 할아버지께 가 봐.

할아버지는 무서운데…

할아버지와 소나무

할아버지가 무섭지만 소나무 한 그루 멋지게 그려보고 싶은 마음 역시 포기가 안되는 꼬마. 할아버지가 계신 방 주변을 기웃기웃하는데 고양이 녀석이 눈치도 없이 할아버지 방문을 열어젖히고 말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꼬마는 화들짝 놀라긴 했지만 이왕에 벌어진 일… 용기를 내서 할아버지에게 조심스레 다가갑니다.

하, 할아버지!
저… 소나무를 그리고 싶어요.

그러자 지금껏 호랑이처럼 무섭다고만 생각했던 할아버지께서 “허허, 소나무를? 어디 보자…” 하고 인자한 목소리로 꼬마를 반겨주십니다.

할아버지와 소나무

할아버지와 소나무

할아버지와 소나무

시골집 뒤에 있는 소나무를 그릴까?
소나무는 허리가 이렇게 휘었단다.
그리고 소나무는 주름이 많지. 이렇게…

할아버지가 사시는 시골집 뒤로 멋드러지게 자리잡은 소나무 한 그루가 꼬마의 눈앞에 자연스레 펼쳐집니다. 구부정한 할아버지의 허리, 거친 주름이 가득한 할아버지의 손, 그리고 듬성듬성 삐쭉삐쭉한 할아버지 머리를 닮은 소나무 한 그루가 할아버지의 구수한 목소리 뒤로 보이는 듯 합니다.

그러고 보니 꼬마는 더 이상 할아버지가 무섭지 않은가 봅니다. 어느새 할아버지 옆에 바짝 달라붙은 채 할아버지를 따라 소나무를 그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할아버지와 소나무

할아버지와 함께 소나무 그림을 완성한 꼬마는 엄마 아빠에게 후다닥 달려나가 으스댑니다. “어머 멋지다! 시골집  소나무를 닮았네!”라며 칭찬해주는 엄마 아빠를 향해 꼬마가 자랑스레 답을 합니다.

정말 멋지죠?
왜냐하면요…
소나무가 할아버지를 닮아서예요!

할아버지를 꼭 닮은 시골집 소나무 한 그루를 멋지게 그려낸 꼬마. 이제 더 이상은 할아버지가 무섭지 않겠죠? 그리고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할아버지가 오실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을까요?

무섭고, 다가가기 힘든 존재였던 할아버지와의 거리를 가깝도록 도와준 것은 바로 그림이었습니다. 할아버지와 그림을 그리며 쌓은 추억을 나눕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의 어린 시절 무섭기만 했던 할아버지와의 거리를 좁혀주었던 그림, 우리 아이들에게는 과연 어떤 것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어색한 거리를 좁혀줄 수 있을까요? 가장 좋은 건 자주 뵙는 것이겠죠? 할머니 할아버지와 무엇을 함께 하건 말입니다.

소나무 그림을 함께 그리며 무섭기만 했던 할아버지와 가까워지게 된 꼬마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의 뿌리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소중함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되는 그림책 “할아버지와 소나무”였습니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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