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사라진 그날

모든 것이 사라진 그날

(원제 : The day war came)
니콜라 데이비스 | 그림 레베카 콥 | 옮김 명혜권 | 우리동네책공장
(발행 : 2019/08/25)

※ 2019년 케이트 그린어웨이상 최종후보작


“약속”에서 삶의 희망을 이야기했던 니콜라 데이비스가 쓰고 “보고 싶은 엄마”의 레베카 콥이 그린 “모든 것이 사라진 그날”은 어느 날 갑자기 가족과 집을 잃은 한 난민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입니다.

마음으로는 그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줘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이 실제 나의 문제가 되었을 때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삶의 희망과 따뜻한 공존을 꿈꾸는 두 작가는 과연 이 문제에 대해 어떤 해법을 내놓았는지 함께 보시죠.

모든 것이 사라진 그날

평범한 가족의 평범한 아침입니다. 엄마는 아침을 준비하고 아빠는 보채는 아기를 달래고 있습니다. 칭얼대다 잠든 동생을 다정하게 바라보는 소녀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가족과 단란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소녀는 학교로 향합니다. 방금 전 아침 식사 자리가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과 함께 한 마지막 순간임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모든 것이 사라진 그날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수업중이었는데 갑자기 천둥과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고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고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합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와 힘 없이 무너져 내리는 건물들. 이리저리 휩쓸려 다닌 끝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소녀의 앞에는 폐허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우리 집이었던 자리에는
시커먼 구멍만이 남아 있었어요.
내 마음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었어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전쟁이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는 거예요.
나는 이제 혼자가 되었어요.

모든 것이 사라진 그날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엄마 아빠와 함께 다정한 시간을 보냈는데, 엄마가 학교까지 데려다 준 게 방금 전 일인데… 이제 소녀는 혼자일 뿐입니다.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리고 혼자 남겨진 소녀는 전쟁의 포화를 피해 피난길에 오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그저 앞에 걷는 사람을 따라 걷고 또 걸었습니다.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때쯤에서야 소녀는 가까스로 난민촌에 도착해서 더러운 담요가 놓여 있는 구석 자리 하나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나를 결코 놔주지 않았어요.
눈을 감아도,
꿈속에서도 떠올랐어요.
내 마음을 완전히 집어삼켰지요.

모든 것이 사라진 그날

모두가 똑같은 처지라 아무도 소녀를 돌봐줄 겨를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하고 아무런 돌봄도 받지 못한 소녀는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이리저리 방황합니다. 마치 자신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간 전쟁에게서 도망치기라도 하려는 듯…

전쟁을 피해 온 곳이지만 총성만 들리지 않을 뿐 이 곳의 상황도 그리 녹녹하지 않습니다. 전쟁에 떠밀려온 소녀를 바라보는 이 낯선 곳의 주민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습니다. 아무도 소녀를 향해 웃어주지 않았고 문을 활짝 열고 환영해 주는 곳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정처 없이 걷던 소녀가 낯익은 곳을 발견합니다. 바로 학교입니다. 교실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소녀. 자기 또래 아이들이 수업중이었습니다. 소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교실 문을 열었습니다.

내가 교실 문을 열자 많은 아이들이 나를 쳐다봤어요.
선생님은 나에게 다가와 차갑게 말했어요.
“여기는 네가 있을 교실이 아니란다.
보다시피 네가 앉을 의자도 없단다.
그러니까 나가주렴.”

친구들이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잠시나마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나 싶었지만 전쟁은 이곳까지도 악착같이 따라왔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진 그날

나는 다시 난민촌으로 돌아왔어요.
그러고는 낡은 천막 안 구석에 있는 담요 속에 몸을 숨겼어요.
전쟁은 마치 온 세상을 집어삼킨 것 같았어요.
모든 사람까지도.

의자가 없다는 이유로 학교 밖으로 내몰린 소녀는 마지막 한 자락 부여쥐고 있던 희망마저 놓아버리고 담요 속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그렇게 소녀의 마음이 무너져버리는 그 때 한 소년이 찾아왔습니다.

“내가 이걸 가져왔어.
그러니까 너도 이제 학교에 올 수 있어.
내 친구들도 의자를 가지고 왔어.
그러니까 여기에 있는 아이들 모두
학교에 올 수 있어.”

모든 것이 사라진 그날

그날 소녀를 교실 밖으로 밀어낸 선생님은 단순히 의자가 모자라서 그랬던 게 아니라는 걸 우리 어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난민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로 그 선생님의 행동에 담겨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우리처럼 복잡하거나 가식적이지 않습니다. 새 친구가 생기는 줄 알았는데 빈 의자가 없어서 그 친구를 못받아주나보다 생각했겠죠. 그래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새 친구를 위한 의자를 가져옵니다.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인 의자들이 길게 늘어서서 우리 아이들의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길을 안내합니다.

나와 다르지 않다는 아이들의 마음, 친구가 되고 싶다면 내가 먼저 손 내밀면 그뿐이라는 아이들의 마음, 피부색과 종교 문화가 다른 건 친구가 되는 데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아이들의 그 순수한 마음 덕분에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잃은 한 소녀가 꿈을 향해 희망을 향해 걸어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에게는 절대로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아’가 아니라 ‘나에게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은 없어’라는 생각으로 난민 문제를 바라보면 우리 마음이 조금 더 열릴 수 있을까요? 소녀의 말 한 마디가 자꾸만 귓가에 맴돕니다.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요.
모든 것이 사라진 그날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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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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