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 : 2014/05/29
■ 마지막 업데이트 : 2022/08/01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

우순교 | 그림 조은영 | 웅진주니어
(발행 : 2012/12/20)


오늘 소개하는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는 국악인 ‘황병기’의 음악과 가야금에 대한 열정을 담은 그림책입니다. 가야금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서부터 숲, 침향무, 미궁 등 그의 대표 작품들이 만들어진 과정과 예술인으로서 열정으로 가득한 그의 삶을 선이 굵은 그림으로 아주 멋지게 담아냈습니다. 이 책의 일러스트를 맡은 조은영 작가는 BIB 그랑프리를 수상한(“달려 토토”) 일러스트레이터답게 굵고 묵직한 선과 강한 색채의 대비로 ‘황병기’의 가야금 외길 인생을 강렬하게 표현해냈습니다.

‘황병기’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가야금을 시작한 것은 중학교 3학년때부터지만 그의 학력은 음악과는 동떨어져 있습니다. 재동초등학교, 경기중학교,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습니다. 학부모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엘리트코스를 밟은 그가 당시 천시하던 국악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것 자체가 센세이션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길을 버리고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예술인 ‘황병기’. 그를 빼고 우리 국악을 말하기는 쉽지 않을뿐더러 ‘황병기’의 삶이 바로 국악이요, 그의 국악 인생이 바로 우리나라 국악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참조 : “우리 전통 예인 백사람”(이규원, 정범태 / 현암사 / 2006))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

가야금 타는 일은 도를 닦는 일과 비슷했어요.
등을 꼿꼿이 펴고 앉아 온몸의 기운을 손끝에 실어야 했지요.
그리고서 오른손으로 현을 퉁기면
명주실에서 ‘둥!’하고 맑고 부드러운 소리가 울려 나왔어요.
왼손으로 그 현을 살며시 흔들면
흘러 나온 가야금 소리가 살며시 떨렸어요.

열다섯살때 처음 가야금 연주를 듣게 되고 그날 이후로 가야금에 빠져들기 시작한 소년 ‘황병기’. 처음 듣는 가야금 연주에 반하고, 온몸의 기운을 손끝에 실어서 가야금의 현을 퉁기는 순간 온몸을 타고 흐르는 전율로 인해 가야금에 미치듯 빠져들수 밖에 없었던 순간을 표현한 장면이에요. 한 소년의 삶의 터닝 포인트, 그 소년의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한 예술에 대한 열망뿐만 아니라 음악이 지닌 박자와 리듬감까지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그림입니다.

이번엔 ‘황병기’의 작품들을 표현한 그림들을 한번 살펴 볼께요. ‘숲’은 그의 첫 창작곡입니다. 박두진의 ‘청산도’라는 시를 가야금 연주로 표현한 곡이라고 해요.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
숱한 나무들 무성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
둥둥 산을 넘어 흰 구름 건넌 자리 씻기는 하늘
사슴도 안 오고 바람도 안불고
넘엇골 골짜기서 울어오는 뻐꾸기
산아 푸른 산아
네 가슴 향기로운 풀밭에 엎드리면 나는 가슴이 울어라

그의 연주를 들으며 그림을 보고 있자니 답답하고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 숲의 품에 안겨 실컷 울고 싶었던 시인 박두진의 절망과 희망의 교착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 합니다. 이게 바로 음악과 그림, 예술의 힘인가 봅니다.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

옛 신라 사람들의 음악을 되살려 보고 싶었던 ‘황병기’는 신라시대의 고찰 상원사를 거닐다 영감을 얻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상원사 동종에는 비천상이 새겨져 있는데요, 악기를 연주하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들의 모습, 그 경쾌한 몸짓과 휘날리는 날개옷을 보자 ‘황병기’의 귓가에 하늘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것 같았어요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음악이 가야금 연주자라면 누구나 도전하고싶어하는 바로 ‘침향무’란 작품이라고 합니다. 불상 앞에서 그윽한 향을 피우고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는 신라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곡이라고 해요. 가야금 현을 타고 구도의 춤을 추는 그림을 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향이 피어오르고 그의 가야금 연주가 들려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요.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

‘황병기’는 전통만을 고집하지 않고 늘 새로운 음악을 추구했다고 해요. 첼로의 활로 가야금을 연주하는 독특한 연주법으로 지금까지 아무도 내지 못했던 소리와 음들을 표현함으로써 여지껏 듣던 음악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음악 ‘미궁’을 발표합니다. 오래된 악기로 가장 현대적인 음악을 만들어낸 ‘황병기’에게 사람들은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습니다.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

큰 수술을 한 후 병원에 입원중인 상태에서도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은 멈출줄 모릅니다. 병실에서 내다 본 창밖에 펼쳐진 풍경들, 시계탑과 차량불빛들을 바라보면서 반딧불이의 춤과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를 떠올리며 그는 미소를 짓습니다.

“음악을 만들어야겠군”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음악이 있는 한 그에게서 웃음을 앗아갈 수는 없나봅니다. 이 웃음은 어떤 의미일가요? 과연 무엇이 그를 웃게 만드는걸까요?

논어에 보면 공자가 이런 말을 합니다. 제가 평소에 좋아하는 글인데요.

子曰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자왈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잘 아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을 당하지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을 당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일에 대한 지식이 깊은 사람도 아니고, 그 일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 일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큰 수술 후에도 새로운 음악을 만들 생각에 기뻐서 웃을 수 있는 ‘황병기’, 그야말로 음악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던거죠. 그래서 이렇게 활짝 웃을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

걷다 보니 지나온 자취는 길이 되었고

황병기는 지금도 그 길을 걷고 있어요.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과 글귀가 참 인상적입니다. 가야금을 연주하는 ‘황병기’와 음악, 그리고 그 음악이 울려 퍼지는 세상이 모두 하나가 된 한 순간을 담고 있는 듯한 그림이에요. ‘황병기’도 가야금도 청중도 없이 오로지 음악만이 존재하는 바로 그 순간… ‘걷다 보니 지나온 자취는 길이 되었고, ‘황병기’는 지금도 그 길을 걷고 있다’는 글과 참 잘 어우러지죠?

“지금까지 걸어 오신 국악인생을 돌이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때가 언제인가요?”
누군가 물어보면 황병기는 대답해요.

“지금이지요. 저는 늘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

삶의 어느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 라고… 바로 이 그림책의 제목입니다. 삶에 대한 열정, 음악에 대한 열정,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라는 명인의 가르침입니다.


※ ‘아이들에게 조금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 먹었습니다. 그림만으로도 ‘황병기’의 삶에 대한 열정이 아이들의 가슴에 전해지기에 충분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림을 통한 교감, 아마도 그림책이 갖는 매력 중 한가지겠죠. 아이들에게 ‘황병기’의 멋드러진 가야금 연주 들려주면서 꼭 함께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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