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한 토끼

납작한 토끼

(원제 : Flata Kaninin)
글/그림 바두르 오스카르손 | 옮김 권루시안 | 진선아이
(발행 : 2019/06/18)


“납작한 토끼”란 어떤 토끼일까요? 종이 위에 그린 토끼일까, 외모가 좀 별난 토끼일까 생각하며 그림책을 펼쳐보니 의외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납작한 토끼는 도로 위에 납작하게 눌어붙은 채 죽음을 맞은 토끼예요. 마침 길을 가던 개와 쥐가 납작한 토끼를 보게 되었죠.

이 그림책은 어린이 그림책에서 흔히 다루지 않는 ‘죽음’을 다루고 있어요. 어린이와 죽음의 조합은 어딘가 낯설게 느껴집니다. 무겁고 어두운 느낌으로 가득한 죽음과 생명력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어린이의 조합이라니… “납작한 토끼”에 담긴 죽음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그려져 있을까요?

납작한 토끼

죽은 토끼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던 개와 쥐는 아무래도 토끼를 옮겨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둘은 토끼를 어디로 옮겨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어요. 납작해진 토끼를 어디로 옮겨야 할까요? 혹시라도 누군가 토끼를 발견하고 먹어 버리면 어쩌죠? 토끼네 집 앞에 옮겨 놓는 걸 누군가 보면 개와 쥐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개는 깊은 딜레마에 빠져버렸어요.

이제 개는 너무 깊이 생각하느라 개의 머리에 귀를 대면
머리를 쥐어짜는 소리마저 들릴 것 같았어요.

도로 위에 납작해진 채 누워있는 토끼에게 뭔가 이상이 생겼음을 어렴풋하게나마 감지하고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개와 쥐의 행동은 어린아이처럼 어딘가 좀 어설퍼 보여요. 죽은 새나 벌레 앞에서 걱정과 함께 호기심을 보이는 아이들처럼요.

납작한 토끼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개가 쥐에게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했어요. 둘은 토끼를 조심스럽게 들어 개의 집으로 옮겼습니다.

죽음을 너무 무겁게 다루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도일까요? 분명 토끼는 죽었는데 그 모습은 좀 우스꽝스러워요. 기다란 귀와 팔다리를 쫘악 벌리고 도로에 누워있는 모습이며 강조된 토끼의 앞니까지 말이죠. 그 모습은 오래전 TV에서 보았던 딱따구리나 톰과 제리 같은 만화에서 바위에 깔리거나 지나가는 차에 치여 납작해졌다 잠시 후 ‘뾱!’하는 소리와 함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던 캐릭터를 연상시켜요. 금방이라도 뾱! 하고 통통하게 살이 찬 모습으로 되살아날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예요. 하지만 이 그림책 속에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아요. 납작한 토끼는 그대로 납작하게 죽어있을 뿐.

납작한 토끼

개와 쥐는 무언가를 하느라 밤을 샜어요. 밤새 도록 둘의 이야기 소리, 망치질 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아무도 알지 못했어요. 어둠에 잠긴 작은 집, 가냘픈 초승달만이 작은 집을 비추고 있어요. 둘은 밤새도록 무얼한 걸까요?

납작한 토끼

개와 쥐가 밤새 만든 것은 토끼를 하늘로 날려보낼 커다란 연이었어요.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여져 연에 꼭 붙어있는 토끼, 둘은 납작한 토끼를 붙여놓은 연을 들고 함께 공원으로 갔어요.

연날리기는 그리 쉽지 않아요.
바람이 불어야 하는데, 너무 세게 불어도 안 돼요.
게다가 엄청 빨리 달려야 하는데,
달리는 동안 연을 잘 지켜보는 일도 잊으면 안 돼요.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서툴지만 세심하게 살피고 주의한 끝에 마흔두 번이나 뛰어다니고서야 둘은 겨우 연을 하늘로 띄울 수 있었어요. 높이높이 날아올라 토끼는 거의 보이지 않았어요. 둘은 연을 계속 바라보았어요.

납작한 토끼

“토끼가 좋아하고 있을까?” 마침내 쥐가 물었어요.
눈으로는 계속 연을 바라보면서요.
개는 저 위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까 상상해 보았어요.
“글쎄…” 개는 느릿느릿 대답했어요. “나도 모르겠어…”

떠난 이도 보내는 이도 끝내 서로의 마음을 알 순 없어요. 그저 나름의 예를 갖춰 보내줬을 뿐. 하늘나라로 떠난 토끼가 내려다보는 것처럼 위에서 내려다 본 앵글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그림책을 다 읽고 나면 앞뒤 면지에서 멀리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개와 쥐의 모습이 다시 보입니다. 하늘로 날려보낸 토끼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 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죽음을 애도하고 있어요.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죽음을 아이들은 어떻게 이해할까요? 아이들에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하지만 아이들 역시 일상에서 죽음을 접하며 살아갑니다. 함께 살던 고양이나 강아지 혹은 작은 물고기가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때론 가까운 친구나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기도 하죠. 작가 바두르 오스카르손은 추상적 개념인 죽음을 토끼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떠나보내는 개와 쥐의 모습으로 잔잔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은 이들의 관점에서 죽음을 담담하게 그려낸 그림책 “납작한 토끼”, 심플하고 단순하게 묘사한 그림이 무겁고 심오한 이야기와 대비를 이루며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 함께 읽어 보세요 : 잘 가, 작은 새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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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책
2023/07/14 08:07

아이들은 죽음도 삶의 한 일부분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입니다. 그 개념을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그냥 그렇게 받아 들여요. 어른들의 호들갑이 어떤 때는 방해가 될 정도로 담담해요. 오늘이 죽어야 내일이 있고 해가 죽어야 달이 태어나는 것처럼 그래요.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자연 속에는 오늘도 수많은 삶과 죽음이 뒤섞여 있고 아이들은 그런 모든 것들을 나름대로 받아 들이면서 살아가는 것 같아요. 살아있는 것에도 죽어 있는 것에도 똑같이 다정하게 “안녕”이라고 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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