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피가 일등이에요

(원제 : Alfie Gets In First)
글/그림 셜리 휴즈 | 옮김 조숙은 | 보림
(발행 : 2000/03/20)


얼마 전 폭염 속에 차 안에 갇힌 두 살배기 아기에게 뽀로로 동영상을 보여주며 아기 스스로 문을 열게해 무사히 아기를 구출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아기를 무사히 지켜준 뽀통령의 위대함에 미소를 짓다 문득 이 그림책을 떠올렸어요.

1994년 첫 출간 후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세상 모든 어린 앨피와 엄마 아빠에게 사랑받는 그림책 “앨피가 일등이에요”, 오랜에 다시 만난 앨피가 너무나 반가워 엄마 미소 지어봅니다. 낡은 그림책 표지를 가만히 어루만지며 소곤소곤 속삭입니다. ‘잘 지냈니, 앨피?’

앨피가 일등이에요

엄마와 함께 동생 애니 로즈를 데리고 시장에 갔다 오는 길, 앨피가 앞서 뛰기 시작합니다. 일등으로 집에 가려고요. 뒤뚱뒤뚱 아장아장, 뛰어가는 그 뒷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네요. 현관 앞에 앉아 엄마와 동생을 기다리며 앨피는 이렇게 말했어요.

“봐, 내가 일등이야!”

앨피가 일등이에요

계단 밑에 유모차를 세워둔 채 엄마는 장바구니만 들고 올라와 현관문을 열었어요. 때를 놓치지 않고 앨피는 잽싸게 집 안으로 뛰어들면서 다시 소리칩니다.

“내가 일등! 내가 일등!”

사고가 난 건 바로 다음 순간이었어요. 엄마가 동생을 데려오려고 다시 계단을 내려간 순간 앨피가 현관문을 세게 쾅! 닫아버렸거든요. 앨피는 장바구니와 함께 집안에 있게 되었어요. 엄마 열쇠도 앨피와 함께 집 안에 있게 되었고요. 눈 깜빡할 사이 엄마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혼자 고립된 앨피, 다시 문을 열면 되겠지 싶지만……

앨피가 일등이에요

앨피는 안에서 문을 어떻게 여는지 몰랐어요. 엄마가 찬찬히 앨피에게 문 여는 방법을 설명해주었지만 문 손잡이는 앨피 손에 닿지 않았어요.

그림책이 접히는 선을 기준으로 엄마의 세상과 앨피의 세상이 나누어졌습니다. 왼쪽 화면 문밖의 엄마와 홀로 집안에 갇힌 오른쪽 화면의 앨피, 각자 고립된 양쪽의 상황을 이제 우리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흥미롭게 지켜보게 됩니다. 마치 지정된 자리에 앉아 연극 무대를 바라보듯이요.

앨피가 일등이에요

오른편에 혼자 고립되어있는 앨피의 정적인 상황과 달리 왼쪽은 앨피를 돕기 위해 찾아오는 이웃들로 분주해집니다. 이웃집 맥널리 아줌마, 모린 누나, 우유배달 차 아저씨, 유리창 닦는 아저씨까지 가세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 궁리를 시작해요.

하나 둘 이웃들이 찾아오며 일이 해결될 듯 말듯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왼쪽 화면을 가득 채우는 어른들의 긴박한 모습들은 이 작은 소동에 커다란 재미를 선사합니다.

앨피가 일등이에요

이제 글은 문 바깥쪽 상황만을 설명합니다. 어떻게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어른들이 궁리하는 장면을 글로 설명하는 동안 문 안쪽 앨피의 상황은 그저 그림만으로 보여줄 뿐이죠.

한바탕 울음을 터뜨렸던 앨피, 울고 나면 마음도 더 단단해지는 법입니다. 속수무책 선채로 울고만 있던 앨피가 행동하기 시작했어요. 맞은 편 문 밖에서 유리창 닦는 아저씨가 사다리를 세우고 화장실 창문을 향해 올라가는데…

앨피가 일등이에요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면서 짠~ 앨피가 나타났어요. 문 안쪽 만감이 교차한 얼굴로 서있는 앨피의 표정 좀 보세요. ^^

앨피는 현관문을 끝까지 활짝 열어젖히고,
모두 들어올 수 있도록
당당하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어요.

그럼요, 앨피는 분명 조금 전 자신과는 전혀 다른 아이가 된걸요. 달리기 일등 앨피는 이젠 도구를 써서 스스로 문을 열 줄 아는 그런 아이인걸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소동을 종결 시킨 앨피, 앨피가 일등이에요!

앨피 덕분에 한자리에 모인 이웃들은 다 같이 앨피네 집에서 차를 마셨답니다.

생생하면서도 세밀한 묘사, 치밀한 구조를 지닌 이 그림책을 읽다 보면 그림책에서 그림이 갖는 힘이 무엇인지 절로 느끼게 됩니다. 물론 탄탄하게 전개되는 이야기 구성 역시 이 그림책의 재미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죠.

일상에서 한 번쯤 겪어봤을만한 작은 에피소드를 소재로 함께 도움을 주고받는 이웃들의 모습을 따스하고 유쾌하게 그려낸 그림책 “앨피가 일등이에요”입니다.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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