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개할망

물개 할망

오미경 | 그림 이명애 | 모래알
(발행 : 2020/01/30)


푸른빛으로 넘실대는 그림책 한 권을 가만히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없이 정화되는 듯 평온해집니다. 제주의 넓고 푸른 바다가 내 품에 담긴 것 같아 왠지 기분이 좋아집니다.

“제주 할망”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유럽 전설인 셀키(Selkie) 전설을 실어 제주 해녀 이야기와 연결을 시키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전설에 의하면 바다표범 모습을 한 요괴의 일종인 셀키는 바다에서 나와 가죽을 벗고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사람들과 어울려 살곤 했다고 해요.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의 그림책  “난 커서 바다표범이 될 거야”도 셀키 전설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할망은 물개야. 용왕 할망 딸이지.
오늘도 나는 할망을 기다려.
호오이- 호오이- 멀리서 숨비소리가 들려
할망이 물속에서 참았던 숨을 내쉬는 소리야. 꼭 새 소리 같지.

저 멀리 연꽃 송이가 동동.
할망이 테왁을 안고 돌아오고 있어.

본문이 펼쳐지면서 이야기가 한 아이의 시점으로 전환됩니다. 프롤로그에서 전한 가죽을 잃어버려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물개 여자의 손녀가 바로 이 아이예요. 가깝고도 먼 바다, 할머니를 기다리는 손녀는 멀리서 들려오는 숨비소리에 할머니가 무사함을 알고 오늘도 마음을 한시름 놓습니다.

물개 할망

푸른 바다를 건너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오고 있어요. 바다에 비친 구름때문에 바다가 하늘처럼 보입니다. 마치 할머니가 하늘을 헤엄쳐 돌아오는 듯 표현한 장면이 엄숙하면서도 근사해 신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배 안 고프냐 묻는 손녀에게 바람을 많이 먹어 괜찮다는 할머니, 손녀의 걱정에 제주도 사투리로 답하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정겹습니다.

물개 할망

할머니가 망사리 가득 건져 올린 건 푸른 바다입니다. 감탄하는 손녀에게 할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게 다 용왕님이 주신 거주. 할망은 용왕님 딸이난.”

아이는 할머니의 멋진 솜씨와 그 보물을 건네준 용왕의 맘씨에 감탄하며 할머니를 졸랐어요. 자신도 꼭 바다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지만 할머니는 아직 더 커야 한다면서 웃기만 해요.

모든 것을 내어주는 착하고 고마운 바다지만 어떤 날엔 모든 것을 삼킬 듯 두렵고 무서운 바다, 아이는 비바람 부는 날 바다로 나간 할머니를 기다리며 마음 졸입니다. 할머니가 물개가 돼서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어쩔까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거려요.

물개 할망

아이에게도 드디어 그날이 찾아왔어요. 생일 선물로 할머니에게 물개 옷을 선물 받아 아기 바당에서 연습한 아이가 드디어 깊은 바다에 들어가는 날입니다.

“바당에서 욕심내민 안 뒈여. 물숨 먹엉 큰일 나난 조심허라게.”
할망이 백번쯤 말한 것 같아.

평생을 자연에 순응하며 성실하게 살아온 할머니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아이는 할머니의 말을 잊었어요. 산호 숲 사이 반짝이는 것이 탐이 나 손을 뻗는 순간 그만 물숨을 먹고 말았죠.

물개 할망

글 없이 이어지는 두 장의 그림만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아이가 산호 숲 사이를 뒹굴며 바다 깊이 떨어지는 동안 빛으로 넘실대던 바다는 어둠에 휩싸여 무섭고 두려운 장소로 변신해요. 그 순간… 아이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는 커다란 검은 그림자.

검은 그림자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전설 속 물개였을까요? 검은 해녀복을 입은 할머니였을까요? 그림책은 독자에게 마지막 상상을 맡기며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물개 할망

바다 밖으로 무사히 나온 뒤 내가 물었어.
“할머니는 바다에서 탐나는 거 없었어?”
“있었주. 근데 그보다 더 귀한 걸 지키젠 참앗주.”

상기된 얼굴로 할머니를 바라보는 아이. 이 얼굴은 아주 오래전 어린 소녀였던 할머니 얼굴일지도 몰라요. 사랑은 그렇게 이어지고 이어져 여기까지 내려왔겠죠. 더 귀하고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 이제 손녀는 먼바다로 나가는 할머니를 굳게 믿어요. 할머니는 분명 용왕의 딸이 맞으니까요.

그들이 일평생 지키고 가꾸어 온 바다를 마음에 그려봅니다. 삶의 모든 순간을 기뻐하고 감사하라, 욕심내지 말아라, 바다에서 나고 자라 한 평생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해녀들의 마음이 푸르른 바다와 함께 일렁입니다. 제주의 바다를 날씨에 따라 감정에 따라 또 바라본 각도에 따라 모두 다른 느낌으로 표현한 이명애 작가의 그림은 이야기의 감동을 배가시킵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성실하게 삶을 살아간 해녀 할머니가 전해주는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 “물개 할망”, 너울대는 푸른 파도 멀리 물질 나간 해녀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숙연해진 건 그렇게 우리들의 하루하루가 모여 역사가 되고 전설이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 함께 읽어 보세요 :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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