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

(원제 : The Old Woman Who Named Things)
신시아 라일런트 | 그림 캐스린 브라운 | 옮김 신형건 | 보물창고
(발행 : 2004/11/25)

※ 1996년 초판 출간


이름 짓기를 좋아하는 할머니가 있었어요. 할머니는 자신의 낡은 자가용에게 ‘베치’란 이름을 붙여 주었고 헌 의자는 ‘프레드’, 침대는 ‘로잰느’, 오랜 시간 함께 지내온 집에게는 ‘프랭클린’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어요. 다정하게 이름을 부를 친구 하나 없이 외로운 노인이 되는 게 견딜 수 없었던 할머니는 자신보다 오래 살 수 있는 것들에게만 이름을 지어 주었어요.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

날마다 할머니는 로잰느(침대)에서 일어나 프레드(의자)에 앉아 코코아를 마시고 프랭클린(집) 밖으로 나와 베치(자가용)를 타고 편지를 찾으러 우체국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할머니를 기다리는 것은 세금 고지서뿐. 할머니는 한 번도 편지를 받은 적이 없었어요. 할머니보다 더 오래 사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으니까요.

은빛 머리를 멋지게 말아 올리고 통바지에 카우보이 신발을 신고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고 커다란 푸른색 세단을 운전하는 멋쟁이 할머니. 자신의 사물들에게 부여한 고유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며 그들보다 오래 살 걱정을 하지 않기에 스스로 무척 행복하다 생각하지만 그 어떤 것과도 상호 교감을 나눌 수 없는 할머니의 삶은 그저 외로워 보입니다. 그곳에는 헤어짐이 두려워 세상과 관계 맺기를 거부한 할머니의 독백만 존재할 뿐이에요.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에게 순둥이 갈색 개 한 마리가 찾아옵니다. 할머니는 날마다 먹을거리를 챙겨주고는 개를 돌려보냈어요. 잠자리에 들기 전 착하고 예쁜  갈색 개가 떠올랐지만 할머니 곁에 머물게 할 수는 없었어요. 할머니 곁에 머물게 하려면 개에게 이름을 지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갈색 개는 프랭클린이나 프레드, 베치나 로잰느 그리고 할머니 자신보다 오래 살지 못할 게 분명했어요. 할머니는 친구들보다 더 오래 살아서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렵고 싫었으니까요.

이름은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며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라 생각하는 할머니는 떠돌이 갈색 개에게 마음이 가면서도 곁에 두지 않고 자꾸만 돌려보냅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먼저 떠나보낸 후 혼자 남는 일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알고 있기에…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

그러던 어느 날 갈색 개가 할머니를 찾아오지 않았어요.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기에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생각했지만 정작 갈색 개가 찾아오지 않자 할머니는 불안해졌어요. 목걸이도 이름도 없는 갈색 개를 찾으러 할머니는 떠돌이 개를 보호하는 사육장으로 달려갑니다. 사육사가 찾는 개의 이름을 물어보자 할머니는 잠시 머뭇거렸어요. 그리고 그동안 자신의 곁을 떠나간 친구들의 얼굴과 이름을 떠올리면서 할머니는 생각합니다. 이렇게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던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가를.

“우리 개 이름은 ‘러키’랍니다. ‘행운’이라는 뜻이 담긴 이름이죠.”

떠돌이 개들 사이 러키를 찾으셨나요? 울타리 너머 할머니의 파란색 자동차 베치를 알아보고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러키, 그런 러키를 알아본 듯 베치가 활짝 웃고 있습니다. 순둥이 갈색 개가 ‘러키’라는 이름을 부여받으며 할머니에게 진정한 의미를 가진 존재로 거듭나는 순간입니다.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

할머니와 러키가 함께 집으로 돌아갑니다.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할머니와 영원히 머무르게 될 집을 바라보는 러키, 푸른색 베치가 두 날개를 펼친 듯 신나게 달려가고 있어요. 날아갈 듯 신나게 달리는 베치의 모습이 할머니의 마음 같습니다. 그들이 함께 신나게 달려오는 모습을 멀리서 프랭클린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맑은 수채화풍으로 그려낸 캐스린 브라운의 그림에 삶의 의미를 서정적으로 담아낸 신시아 라일런트의 글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그림책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 마음은 알고 있어요. 볼 수 없다고 해서 영원히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님을, 모든 관계는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속표지에 할머니가 자신의 사물 중 유일하게 이름 붙여주지 않은 낡은 나무 문이 살짝 열려있는 장면이 나와요. 돌쩌귀에 녹이 잔뜩 슨 출입문이 오래가지 않을 거라 생각해 할머니는 집안 사물들 중 유일하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문은 항상 살짝 열려있어요. 그렇게 살짝 열려있는 문이 마치 할머니의 마음처럼 보입니다. 이별이 두려워 스스로 관계의 고립을 선택했지만 할머니 마음 한 구석은 늘 세상을 향해 살짝 열려있었음을 암시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살짝 열려있는 그 문으로 러키가 들어오게 되지요.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

캐스린 브라운은 할머니가 이름 붙인 사물들에게 표정을 그려 넣었어요. 할머니의 자가용인 베치는 양쪽 헤드라이트가 두 눈처럼 보이고 라디에이터 그릴은 입처럼 보여요. 프래드라 이름 붙여진 의자는 등받이 단추가 눈과 입으로 보이고 양쪽 팔걸이 끝이 마치 손가락처럼 보입니다. 로잰느란 이름의 침대는 철제 프레임으로 묘하게 표정이 살아있는 것처럼 표현했어요. 프랭클린으로 불리는 집은 이층 창문이 두 눈처럼 출입 문은 입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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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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