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레에게 일어난 일

■ 발행일 : 2014/08/06
■ 마지막 업데이트 : 2016/09/25


마레에게 일어난 일
책표지 : 보림
마레에게 일어난 일(원제 : Mare En De Dingen)

티너 모르티어르, 그림 카쳐 퍼메이르, 옮긴이 신석순, 보림


“오른발, 왼발”을 통해 알게 된 ‘토미 드 파올라’의 다른 그림책들이 궁금해서 도서관을 뒤지던 중 만난 그림책 “마레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찾던 책이 청구기호 순서에 맞게 꽂혀 있지 않아 한 권 한 권 책 제목을 짚어 가다 슬쩍 빼 본 그림책 표지의 그림이 하도 강렬해서 펼쳐 보게 되었는데 강렬한 그림에 걸맞는 깊은 감동을 전해 주는 그림책이라 오늘 소개합니다.

“오른발, 왼발” 덕분에 이 책을 발견했는데, 공교롭게도 두 책이 같은 주제를 담고 있을뿐만 아니라 내용의 구성이나 전개도 기가 막히게 일치합니다. “오른발, 왼발”은 할아버지와 손자가, “마레에게 일어난 일”은 할머니와 손녀가 주인공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조손간의 친구같은 깊은 우정과사랑을 소재로 했다는 점, 뇌졸증에 걸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손자와 손녀가 정성껏 돌본다는 내용 등은 두 그림책이 완벽히 일치하고 있습니다. (“오른발, 왼발”이 1980년에 발표되었고 “마레에게 일어난 일”의 글을 쓴 티너 모르티어르는 1970년생, 그림을 그린 카쳐 퍼메이르는 1981년생이니 아무래도 영향을 받았겠죠 ^^)

여하튼 멋진 그림 때문에라도 꼭 소장하고 싶은 그림책 “마레에게 일어난 일” 지금 시작합니다!


마레에게 일어난 일

마레는 참을성이 없는 여자 아이예요. 엄마 뱃속에서부터 ‘나 지금 나갈래! 지금 당장!’하며 쿡쿡 차 댈 정도로 말이죠. 마레는 벚나무 아래 놓인 등나무 의자에서 태어났어요. 엄마는 그때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었는데… 성질 급한 마레는 엄마가 병원에 갈 때까지 기다려 줄만큼 참을성이 있지 않았나봐요.

마레는 무럭무럭 자라서 돌도 안지났는데 정원을 이리저리 돌아 다니고 뛰어 다닐만큼 활동적이예요. 그리고 세상에서 처음으로 한 말이 엄마도 아빠도 아닌 ‘과자’였어요.(“오른발, 왼발”에서 보니가 처음 한 말은 할아버지 이름인 ‘보브’였죠.) 먹성 좋은 마레는 늘 배가 고파서 상자에 담긴 과자를 모두 먹어치울 정도래요. 참을성 없고 지나치게 활동적인데다 먹성까지 좋은 우리의 꼬마 아가씨 마레…

그런데 이게 뭐 나쁜가요? 적극적이란 이야기고, 건강하다는 뜻인걸요 뭐. 우리 어른들 말로 ‘커서 뭐가 되도 될거다, 나중에 한가락 하겠네’ 하는 소리 들을만한 꼬마 아가씨 마레… 조금 더 볼까요?

마레에게 일어난 일

이런 마레에게 가장 친한 친구는 바로 할머니였어요. 할머니도 마레처럼 참을성이 없고 먹성도 좋았대요. 마레가 할머니를 닮았던거군요. 할머니가 놀러 오시면 무슨 큰 잔치가 벌어졌나 착각할 정도였어요. 마레와 할머니는 정신 없이 정원을 뛰어 다니고, 벚나무에 올라서 크게 소리를 질러서 새들을 쫓아내고, 연못 한 바퀴를 빙그르르 뛰어 다니고 나서는 과자 파티를 벌이며 정신 없이 수다를 떨었대나봐요. 마레와 할머니는 과자 부스러기와 설탕으로 손이 온통 끈적거릴 때까지 실컷 과자를 먹었답니다.

마레와는 둘도 없는 단짝이었던, 마레와 세상에서 가장 잘 통하는 할머니가 쓰러지셨어요. 할아버지가 마레에게 할머니 소식을 전하지만 마레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자기랑 그렇게 신나게 뛰어 다녀도 단 한번도 넘어진 적 없는 할머니가 쓰러질 이유가 없었거든요. 할머니에게 아무리 ‘일어나, 얼른 일어나! 얼른!’ 하고 소리쳐 봐도 할머니는 아주 깊이 잠들어 있어서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시간이 흘러서 할머니가 아주 깊은 잠에서 깨어나긴 했는데 여전히 말은 없었어요. 할머니는 깊이 잠든 사이에 과자를 먹는 법도, 신나게 뛰는 법도, 재미나게 이야기 하는 법도 모두 잊은 것 같아요. 이런 할머니의 모습에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발만 동동 구르던 마레… 하지만 우리의 꼬마 아가씨 마레가 이대로 포기할 리 없죠?

마레는 할머니와 함께 했던 놀이와 이야기, 그리고 할머니가 좋아했던 군것질거리들을 할머니에게 끊임 없이 보여줬어요. 할머니가 좋아했던 그림들을 텅 빈 병실 벽에 그리기 시작했어요. 침대 옆 탁자 위엔 할머니랑 갖고 놀았던 온갖 잡동사니들이 점점 쌓이기 시작했구요. 물론, 할머니가 좋아했던 과자를 담아 놓는 것도 잊지 않았죠.

사람들은 모두 할머니는 더 이상 말을 못한다고 하지만 마레는 믿지 않았어요. 할머니가 이따금씩 내는 소리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단음절의 소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마레는 아주 가끔씩 할머니의 입을 통해서 들려 오는 그 소리 하나 하나가 너무도 소중했고, 할머니의 소리에서 마레만의 의미를 찾아가기 시작했어요.

할머니가 ‘꼬’ 하고 소리를 내면 닭을 그려 주었고, 할머니 입술이 옆으로 벌어지며 ‘스’ 하면 할머니가 스테이크를 드시고 싶어한다고 믿었어요. 다른 사람들처럼 건성으로 듣지 않고 할머니 눈을 바라보며 할머니에게 집중하면 마레는 그 뜻을 알 수 있었거든요.

마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점점 쇠약해져만 가는 것 같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다시 건강해진 모습을 보지 못한 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소파에 앉아 편안한 웃음을 머금은 채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깊은 잠에 든 할아버지를 엄마가 발견할 때 마레도 함께였어요. 죽음을 처음 접하는 마레로서는 누군가의 친절한 설명과 따뜻한 위로가 필요했지만 할아버지 장례식을 준비해야 하는 엄마는 정신이 없었어요.

마레는 할머니가 있는 병원으로 갔어요. 그런데, 할머니 눈시울이 촉촉해지는가 싶더니 두 볼과 원피스까지 젖어 버렸어요. 사람들은 할머니가 아무런 의식도 없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알아 듣지도 못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지도 못한다고 했었지만 끝없이 할머니와 소통하려 들었던 마레가 맞았었던거죠. 병원에 들른 가족들이 주고 받는 이야기로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알 수 있었고 평생을 함께 해 온 남편의 마지막을 함께 해 주지 못하고, 배웅도 해 줄 수 없는 자신이 한스러워 서글픈 눈물을 흘리시는걸테니까요.

할머니는 눈물을 다 닦아 내고는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말했어요.
할아버지의 머리카락을 꼭 한번 어루만지고 싶다고 말했지요.
할머니가 원하는 건 단지 그뿐이었어요.

마레는 할머니의 말을 간호사들에게 전하지만 간호사들은 믿어 주질 않아요. 그저 안된다는 말 밖에는 해주질 않아요. 잔뜩 화가 난 마레는 만류하는 간호사들을 뿌리치고 할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할아버지에게 데려다 줍니다.

할아버지 주변은 싸늘했어요.
마레와 할머니 옆에서 포실포실 하얀 김이 구름처럼 피어올랐어요.

“아 예뻐라. 정말 예쁘다!”

마레는 할머니가 앉은 휠체어를 할아버지 가까이 밀었어요.
할아버지 입에서는 하얀 김이 새 나오지 않았어요.
할아버지는 두 눈을 감은 채 여전히 빙그레 웃고 있었지요.

“안녕.”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었어요.
그러고는 마레를 바라보며 생긋 웃으며 말했어요.

“과자.”

할머니가 드디어 제대로 된 단어를 말하기 시작했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마레가 서운하긴 하겠지만 할머니와 다시 재미나게 수다를 떨 수 있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네요.

책표지에 한글로 표기된 이름을 읽기 조차 힘든 벨기에 작가들의 글과 그림은 전혀 낯설지가 않고 가슴 속 깊이 스며 들어 오는 것을 보면 바로 이 것이야말로 그림책이 주는 진정한 감동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면지를 제외하고 본문은 모두 12장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림 한 장 한 장에는 글로 담아내지 못하는 세세한 감정의 변화, 현실에서 벌어진 상황에 직면한 인간의 내면의 세계들이 드라마틱하면서 환상적으로 담겨져 있습니다. 잔잔한 이야기에 아름다운 그림이 그 감동을 배가 시켜 주는 그림책 “마레에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림책 “마레에게 일어난 일”을 보며 저는 이런 생각들을 해 봤습니다.

진정한 가족의 소통은 내면의 교감을 통한 공감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복잡해질 수록 가족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변해가는 듯 합니다. 가족보다 사회구성원으로서 자신이 속한 조직 속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는 더더욱 커져 가는데 반해 가족의 소중함이 자꾸만 희석되어 버리는 게 아닐까 염려스럽습니다. 거기에 핵가족화가 보편화 된 현실은 세대와 세대 간의 대화와 소통이 희귀해져만 가고 있고 말이죠.

이럴수록 조금 더 가족에게, 이웃에게 내가 먼저 다가서서 먼저 말을 건네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 소통이 공허해지지 않으려면 우리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을 담고 상대방과 교감하려는 자세가 필요하겠죠. 할머니와의 소통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마레가 보여준 대화와 소통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겠구요.

죽음은 새로운 시작과 탄생을 예견하는 삶의 일부

웃음을 머금고 영면에 드신 마레의 할아버지, 마지막 인사를 위해 남편의 머리칼을 쓰다듬고는 다시 입을 연 마레의 할머니. 오랜 반려자와의 이별을 직면한 노부부의 모습에서 죽음이란 것이 단지 슬픈 이별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 보러 힘든 몸을 끌고 온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 할아버지의 마지막 표정을 웃음 짓게 할 수 있었을테고, 먼 길 떠나는 오랜 삶의 친구에게 잘 가라는 인사 한마디를 위해 다시 말문을 연 할머니의 남은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 이 모든 것들이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하고 하나 하나 배워 가고 있는 마레에겐 소중한 가르침이자 선물일테니 말입니다.


그림이 너무나 아름다운 “마레에게 일어난 일”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은 몇살 정도면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다섯살배기 저희 딸아이를 데리고 확인해 봤습니다. 아직 글자를 모르기때문에 좋은 실험 대상이 될 듯 했습니다. 처음엔 ‘이 책 그림 참 예쁘지?’ 하면서 그림을 한 장 한 장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림 보면서 아빠에게 설명을 해 달라고 했습니다. 딸아이가 혼자서 뒤적뒤적 하면서 한동안 보고 난 후 아빠에게 들려 준 이야기… 궁금하시죠? ^^(참고로 저희 딸아이는 친가 외가 할아버지 할머니들 모두 건강하셔서 이 그림책의 내용을 어떻게 이해할지 저도 무척 궁금했습니다.)

마레에게 일어난 일 마레는 엄마랑 예쁜 나무 아래에서 재미있게 놀았어요. 마레는 엄마한테 그네를 태워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엄마는 아기랑 놀아야 된대요.(요즘 우리 딸내미가 아직 돌도 안지난 네살 터울 동생에게 엄마를 빼앗기고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예요. “아주 머나먼 곳”에 나오는 마틴과 같은 상태랍니다. ^^)
마레에게 일어난 일 엄마가 동생만 예뻐해서 마레는 화가 났어요. 그래서 할머니가 왔어요. 마레랑 할머니는 똑같은 모자를 썼어요.
마레에게 일어난 일 할머니는 마레랑 그네를 탔어요.
마레에게 일어난 일 그래도 마레는 화가 났어요. 할아버지가 누나는 그러면 안된다고 했어요. 누나는 동생을 잘 데리고 놀아야 되는거래요.
마레에게 일어난 일 할머니는 그래도 마레 편이예요. 할머니는 동생보다 마레가 더 좋대요.
마레에게 일어난 일 마레는 그네를 타다가 엄마가 보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혼자 앉아서 울었어요. 할머니가 엄마가 금방 올거라고 말해줬어요.
마레에게 일어난 일 할머니가 소파에서 잠을 자요. 마레는 할머니랑 놀고 싶어서 장난감도 갖고 오고 간식도 가져 왔어요.
마레에게 일어난 일 할머니가 놀아 주지 않아서 마레는 혼자 엄마랑 동생에게 줄 선물을 만들었어요.
마레에게 일어난 일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할아버지를 할머니로 착각한 건 그럴 수 있겠다 싶은데, 이 그림을 보고 ‘할머니가 죽었어’라고 말하는 아이를 보며 의외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요녀석이 죽는게 뭔질 아나? 이 그림을 보며 ‘아파’도 아니고 ‘죽었어’라고 하니 말입니다.)
마레에게 일어난 일 할머니가 자꾸 하늘나라로 가려고 해서 마레가 가지 말라고 했어요. 다람쥐가 전화를 했어요.(다람쥐가 뭐라고 전화했냐고 물어봤다가 딸내미한테 무시당했습니다. 아무 대답 안해 주고 멍하니 저만 바라 보더라구요 ^^)
마레에게 일어난 일 하늘나라 간호사들이 할머니를 못가게 붙잡으려고 해서 마레는 할머니를 데리고 도망쳤어요. 더 빨리 도망 갈 수 있게 다람쥐가 도와줬어요.(나의 DNA를 나눠 가진 아이가 맞구나 하는 딸바보 아빠의 감동의 순간입니다. 저도 이 그림 보면서 간호사들이 ‘백의의 천사’보다는 ‘생체 실험’을 하는 사람들 같다는 느낌 들었었거든요.)
마레에게 일어난 일 할머니를 구해 오는 사이 할아버지가 하늘나라에 가버렸어요. 할머니를 구해와서 마레는 기분이 좋은데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하늘나라에 가서 슬퍼요. 그래서 마레랑 다람쥐도 슬퍼졌어요.(사실 딸내미가 들려 준 이야기 속에서 매 장면마다 다람쥐에 대한 서술이 빠지지 않았었습니다. 거의 모든 그림마다 등장하는 다람쥐에 대해서 아이는 무언가 의미를 찾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비슷한 느낌의 그림책

오른발, 왼발

아름다운 이별


Mr. 고릴라

Mr. 고릴라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 덕분에 그림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앤서니 브라운은 아닙니다. ^^ 이제 곧 여섯 살이 될 딸아이와 막 한 돌 지난 아들놈을 둔 만으로 30대 아빠입니다 ^^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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