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친구

풀친구

글/그림 사이다 | 웅진주니어
(발행 : 2019/07/26)


청록색 푸른 바탕에 음각으로 새겨진 자그마한 풀들을 한참 동안 쓰다듬어 봅니다. 그렇게 어루만지고 나면 손에서 푸릇푸릇 싱그러운 풀냄새가 날 것 같아요. “풀친구”란 어감이 너무나 다정해 자꾸만 입으로 되뇌어 보았어요. 풀잎의 싱그러움이 마음을 온통 초록으로 물들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잔디. 여기에 산다.

풀친구

이 이야기의 화자는 풀잎, 그중에서 잔디입니다. 원경으로 바라본 풍경에는 야트막한 야산에 푸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어요. 그 사이 고개를 빼꼼히 드러내고 있던 개와 고양이. 다음 장을 넘기면 잔디밭에서 개와 고양이가 신나게 뛰어놀고 있습니다. 그 둘이 뛰어노는 것이 즐거운지 풀들이 싱긋 웃고 있어요. 파릇파릇 푸릇푸릇, 저마다 제각각 표정들입니다.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언젠가 어디선가 진짜 풀들이 웃는 걸 본 것 같기도 하네요. 달려갈 때 발목에 걸린 풀들이 스르륵 슥슥 사라락 삭삭 소리를 내면서 웃는 소리를 들어본 것도 같고요. ^^

적당한 시기에 작동하는 스프링클러 덕분에 이곳에서 사는 풀들은 목마를 일이 없어요. 풀들이 웃습니다. 근심 걱정 없는 생기 가득한 얼굴로…

풀친구

어느 날 불어온 바람이 새 친구들을 데리고 왔어요. 바람에 날려온 씨앗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민들레를 시작으로 애기똥풀, 토끼풀, 질경이, 망초, 개비름, 소루쟁이… 시기마다 제각각 찾아온 친구들과 개와 고양이가 마련해준 간식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함께 쑥쑥 자라납니다.

풀들의 천국, 바로 이곳 아닐까요? 똑같은 잔디들로만 이루어졌던 단조로웠던 풀밭 풍경이 새로 찾아든 친구들 덕분에 더욱 근사해졌어요. 너풀너풀 함께 춤을 줍니다. 흔들흔들 빨갛고 파랗고 노란 꽃들이 함께 웃습니다. 서로 달라서 즐겁고 함께라서 행복해요.

풀친구

참, 또 다른 친구를 잊고 있었네.
이 친구는 우리가 덥수룩해지면 어김없이 나타나
이발을 해 준다.

이들 사이에 불쑥 나타난 또 다른 친구는 풀들의 이발사예요. 그런데 이 친구는 풀친구들과 달리 표정이 보이지 않아요. 온몸을 무장한 채 그저 해야 할 일을 할 뿐. 들쭉날쭉 제멋대로 자라던 풀들은 이제 키가 똑같아졌어요. 어느 누구 하나 삐죽 솟은 친구 없이 똑같이 똑같이… 나란히 줄 맞추어 싹둑 잘려나간 풀들, 이전처럼 행복한 표정은 아니에요. 조금 놀란 듯 당황한 듯 보여요.

이발이 끝난 풀친구들을 다시 찾아온 분홍 옷을 입은 친구가 시원한 주스를 뿌려줍니다. 개와 고양이는 멀리 달아났어요. 주스를 마시자 이상하게 잠이 쏟아집니다. 다 같이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풀친구

바람을 타고 찾아왔던 친구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어요. 이쪽저쪽 사방팔방 잔디들만 남아있어요. 똑같이 똑같이 생긴 잔디만…

자 이곳, 대체 어디일까요?

다음 장을 넘기면 다시 첫 장처럼 원경으로 잡은 풍경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아는 평범한 잔디밭 풍경, 그곳에 놓인 작은 깃발, 하얀 공 하나. 그렇습니다. 이곳은 골프장이에요. 삐죽빼죽 들쭉날쭉 모두 함께했던 즐거웠던 시간은 이제 지나갔어요. 생기를 잃은 듯한 잔디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쓸쓸함이 밀려옵니다. 누가 보아도 알록달록 아름다운 풍경이었는데… 싶지만 골프장 입장에서 보니 바람에 날려온 그 아이들은 풀이 아니었어요. 그저 성가시고 귀찮은 잡초였을 뿐. 잠시 정적이 흐릅니다.

풀친구

이 이야기는 재미있게 마무리됩니다. 똑같았던 풀잎이 뾰족뾰족 자라날 무렵 이곳에 다시 홀씨가 날아들어요. 한쪽에선 개와 고양이가 남겨놓은 누런 간식(?)을 먹으며 새로운 친구가 자라나고 있고요. 아무리 잘라내고 솎아내어도 풀친구는 포기하지 않아요. 시원한 바람이 있다면 조그만 공간만 있다면 그리고 반겨주는 어여쁜 얼굴이 있다면…

풀들이 웃습니다. 내 얼굴도 싱긋 웃고 있습니다.

난민 문제, 다문화 문제, 인종, 환경, 성차별, 빈부, 정치 문제 등등 다양한 상황을 생각하게 만드는 그림책 “풀친구“, 우리는 잔디일까요? 잡초일까요? 필요에 따라 혹은 상황에 따라 우리는 잔디도 될 수 있고 잡초도 될 수 있어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모두 똑같은 풀이라는 사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나를, 우리를 잃지 않는 것 아닐까요?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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