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들

늑대들

(원제 : Wolves)
글/그림 에밀리 그래빗 | 옮김 이상희 | 비룡소
(발행 : 2019/06/21)

2019 가온빛 추천 BEST 101 선정작
※ 2005 케이트 그린어웨이상 수상작


‘늑대’하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빨간 모자 그리고 아기 돼지 삼 형제입니다. 아,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양’의 작고 귀여운 아기 양들도 떠오르는군요.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가 너무나 깊숙이 뇌리에 박혀있기 때문인가 봐요.

에밀리 그래빗은 자신의 늑대 이야기 속에 토끼를 등장시켰습니다. 작고 귀여운 토끼와 커다랗고 사나운 늑대의 조합이라니… 잠시 요리조리 머릴 굴려가며 생각해 봐도 뭔가 아찔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요.

늑대들

도서관에 간 토끼가 책을 한 권 골랐어요. 그 책이 바로 우리가 보고 있는 바로 이 책, “늑대들”입니다. 시뻘건 표지만 봐도 뭔가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데 토끼는 금세 책 속으로 쏘옥 빠져들었어요. 토끼가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이 늑대 책이라니 참 아이러니하네요.

토끼가 책을 읽는 장면 뒤쪽에 토끼가 읽고 있는 책 페이지가 펼쳐지고 있어요. 그리고 그 속에 책의 주인공인 늑대가 등장하고 있죠. 내용은 늑대의 생태에 관한 것입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생김새는 어떤지 이런 내용들이에요. ‘토끼가 도서관에서 책을 골랐다’는 첫 도입부를 제외하고 텍스트는 이렇게 토끼가 읽는 책의 내용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어요.

재미있는 것은 책 속 늑대들의 모습입니다. 마치 책 바깥세상에 존재하는 토끼를 의식하고 있는 듯 시종일관 토끼를 향해 으르렁대고 있거든요. 그와 달리 책 읽는 재미에 빠진 토끼는 늑대의 존재를 책 속 캐릭터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어요. 재미있는 책을 읽을 때 누구나 그렇듯 토끼는 잠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아요. 다행히 빨간 책 테두리가 하나의 프레임이 되어 늑대들로부터 토끼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늑대들

토끼가 책 속에 점점 몰입하면서 현실 공간이 조금씩 줄어들어요. 반면 페이지를 넘길수록 늑대가 살고 있는 빨간 책 테두리는 점점 커집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토끼와 늑대는 한 공간에 존재하게 됩니다.

다 자란 어른 늑대는 이빨이 42개예요.
턱은 큰 개의 턱보다 두 배로 강하지요.

코앞에 닥친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 채 책 속에 빠져있는 천진난만한 토끼는 옅은 채색으로 담백하게 그려냈고 야생의 늑대는 연필 드로잉만으로 거칠게 그려내 둘 사이 힘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확연히 드러내 보여주고 있어요.

늑대들

늑대들은 주로 고기를 먹어요.
사슴과 들소, 고라니 같은 덩치 큰 먹잇감을 사냥하지요.
아주 작은 동물들도 즐겨 먹어요. 비버와 들쥐, 그리고…

‘비버와 들쥐 그리고…’ 뒤에 무엇이 올지 감 잡았나요? 아, 토끼!!! 그제서야 눈치챈 모양입니다. 무언가 일이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이제 책 테두리가 그림책 페이지를 다 덮어 버렸어요. 책을 읽던 토끼가 마치 책 속으로 들어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무시무시한 늑대의 두 눈, 놀라 휘둥그레진 토끼의 두 눈.

늑대들

토끼는 사라졌습니다. 찢겨져 나간 ‘토끼’라는 글자만 남겨놓고서요. 거칠게 할퀴고 물어뜯긴 자국으로 우리는 그다음 벌어진 상황을 조용히 상상할 뿐이에요. 아, 토끼!!! 책에 그렇게 깊숙이 몰입하지 않았더라면… 조금만 더 빠르게 눈치챘더라면… 바로 눈앞에서 벌어진 일처럼, 내가 그 상황을 막지 못했던 것처럼 스스로를 자꾸만 자책하게 되는 건 이야기가 너무 생생했기 때문이겠죠.

책장은 덮였고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라 생각한 순간 작가 에밀리 그래빗은 마음 여린 독자를 위해 작은 선물을 남겨놓았습니다. 이름하여 좀 예민한 독자를 위한 또 다른 결말. 책 속의 책, 그리고 그 책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늑대들

또 다른 이야기 속에서 토끼는 살아있었어요. 사나워 보였던 늑대가 알고 보니 채식주의자였거든요. 둘은 잼 샌드위치를 나눠먹고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너덜너덜 조각조각 이어붙인 토끼와 늑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더 슬퍼 보이는 건 왜일까요? (아아, 웃고 있지만 눈물이 난다~)

늑대들

마지막 페이지는 토끼네 집 현관 앞에 잔뜩 쌓인 우편물들로 마무리됩니다. 이렇게나 많은 편지가 쌓여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정말 늑대에게 잡아먹혔기 때문일까요, 채식주의자 늑대와 노는데 빠져 토끼가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토끼 굴 공공 도서관에서 온 편지를 살짝 열어 보니 “늑대들” 반납 기한이 지났다고 하네요. 연체료가 16000원이나 되는데 도대체 토끼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요?

신간 안내 홍보지가 놓인 토끼네 현관 앞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책 속의 책’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다 다시 토끼네 현관 앞에서 마무리되는 그림책 “늑대들”, 이야기는 사람들의 상상과 만나 다양하게 변신합니다. 때론 슬프게 때론 기쁘게 때론 아주 엉뚱하게…

이 그림책은 작가 에밀리 그래빗이 만든 첫 그림책이에요. 그녀는 이 그림책으로 2005년 케이트 그린어웨이상을 수상했습니다. 동물을 의인화한 참신한 스토리와 아름다운 그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 속에 여러 생각거리를 남겨놓은 그녀의 그림책들, 새로운 책을 만날 때마다 매번 ‘역시 에밀리 그래빗!’하며 감탄하는 이유입니다.


※함께 읽어 보세요 : 아기 돼지 세 마리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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