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마리 아기 염소, 요 녀석들!

일곱 마리 아기 염소, 요 녀석들!

(원제 : Die Verflixten Sieben Geißlein)
글/그림 제바스티안 메셴모저 | 옮김 김경연 | 나는별
(발행 : 2019/10/17)

2019 가온빛 추천 BEST 101 선정작


슬쩍 보곤 익숙한 제목이다 생각했는데 다시 살펴보니 제목 뒤에 ‘요 녀석들!’이 더 붙어있습니다. 합치면 “일곱 마리 아기 염소, 요 녀석들!”, ‘요 녀석들’의 ‘요’ 자에 뿔까지 붙어있는 걸 보니 누군가 일곱 마리 아기 염소들에게 단단히 화가 난 모양입니다.

면지에 우락부락한 늑대가 등장해요. 테이프를 잘라 이리저리 이어붙여 무언가를 만들더니 곧이어 온몸에 하얀 밀가루를 뿌립니다. 빨간 립스틱을 공들여 바르고 핑크색 원피스를 입고는 머리에 어설프게 만든 뿔까지 달더니만… 빨간 하이힐을 신고 휘청이며 찾아간 곳은 아기 염소들만 남아있는 염소네 집이에요. 그렇습니다. 늑대는 바로 오늘 이곳을 찾아온 것입니다.

일곱 마리 아기 염소, 요 녀석들!

계획은 아주 완벽했어요.
엄마 염소랑 정말 비슷해 보였거든요.
시장에 간 엄마 염소는 몇 시간은 지나야 돌아올 거예요.
일곱 마리 아기 염소들이 문을 열어주자마자
늑대는 하나하나 모두 잡아먹을 거예요.

여기까지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독일 그림 형제의 동화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입니다. 아기 염소들이 엄마인지 확인하겠다는 말에 변장을 하러 왔다 갔다 하지 않도록 이미 늑대는 완벽하게 계획을 세운 후 집을 나섰습니다. 이제 곧 염소네 집 문이 열릴 테고 늑대는 계획했던 대로 아기 염소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잡아먹겠죠.

일곱 마리 아기 염소, 요 녀석들!

그런데 문을 열고 보니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난감함 그 자체입니다. 엄마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남은 일곱 마리 아기 염소는 그새를 못 참고 집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거든요. 발 디딜 틈 하나 없는 집안 꼴을 보고 나서 세상 다 잃은 듯한 늑대 표정이 압권이에요. 잠시 후 집에 돌아온 엄마 염소가 지어야 할 표정을 늑대가 앞질러 지어버린 것 같은…

이렇게 아수라장이 된 집안 곳곳에 아기 염소 일곱 마리가 숨어있으니 두 눈 크게 뜨고 한 번 찾아보세요. 아마도 제가 늑대였다면 진즉에 포기하고 도망쳤을 것 같은데 여러분은 어떤가요?

일곱 마리 아기 염소, 요 녀석들!

숨어있는 아기 염소들을 찾기 위해 늑대는 어질러진 집안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치우고 정리하다 보면 결국 아기 염소들이 숨을 곳이 없어질 거고 그러면 그때 녀석들을 몽땅 잡아먹으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옷걸이에 옷을 차례차례 걸고 청소기를 돌려 더러워진 바닥을 청소하고 이리저리 널브러진 책들을 모두 책장에 차곡차곡 꽂았어요. 그렇게 거실이 완벽하게 정리된 순간! 어디선가 짠하고 나타나 부리나케 도망치는 아기 염소들. 늑대가 그 뒤를 쫓아가보니 부엌 역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깨지고 엎질러지고 눌어붙어 사방이 온통 끈적끈적.

일곱 마리 아기 염소, 요 녀석들!

청소 좀 하고 사는 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엉망이 된 집을 청소하며 누구라도 들으라는 듯 넋두리하는 늑대의 모습이 내 모습 같아 웃음이 빵 터지고 맙니다. 그나저나 어질러졌던 집안이 늑대의 손길에 하나하나 정리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보는 이의 마음도 후련해지는 것 같아요. 그러게 청소 좀 하고 사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그죠? ^^

요것만 끝나면, 끝나면… 생각했지만 일곱 마리의 아기 염소가 사는 집은 할 일로 넘쳐나고 안타깝게도 늑대의 시간은 자꾸만 흘러갑니다.

일곱 마리 아기 염소, 요 녀석들!

거실 지나 부엌, 그리고 2층 아기 염소의 방, 욕실까지 늑대는 염소네 집안 곳곳을 완벽하게 정리하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엉망이 된 집 곳곳에 즐거운 놀이라도 하는 듯 재미있는 표정으로 숨어있던 아기 염소들, 어느새 겁도 없이 늑대 근처에서 어슬렁대면서 청소하는 늑대를 돕고 있어요.

마침내 모든 정리가 끝나자 늑대는 꾹꾹 억눌렀던 화를 터뜨리고 말았어요.

요 녀석들!
마침내 다 찾았군!
세상에, 누가 이렇게 어질러 놓고 사니?
누가 잡아먹으러 왔다가 이런 돼지우리를 보면 어떻겠어?
부끄럽지도 않아?

아, 너무나 익숙한 이 소리, 어린 시절 종종 듣곤 했던 그리운 엄마 잔소리이자 내가 아이에게 종종 울분을 터뜨렸던 소리.^^ 아기 염소들 역시 이런 늑대에게서 엄마를 느낀 걸까요? 피하지도 않고 오히려 늑대 다리를 꼬옥 안고 애정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에요.

일곱 마리 아기 염소, 요 녀석들!

그때 뭔가 싸한 느낌, 그래요. 엄마 염소가 돌아왔어요. 늑대의 시간은 어느새 지나가 버렸습니다. 처음 장면을 보면서 무시무시한 늑대라고 생각했는데 카리스마 넘치는 엄마 염소 옆에 있으니 늑대가 어찌 이리 초라해 보일까요? 여전히 세상 즐거운 천진난만한 아기 염소들 때문에 이 상황은 더욱 웃음을 자아냅니다.

아기 공룡 둘리보다 고길동 아저씨가 불쌍해 보이면 어른이 된 거라고 했던가요. 아, 엉망이 된 모습으로 엄마 염소를 바라보는 늑대를 보고 있자니 통쾌하기보단 뭔가 측은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게, 늑대야 아까 그랬잖아. 진즉에 포기하라고.)

이 그림책은 오래전 소개했던 그림책 “하늘에서 달님이 뚝! 떨어졌어요”의 작가 제바스티안 메셴모저의 작품입니다. ‘아, 그림 좋다, 이야기 재미있다~’하며 가온빛지기들이 일찌감치 점 찍었던 작가였지요.

생동감 가득한 그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이야기에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가미한 패러디 그림책 “일곱 마리 아기 염소, 요 녀석들!”, 어리숙한 늑대 덕분에 엄마 염소는 오늘 잠시 편안했을까요? 분명 오래가지는 못했을 테지만요.

일곱 마리 아기 염소, 요 녀석들!

어지럽혀진 집안 곳곳을 청소하는 늑대의 표정이 너무나 리얼합니다. 부러진 가짜 뿔이 머리에 돌돌 만 헤어롤 같아요. 작가 제바스티안 메셴모저는 얼마나 많은 엄마들을 보며 표정 연구를 했을지 궁금해집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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