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구 아저씨가 잃어버렸던 돈지갑

만구 아저씨가 잃어버렸던 돈지갑

권정생 | 그림 정순희 | 창비
(발행 : 2019/09/20)

2019 가온빛 추천 BEST 101 선정작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저물어 가는데 느긋하게 뒷짐을 지고 흐뭇하게 웃으며 걷고 있는 아저씨, 푸근한 느낌만큼 이름도 친근한 만구 아저씨입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아저씨가 지금 무언가를 끌고 가는 것 같아요. 아저씨가 끌고 가는 것의 정체가 무엇이길래 고양이가 저리도 긴장을 하는 걸까요?

만구 아저씨가 잃어버렸던 돈지갑

장날 고추 한 부대를 내다 팔고 막걸리까지 한잔 걸친 만구 아저씨, 콧노래를 부르며 기분 좋게 집으로 향했어요. 빈 부대에는 오늘 장을 본 물건들이 담겨있고 호주머니 속 지갑에는 고추 판 돈이 제법 두툼하게 들어있으니 세상을 다 가진 듯 아저씨는 행복합니다. 그렇게 기분 좋게 길을 걷던 아저씨는 갑자기 똥이 마려워졌어요. 결국 가던 길을 멈추고 골짜기 우묵한 곳에서 볼 일을 보았죠. 그런데 볼 일보던 중 아저씨 잠바 호주머니에 들어있던 비닐 지갑이 그만 슬쩍 빠져나가고 말았습니다.

똥이란 글귀를 보고도 꽃향기가 먼저 느껴지는 건 앞산 뒷산 흐드러진 진달래 때문인가 봐요. 움트는 새순에서 나는 초록 나뭇잎 향기, 살랑살랑 봄바람에 실려오는 진달래 향기, 그림책 가득 풍겨오는 것 같습니다.

만구 아저씨가 잃어버렸던 돈지갑

지갑이 떨어진 줄도 모른 채 기분 좋게 집에 돌아간 아저씨, 장 봐온 물건들을 내어놓고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야 지갑이 사라진 걸 알았어요. 노란색 꽃무늬 가득한 통치마 선물에 함박웃음을 짓던 아주머니가 뭘 잃어버렸냐고 묻자 울상이 된 아저씨가 이렇게 말했어요.

“지, 지, 지갑이 없어졌어.”
아저씨는 천길만길 구덩이에 빠져드는 듯 아찔해졌습니다.

만구 아저씨가 잃어버렸던 돈지갑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사라진 지갑을 찾는 동안 아저씨가 똥을 누었던 곰바위 골짜기로 잠깐 돌아가볼까요? 푸르스름한 어둠이 내려앉은 골짜기에 이상한 가족이 등장해요. 이들은 오랜 옛날부터 이곳 골짜기에 살았던 톳제비들이에요. 톳제비는 경상도에서 ‘도깨비’를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놀러 나온 톳제비들이 발견한 건 한 무더기 똥 옆에 놓인 아저씨의 돈지갑. 호기심에 지갑을 뒤지던 톳제비들은 지갑을 두툼하게 채운 돈의 정체가 궁금했어요.

“이 종이쪽은 뭐야?”
아버지 톳제비가 천 원짜리 돈을 한 장 한 장 세어 보았습니다.
“그것, 코 푸는 휴지가 아니냐?”

잃어버린 걸 알고 만구 아저씨가 천길만길 구덩이에 떨어진 듯 아찔해졌던 그 귀한 돈, 톳제비가 보기엔 그저 종이쪽일 뿐이에요. 아버지 톳제비가 그건 금 은 대신 사람들이 쓰는 돈이라고 말하자 그들은 지갑에 다시 돈을 넣어놓았어요. 그리곤 있던 자리에 지갑을 그대로 놓아두고 사라졌어요.

만구 아저씨가 잃어버렸던 돈지갑

잃어버린 지갑 때문에 밤새 한숨도 못 잔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다음 날 지갑을 찾으러 나왔다 곰바위 골짜기 앞에서 지갑을 찾았어요. 사색이 되었던 아저씨 얼굴에 화색이 돕니다. 그 와중에 아주머니는 전날 아저씨가 장에서 사다 주신 통치마를 입고 나오셨네요.

지갑에는 어제 넣어두었던 사만 팔천 원이 그대로 들어있었어요. 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지폐 한 장에서 구린내가 좀 나는 것 같았거든요. 단 한 장, 가운데 놓여있던 돈에서요. 글쎄요, 무슨 일이 있었기에 딱 한 장의 지폐에서만 구린내가 나는 걸까요? 지난밤 아저씨의 지폐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그림책으로 확인해 보세요. ^^

만구 아저씨가 잃어버렸던 돈지갑

아저씨는 시렁 위 상자 안에 돈을 고이 감추어두었어요. 다음 장날 더 모아 송아지를 한 마리 살 생각이었거든요. 밤이 찾아왔습니다. 지난밤 잃어버린 돈 때문에 잠 못 들었을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오늘 밤엔 업어가도 모를 만큼 깊이 잠들었어요. 머리맡 자리끼, 요강, 시렁, 작은 옷장까지 아저씨네 살림살이가 참으로 소박합니다. 마치 권정생 선생님 생전에 지내셨던 안동 조탑리 작은방을 닮은 것 같아요.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에요. 온 세상이 잠든 캄캄한 밤인데 시렁 위에 올려둔 돈 상자에서 희미한 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말이에요. 지난 밤 톳제비들에게서 흘러나오던 바로 그 신비한 불빛이 상자에서 흘러나와 작은방을 채우고 있습니다.

만구 아저씨가 잃어버렸던 돈지갑

그 빛을 따라온 걸까요? 톳제비 가족이 아저씨네 마당을 어슬렁거리고 있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의 글은 아저씨 아주머니가 곤히 잠든 장면에서 마무리됩니다. 정순희 작가는 이 장면을 한 장 더 넣어 그림책을 마무리했어요. 선한 이들을 알아보는 마음씨 고운 우리 도깨비들이 떠올라 괜스레 마음이 설레네요. 모두 잠든 캄캄한 밤 온몸을 감싸고 있는 도깨비 불빛이 더해져 더욱 신비로운 느낌입니다.

아, 그림책 표지 그림에서 아저씨 줄을 따라오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눈치챘나요?

만구 아저씨가 잃어버렸던 돈지갑

기분 좋은 아저씨 뒤를 따라오는 것은 어린 송아지 한 마리였어요. 알뜰살뜰 모으고 모은 돈으로 드디어 송아지를 산 모양입니다. 소동을 벌였던 작은 손자 톳제비가 나무 뒤에 숨어 이 광경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은 착하고 성실하게 산 아저씨 아주머니에게 내린 톳제비의 축복일지도 몰라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똥’과 ‘돈’을 소재로 인간과 도깨비 사이의 하룻밤 소동을 재미있게 그려낸 그림책 “만구 아저씨의 잃어버렸던 돈지갑”, 이 이야기는 1988년 출간된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집 “바닷가 아이들”에 수록된 단편 동화 중 한 편입니다. 동화를 그림책으로 만나 보니 이전과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네요.

맑고 부드러운 화풍의 그림책을 선보여온 정순희 작가는 착하고 장난기 많은 우리 도깨비의 모습을 정감 가득하게 그려냈어요. 도깨비를 어떻게 표현할지 오랜 시간 고민하던 정순희 작가는 빗자루가 도깨비로 변한다는 민담에서 착안해 그림책 속 다양한 빗자루 형상의 톳제비 가족을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아저씨 아주머니 방에도 몽당빗자루가 걸려있는 장면이 있으니 꼭 찾아보세요.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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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순
강지순
2019/10/29 14:01

힘들게 정리해 놓으신거 고맙게 잘 보고갑니다. 언젠가 뵐수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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