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글/그림 지우 | 달그림
(발행 : 2019/10/31)

2019 가온빛 추천 BEST 101 선정작


한국인이 사는 집이라면 어느 집이라도 하나씩은 있는 그것, 용도가 아주 분명한 그것! 그래서 이 책을 보자마자 와아~ 하는 탄성과 함께 웃음이 터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뭔가 찌뿌둥하고 어딘가 근질근질한 날이면 어김없이 때가 찾아온 것이죠. 때를 밀어야 할 때! 그때 절대 빠뜨리지 말아야 할 그것… 이태리타월입니다.

이태리타월의 촉감까지 살린 그림책 커버, 표지 그림에 마침맞게 그림책 제목도 “때”입니다. 온탕에서 푹 불렸다 살살 밀면 슬슬 밀려나오는 바로 그 때, 또는 좋은 기회나 알맞은 시기를 의미하는 바로 그 때. 지우 작가는 이 그림책에서 의미하는 ‘때’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때’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피부의 분비물과 먼지 따위가 섞이어 생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을 뜻합니다. 이 그림책의 제목 또한 모든 사람의 몸에는 때가 있듯, 원하는 바를 이룰 자신의 때가 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때

때

회색 머리 뽀글 파마머리의 중년 여성이 길을 걷고 있어요. 이태리타월의 검은 줄무늬 같은 길을 걸어 그녀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목욕탕.

때가 되었군. 깨끗해질 때

연두색 이태리타월의 독백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잘 불어난 때를 벗겨내기 위해 부인 발끝에서 무릎으로, 목으로 겨드랑이로 미끄러질 듯 요리조리 움직이며 몸에 붙어있던 때를 밀어내는 이태리타월. 때수건이 지나친 자리는 어김없이 국수 가락 같은 길쭉길쭉한 회색빛 때가 쭈욱쭈욱 밀려나옵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고 개운해지는 바로 그 느낌.

때 밀기의 황홀경은 맛본 자만이 알 수 있죠. 너무 밀어댄 나머지 벌겋게 달아올라 후끈후끈 난감한 날도 있지만 한 번 맛보면 절대 끊을 수 없죠. 방금 전 부인의 만족스러운 얼굴 표정이 그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습니다.

때

때

쫘악 쭈욱 쓱싹 쓰윽싹 씩씩 쓱쓱 싹싹 썩썩 툭툭 팡팡 벅벅 버버벅… 때를 밀 때 나오는 다양한 소리들.

지우 작가는 온몸 구석구석 돌고 돌아 때를 밀어내는 이태리타월의 모습을 아주 리드미컬하게 그려냈어요. 글자들이 부인의 몸을 따라 또는 이태리타월의 방향을 따라 다양한 방향으로 재미있게 움직이며 보는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때

때

벅벅 버버벅.
보이지 않아도 다 때가 있어.
누구나 때가 있지.

온몸 구석구석 때를 밀고 차분히 정리를 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 부인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 보입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요? 참고 기다려야 할 때, 거침없이 밀어붙여야 할 때, 잠시 쉬어가야 할 때… 때를 밀 때처럼요. 언제 밀어야 할지, 어떤 방식으로 밀어야 하는지. 언제 뒤집고 언제 헹구어야 할지, 우리는 그때를 기다립니다. 이태리타월처럼 성실하고 묵묵하게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면서.

부자든 가난한 자든 준비된 자든 아니든 누구나 다 똑같아지는 그곳, 목욕탕이란 공간 안에서 때를 소재로 말이 가진 묘미를 살려 유쾌하고 따뜻하게 풀어낸 그림책 “때”, 몸의 때를 미련 없이 밀어내듯 그림책을 읽으며 마음에 쌓인 묵은 때를 부드럽게 삭삭삭 밀어냅니다. 그렇게 개운하고 말끔한 마음으로 다시 올 한 해를 시작합니다. 목욕탕에서 나왔을 때처럼 가볍고 개운한 마음으로!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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