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 요정

쓰레기통 요정

글/그림 안녕달 | 책읽는곰
(발행 : 2019/10/10)


반투명 트레이싱 페이퍼를 표지 위에 덧씌워 쓰레기봉투처럼 만든 표지 디자인이 아주 참신합니다. 그림책을 집어 들면 마치 쓰레기 봉지를 집어 드는 느낌이 들거든요. 반투명 덧표지를 벗기면 나오는 표지 그림이 마치 쓰레기 봉지 속에 든 내용물처럼 보이니 요소요소 참 세심하면서도 재미있네요.

쓰레기통과 요정의 조합이라니 좀 엉뚱하죠?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또 그리 이상할 것도 없어요. 요정이란 세상 곳곳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나저나 이 요정은 자신을 좋아해 주지 않으면 우아아앙 울 수 있대요. 아기처럼 깜찍한 쓰레기통 요정입니다.

쓰레기통 요정

쓰레기통 요정이 태어난 곳은 어느 골목 한 켠의 쓰레기통이에요. 짜-잔하고 경쾌하게 튀어 오른 무지갯빛 쓰레기통 요정 주변이 환한 빛으로 가득합니다. 비록 그곳이 후미진 곳에 놓인 쓰레기통일지라도 말이에요. 요정은 사람들이 나타나면 해맑은 얼굴로 이렇게 외칩니다.

소원을 들어 드려요!

하지만 사람들은 쓰레기통 요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작고 귀여운 쓰레기통 요정이 나타나 ‘소원을 들어 드려요!’하고 외치면 다들 놀라 꺄악하고 소리부터 질렀거든요.

그런데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어요. 쓰레기통을 지나치던 한 남자가 ‘하늘에서 돈이나 쏟아졌으면 좋겠다’며 쓰레기통 요정에게 소원을 말했어요. 쑤욱 브스럭 바스락 달그락 달그락 짤랑 짤랑… 한참을 쓰레기통을 뒤지던 쓰레기통 요정이 다시 나타났어요. 머리 위에 10원짜리 동전을 잔뜩 이고서요.

쓰레기통 요정

하지만 어쩐 일인지 남자는 조금도 기뻐하는 것 같지 않았어요.

처음으로 소원을 들어주었다는 생각에 기분 좋은 요정과 달리 남자는 아주 불쾌해 보입니다. 분명 돈이 맞긴 한데 남자가 생각하는 돈은 이 돈이 아니었겠죠. 배경으로 조각조각 찢어 붙인 종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찢어진 로또복권 종이들이 지금 남자의 마음 같아요.

쓰레기통 요정

풀 죽은 쓰레기통 요정이 훌쩍훌쩍 울면서 자신을 반겨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때 어디선가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왔어요. 너무 울어 눈이 퉁퉁 부은 쓰레기통 요정이 자기와 똑같이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울고 있는 아이에게 말했어요. ‘소원을 들어 드려요’라고.

엄마가 버린 무언가를 찾아주기 위해 쓰레기통 요정이 다시 활약을 시작했어요. 금도끼 은도끼 옛이야기 속 산신령처럼 쓰레기 더미를 뒤져 아이가 잃어버린 것을 건져 올리는 쓰레기통 요정, 아이는 그런 요정을 믿고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현실이 되었어요. 너무 낡아 여기저기 해어진 곰돌이 인형을 보고 아이가 자기가 찾는 것이 맞다면서 활짝 웃었거든요.

누구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을 거예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그것, 그것을 다시 만난 기쁨을 아이가 얼굴로 보여주고 있어요. 처음 맛본 성공에 쓰레기통 요정도 아이처럼 행복해졌어요.

쓰레기통 요정

오가는 사람 없는 골목 모퉁이에서 할아버지가 바쁘게 폐지를 정리하고 있어요. 그 어둡고 스산한 골목 한가운데 유일하게 빛나는 건 쓰레기통 요정뿐입니다. 할아버지를 본 요정은 다시 한 번 힘차게 외쳤어요. ‘소원을 들어 드려요!’하고. 할아버지는 아이처럼 순진한 얼굴로 소원을 말합니다.

우리 집 할머니가 좋아할 만한 게 있을까?

쓰레기통 요정이 다시 쓰레기통을 뒤지기 시작합니다. 부스럭부스럭 달그락달그락… 그 앞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할아버지 얼굴은 곰 인형을 찾을 때까지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아이처럼 해맑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번 소원은 쉽지 않아요. 아무리 찾아보아도 할머니가 좋아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거든요.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쓰레기통 요정이 할아버지에게 무언가를 건넸어요. 그건…

쓰레기통 요정

쓰레기통 요정이 유일하게 지니고 있던 장난감 반지였어요.

하지만 이건 네 거잖아.
괜찮아요. 난 이거면 돼요.

유일하게 가진 것을 선뜻 내어주는 쓰레기통 요정, 망설이던 할아버지는 그 소중한 것을 두 손에 꼬옥 받아 쥐고 요정에게 고맙다고 인사합니다. 반지 대신 음료수 캔꼭지를 쓴 쓰레기통은 누군가의 소원을 들어준 것이 그저 기쁘고 행복해요.

진짜 소중한 것의 가치는 그것을 알아볼 줄 아는 사람 눈에만 보이는 것이겠죠. 할머니 손가락에 꼭 맞는 반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것으로 사랑을 확인하며 행복해집니다. 그 모습이 묵직하게 마음을 울립니다.

쓰레기통 요정

높은 빌딩 숲에 둘러싸여 햇빛 한줄기조차 귀한 동네, 그 동네 가장 더러운 곳에 사는 작은 쓰레기통 요정, 장난감 반지 대신 캔꼭지를 쓰고 있어 모습은 조금 달라졌지만 쓰레기통 요정은 오늘도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저만치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려오면 요정은 오늘도 이렇게 힘찬 목소리로 외쳐요.

소원을 들어 드려요!

지금은 쓰레기통에 버려진 것들도 한때는 누군가에게 아주 소중하고 꼭 필요한 것이었던 시절이 있었겠죠. 처지는 바뀌었지만 그들도 또 그 나름대로 누군가에게는 기쁨과 행복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어요. 쓰레기통 요정이 제대로 찾아주고 그걸 받는 이들이 잘 알아봐 줄 수 있다면요.

눈만 뜨면 화려하게 반짝이는 새것들이 홍수처럼 쏟아지지만 그것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버려지는 것들도 너무 많은 요즘입니다. 이런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고 지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야기 소재에 맞게 안녕달 작가는 버려진 영수증이나 복권, 공책, 신문, 서류 봉투 등을 찢고 오려 붙여 이 그림책을 만들었다고 해요. 작고 소박한 것에 깃든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작가 안녕달, 사물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길과 예리한 시선은 그녀의 그림책 속에서 아주 멋지게 빛을 발합니다. 두 눈 크게 뜨고 찾아보면 그림책 속에 소소한 볼거리들이 많으니 자세히 살펴보세요. 내가 사랑스러운 쓰레기통 요정이 된 것처럼 상상하면서요.

행복에 대하여, 선한 영향력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그림책 “쓰레기통 요정”,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주는 것, 아낌없이 나누고 함께 기뻐하는 것,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는 것입니다.


※함께 읽어 보세요 : 먼지깨비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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