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일 : 2014/06/16
■ 업데이트 : 2016/05/19


나무를 그리는 사람
책표지 : 씨드북

나무를 그리는 사람(원제 : L’homme Qui Dessinait Les Arbres)

글/그림 프레데릭 망소, 옮김 권지현, 씨드북


나무를 그리는 사람

나무를 그리는 사람

프랑시스 아저씨는 오늘도 연필과 지우개, 그리고 커다란 도화지를 꺼내들고 일터로 향합니다. 아저씨의 일터는 과연 어떤 곳일까요? 그곳은 바로 숲입니다. 700년이 넘는 기나긴 시간동안 대자연의 순환 속에서 만들어진 원시림 속에서 프랑시스 아저씨는 꽃과 나무를 그리며 숲과 함께 살아가는 식물학자입니다.

아저씨는 숲의 일부이고, 숲은 아저씨에게 삶의 전부입니다. 마호가니 나무에 걸터 앉아 나무뿌리, 나무껍질, 나뭇가지, 나무덩굴, 나무 이끼 등 어느 것 하나 빠뜨리지 않고 그리고 있는 아저씨에게 나비 한마리가 와서 말을 겁니다. 이젠 붉은 무화과나무를 그리러 갈 차례라고 말이죠. 숲을 이루는 풀과 꽃, 나무들, 온갖 벌레와 동물들과 한데 어우러져 숲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프랑시스 아저씨를 바라 보고 있으면 한없이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나무를 그리는 사람

숲의 일부로 살아가는 프랑시스 아저씨는 숲을 이루는 나무와 온갖 생명들에게 폐가 될까봐 자동차처럼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탈 것은 아예 이용하지를 않습니다. 가까운 곳은 걸어서, 조금 먼 곳은 자전거를 타고, 그리고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엔 열기구를 타고 자신이 그릴 나무를 찾아 나섭니다.

나무를 그리는 사람

모아비나무를 그리기 위해 열기구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아 오른 아저씨의 시야에 오랜 자연의 순환 끝에 완성된 대자연의 위대한 풍광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발밑으로 펼쳐진 숲을 보고 있노라니
웅장한 모아비나무가 한눈에 들어왔지요.
노랗게 물든 모아비나무를 보고 아저씨는 가슴이 벅찼어요.
모아비나무를 그리면 도화지가 꽉 찰 거예요.

숲을 지키는 정령처럼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말없이 서 있는 모아비나무를 보며 프랑시스 아저씨의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건강한 숲, 생명이 넘치는 숲이 우리가 사는 지구에 맑은 공기와 끝없는 생동감을 불어 넣어주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감격때문이겠죠.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고막이 찢어질 듯한 기계 소리와 나무들이 타들어가는 고약한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숲을 시커멓게 태우는 화염 속에서 안타까와 하던 아저씨, 결국엔 정신을 잃고 열기구에서 떨어지고 맙니다.

나무를 그리는 사람

모든 게 온통 까맸어요.
하늘도 까맣고, 땅도 까맣고, 이끼도 까맣고, 나무줄기도 까맣고,
풀도, 나뭇가지도, 나뭇잎도 다 까매요.
숨 쉬는 공기도 까만 것 같았어요.
재와 그을음을 잔뜩 머금고 있었거든요.

아저씨는 열기구에서 떨어지면서도 나무를 그리던 연필과 지우개, 커다란 도화지는 놓치지 않았어요. 모든 것이 타버리고 죽음으로 뒤덮여 버린 숲 속에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아저씨와 연필, 지우개, 도화지, 그리고 모아비나무뿐이었어요. 절망에 빠진 아저씨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리는 바로 그 순간 모아비나무도 함께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나무를 그리는 사람

그런데, 모아비나무의 눈물은 절망으로 가득한 프랑시스 아저씨의 눈물과는 조금 달랐어요.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처럼
모아비나무의 눈물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졌지요.
땅에는 어느새 노랗고 빨간 양탄자가 깔렸어요.
이젠 공기도 깨끗해졌지요.

슬퍼하던 아저씨의 눈물이 기쁨의 눈물로 변했습니다.

프랑시스 아저씨는 불타버린 숲에 망연자실 절망에 빠져버리고 말았지만, 숲은 포기하지 않았던겁니다. 유일하게 남은 모아비나무가 자신의 꽃씨를 통해 숲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기 시작한거죠. 인간들이 계속해서 나무를 베어내고 불을 질러가며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훼손함에도 불구하고 숲은 또 다시 새로운 순환을 통해 자신들의 생명을 이어 나갈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위협하는 우리 인간들에게도 그 생명력을 나눠주기까지 합니다.

나무를 그리는 사람

프랑시스 아저씨는 열기구에서 떨어지면서도 놓치지 않았던 연필과 지우개, 도화지를 다시 들고 일어납니다. 그리고 모아비나무의 긴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나무를 그리는 것이야말로 프랑시스 아저씨가 나무와 숲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요.


이 그림책을 활용한 놀이 : 헝겊그림 그리기


뤽 자케 – 세편의 다큐멘터리

뤽 자케 영화

뤽 자케 감독의 세편의 다큐멘터리 영화. 왼쪽부터 “La Marché De L’Empereur”(2005), “Le Renard Et L’Enfant”(2007), “Il était une forêt”(2013)입니다. 제목들을 직역해보면 순서대로 ‘황제의 행진’, ‘여우와 아이’, ‘숲이 있었다’ 정도의 뜻입니다. 참고로 첫번째 작품은 2005년에 “펭귄 – 위대한 모험”이란 제목으로 국내에서 개봉되었었습니다.(영화 포스터 출처 : Daum 영화)

동물학 박사 출신의 뤽 자케 감독은 세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세편 모두 동물과 자연에 관한 것입니다.

첫번째 작품인 “펭귄 – 위대한 모험”은 국내 개봉작이어서 손쉽게 구해 보실 수 있습니다. 도서관 자주 이용하시는 분이라면 멀티미디어자료실 한번 찾아 보세요. 이 작품은 MBC에서 2012년 방영했던 “남극의 눈물 3부 펭귄행성과 침입자들“과 같은 소재를 담은 영화입니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남극의 내륙 깊숙한 곳을 향해 펭귄들의 행진이 시작됩니다. 산란을 위한 펭귄의 대이동입니다. 새끼들이 태어나면 수컷은 새끼들을 돌보고 어미들은 먹이를 구하러 바다를 향해 또 다시 긴 여행을 시작합니다. 엄마와 아빠가 교대로 먹이를 갖다주는 것을 다 받아 먹으며 무사히 살아 남은 아기 펭귄들은 자신의 엄마 아빠가 떠나왔던 바다를 향해 또다시 긴 여행을 시작합니다. 무사히 여행을 마친 아기 펭귄들은 어른이 되어 결국엔 자신들이 태어난 곳을 향한 또 한번의 여행을 하게 되겠죠.

두번째 작품 “Le Renard Et L’Enfant”는 국내 개봉이 되지 않아 영화를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숲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아이와 여우, 여우가 조금씩 경계를 풀면서 둘 사이가 점점 가까워지게 되요. 그런데 어느날 늑대들에게 위협받는 여우를 보고 아이는 여우가 걱정되어서 자신의 집에 데려가려고 하죠. 아이는 여우를 위한 마음으로 여우의 목에 목줄을 메고, 자신의 방에서 살게 하려고 하지만 여우에게는 이 작은 배려 역시 자신의 자유를 속박하는 위협일뿐이죠. 뒤늦게 여우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은 여자 아이는 여우를 다시 숲속으로 돌려 보냅니다. 그렇게 둘의 만남은 끝나고 말았지만 여자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 숲을 떠나지 않고 아이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여우가 알려준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늘 가슴속에 담고서 말이죠.

아마도 “여우와 아이”를 통해 뤽 자케 감독과 “나무를 그리는 사람”의 작가 프레데릭 망소의 인연이 시작된 듯 합니다. 뤽 자케의 영화를 원작으로 프레데릭 망소가 그림책을 만들었거든요. 그림책  “여우와 아이”는 국내에도 출간되었으니 한번 읽어 보세요.

세번째 작품 “Il était une forêt”가 바로 오늘 함께 보고 있는 그림책 “나무를 그리는 사람”의 모티브가 된 작품입니다. 뤽 자케는 영화 촬영지로 프레데릭 망소를 초대했고, 프레데릭 망소는 아프리카 가봉으로 건너가 이주일 동안 머물며 프랑시스 아저씨의 실제 모델인 식물학자 프랑시스 알레(Francis Halle)와 그가 그리는 숲을 만나고 돌아와서 “나무를 그리는 사람”을 만들게 됩니다.

※ 영화에서는 그림책의 프랑시스 아저씨처럼 자전거를 타거나 열기구를 타고 숲속을 날아다니는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림책 “나무를 그리는 사람”에서 프랑시스 아저씨가 자전거나 열기구를 타고 다니는 것은 프레데릭 망소의 상상입니다. 하지만 꽤 낭만적이죠 ^^


종이가 아닌 천에 그림을 그리다

프레데릭 망소는 종이가 아닌 천에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해요. “나무를 그리는 사람” 역시 리버티라는 아름다운 견직물에 아라비아 고무를 섞은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리버티 원단이 어떤 느낌인지 한번 보세요)

“나무를 그리는 사람”은 그림을 지면 가득히 채웠기때문에 천에 그린 질감을 확인하기는 좀 어려운데요. 국내에 출간된 프레데릭 망소의 다른 그림책들을 보면 천에 그린 독특한 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파티누의 금실

“파티누의 금실”(글 프랑수아즈 제, 그림 프레데릭 망소, 옮김 염명순, 여유당)이란 작품에 나오는 프레데릭 망소의 그림입니다. 실오라기와 천의 질감이 느껴지시나요? 그림책의 배경인 아프리카에서 사용하는 원단들의 무늬를 그대로 살려서 그림을 그린 덕분에 마치 아프리카의 숲 속 어느 작은 부락에 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여우와 아이

여우와 아이

“여우와 아이”(원작 뤽 자케 영화, 그림 프레데릭 망소, 옮김 허보미, 톡)에 사용된 천은 집에서 보통 벽지로 사용하는 실크 벽지 같은 느낌의 천 위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천에 새겨진 꽃무늬들을 잘 살려서 숲의 일부처럼 표현한 부분이 재미있습니다. 아마도 여우를 보호하기 위해 자기 집에 데려가고 싶어했던 여자아이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던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는 자연과 인간의 삶의 조화를 꿈꾸는 프레데릭 망소의 바램이 담겨 있을 수도 있겠구요.

여하튼, 천 위에 그린 그림은 나름 독특한 분위기가 있어서 그림책을 통해 보는 것만으로는 그 질감을 통한 느낌을 공감하기에 좀 부족한듯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프레데릭 망소의 원화전을 통해 천에 그려진 그림들을 실물로 한번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 그 자체가 힐링

나무를 그리는 사람

처음 소개했던 그림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나무를 그리는 사람”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나무에 걸터앉아 꽃, 나무, 이끼 등 숲 속의 온갖 것들을 하얀 도화지 속에 담아내는 동안 프랑시스 아저씨는 그저 숲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숲의 일부가 되어 있는 그 순간이 프랑시스 아저씨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때입니다. 열대림을 지키는 식물학자, 지구를 지키자, 환경을 생각하자, 아마존의 눈물, 북극곰의 눈물… 이런 것들조차 모두가 무색해지는 순간입니다. 자연에 순응하여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만으로도 빡빡한 도시생활에 찌든 우리들에게는 충분한 힐링이 됩니다.

뤽 자케 감독이 세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어떤 것일까요? “펭귄 – 위대한 모험”“Il était une forêt” 두 작품을 통해 그는 자연의 위대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모 세대의 뒤를 이어 멀고도 먼 여정을 시작하는 새끼 펭귄들의 모습 속에서, 수백년에 걸쳐 그 모습을 이뤄가는 숲의 위대한 순환과 조화를 통해서 그는 “하나의 끝은 또 다른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그리고, “여우와 아이”를 통해 “자연과 친구가 되는 유일한 방법은 자연을 나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자 했던건 아닐까요?

뤽 자케의 영향을 받은 프레데릭 망소 역시 그림책 “나무를 그리는 사람”을 통해 이러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죽어가는 숲 속에서 모아비나무의 눈물꽃들로 다시 새로운 생명을 싹틔우는 숲의 생명력, 나무뿌리에 걸터앉아 숲과 하나가 된 듯 숲의 일부로 존재하며 나무를 그리는 프랑시스 아저씨의 모습을 통해서 말이죠.


이 그림책을 활용한 놀이 : 헝겊그림 그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