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이 나만 피해갈 리 없지

불행이 나만 피해갈 리 없지

정미진 | 그림 김소라 | atnoonbooks
(발행 : 2019/11/12)

2019 가온빛 추천 BEST 101 선정작


오늘 소개할 책은 첫 번째 그림책 “있잖아, 누구씨” 이후로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을 수년간 꾸준히 만들어오고 있는 atnoonbooks의 신작 “불행이 나만 피해갈 리 없지”입니다. 5년 전 출판사의 첫 번째 그림책을 함께 작업했던 정미진, 김소라 두 작가가 다시 의기투합해 만들었습니다.

퍽퍽한 삶, 의지할 곳 없는 세상, 그 속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며 순간순간 맛보는 외로움과 좌절…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자화상 같은 그림책 “불행이 나만 피해갈 리 없지”, 그 결말은 새드 엔딩일까요? 아니면 해피 엔딩일까요?

불행이 나만 피해갈 리 없지

이제 막 집을 나섰을 뿐인데 불행은 기다렸다는 듯 나에게 달겨들기 시작합니다. 신발에 들러붙은 껌딱지, 하마터면  응급실 신세를 질뻔했을런지도 모를 난데 없는 화분 폭격, 그리고 비둘기들의 똥 세례.

어느 날 불행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걸 알게 돼.
생각보다 불행은 자주 예상치 못하게 상상치 못한 방법으로
어느 때나 어느 순간이나 어느 장소에서나
만나게 돼.

살다보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다 있게 마련이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다 그런거라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불행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건 존재 자체보다는 찾아오는 절묘한 타이밍 때문 아닐까요? 크리스마스가 바로 코 앞인데 이별 통보를 받는다거나, 모처럼 받은 이직 제안을 두고 한동안 고민한 끝에 그래도 그동안 정든 내 직장 내 동료들이다 싶어 제안을 거절하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하자 맘 먹으며 출근한 날 해고를 당한다거나, 입사 이후 처음으로 호텔 뷔페에서 송년회 하기로 한 날 장염에 걸린다거나 하는 것처럼… 불행은 늘 지금만큼은 안 돼! 하는 시점에 찾아온다는, 그래서 더 아프다는…

불행이 나만 피해갈 리 없지

불행의 얄미운 타이밍보다 더 우리를 아프게 하는 건 이 모든 게 내 탓인가 싶을만큼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불행의 시작과 끝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사실. 1년 365일 단 한 하루도 쉰 적 없던 카페의 문이 내가 모처럼 찾아간 날만 골라서 굳게 닫혀 있고, 나만 알고 있으라며 친구 놈이 알려준 대박 예감 주식을 잔뜩 매입하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려는데 주변 사방에 온통 그 주식 샀네 팔았네 하는 얘기들 뿐이고, 오래도록 자금을 모으고 나름 치밀하게 준비해서 창업을 하고보니 우리 가게 옆으로 한 집 건너 하나씩 나랑 똑같은 가게들 뿐이고…

마치 내가 갔기 때문에 카페 문을 닫고, 내가 샀기 때문에 주가가 떨어지고, 내가 창업했기 때문에 그 업종이 성장기를 지나 침체기에 빠져드는 것 같은 기분…

불행이 나만 피해갈 리 없지

하지만 무엇보다도 더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건 바로 나만 혼자인 것 같고, 이 세상에 나 빼고는 모두 행복해 보이는 것 같은 기분. 따사로운 조명 아래 얼굴 가득 웃음 머금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 나누는 모습들을 불빛 한 줄기 없이 어두컴컴한 곳에 홀로 서서 바라보는 그 씁쓸한 기분.

불행이 나만 피해갈 리 없지

그래도,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내 삶은 왜 이 모양이지… 내 안의 저 깊고 어두운 바닥으로 끝도 없이 가라앉기만 하는 그 순간 내 곁을 말없이 지켜주고 바라봐주고 다독거려주는 누군가가 있기에 또 오늘 하루를 견뎌내고 또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래.
행운도 나만 피해갈 리 없지.

오늘 하루 종일 먼 발치에서 나를 따라다니며 지켜주던(?) 고양이 한 마리가 가장 힘든 순간 살며시 다가와 나를 다독입니다. 덕분에 나는 다시 힘을 내서 내일의 희망을 꿈꿔봅니다.


그림책 “불행이 나만 피해갈 리 없지”를 보면서 문득 예전에 봤던 다큐 영화 한 편을 떠올립니다. 미국의 한 무명가수의 삶을 담은 <서칭 포 슈가맨(Searching for Sugar Man)>입니다.

1970년 <Cold Fact>라는 앨범을 낸 로드리게즈(Sixto Rodriguez)는 음반 판매 6장이라는 기록과 함께 사라집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장의 음반이 관광객에 의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전해졌고 이후 25년간 남아공 사람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습니다. 미국에서조차 그 존재를 알지 못하는 가수의 앨범이 이 세상의 반대편에서 20년이 넘도록 불법 복제된 채 인기를 끌고, 정작 그 주인공은 그 사실을 모른 채 수십년을 살아간다니… 우리 인생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지구 반대편에서 자신에게 열광하는 수많은 팬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무명으로 잊혀져간 로드리게즈의 삶이 불행해 보이기만 하는데… 과연 로드리게즈는 자신의 팬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과연 그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을 버리고 유명세를 찾아갈까요? 여러분이 만약 로드리게즈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궁금하신 분은 영화를 꼭 한 번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여기에 모두 이야기할 수 없지만 영화에 나오는 멘트 그대로 마법같은 삶을 살아온 한 뮤지션을 지켜보며 인생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이 인호

이 인호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 수다에 체력 고갈되어가는 아내를 18년째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남편. 한때 아내가 쓴 딸아이 육아일기에 '396개월 남아'로 등장했었던 그 남아. 그림책 좋아하는 542개월 남아로 폭풍 성장 중 ^^ | 2015년 7월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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