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 토토
책표지 : 보림
달려 토토

글/그림 조은영, 보림

※ 2011년 BIB 그랑프리 수상작


혹시 경마장에 가 보셨나요? 저는 10여년전에 한번 가봤습니다. 오늘 소개할 “달려 토토”의 주인공이 할아버지를 따라 간것 처럼 저 역시 지인을 따라서 구경을 갔었더랬죠. 넓디 넓은 잔디밭, 역동감 넘치는 말들의 질주, 사람들의 환호성… 여기까지는 아주 좋았습니다. 나중에 가족들과 함께 먹을 것 싸들고 나들이겸 와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만큼 말이죠. 그런데, 그 이후 혼자서건 가족과 함께건 경마장에 다시 가본적이 없습니다. 이 그림책에서도 나오는 것 처럼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광경들이 경마장 여기저기에서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뭐라고 표현하기 애매한 탁하고 칙칙한 분위기가 흐르기도 하고, 희비가 교차되는 순간 이후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아저씨들의 꺼림칙한 모습들이 유쾌하지 못한 기억으로 남아 있기때문인 듯 합니다. (10년전 일이니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죠. 요즘은 경마장 자체에서도 가족단위 방문자들을 위한 시설과 프로그램들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달려 토토”의 책표지만 보고 처음엔 강아지와 관련된 그림책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보통 토토는 강아지 이름이잖아요…(‘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키우던 강아지 토토 때문일까요 ^^) 예상과는 달리 “달려 토토”는 강아지가 아닌 경마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토토’는 주인공 여자아이의 말인형 이름이랍니다.

책표지를 넘기면 나오는 면지엔 기수와 경주마의 다양한 모습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강아지 이야기겠거니 하고 책장을 넘겼다가 ‘어, 경마장 이야기인가 보네?’라고 생각하면서 과연 경마장에 관한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려는걸까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앞에서 얘기했던것처럼 경마장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제 가슴 속에 깊이 남아 있었나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책을 한장 한장 넘겨 보면서 ‘아, 문제는 내 편견과 선입견이었구나! 그때 내가 보고 인지했던 풍경들이 아이들에겐 이렇게 비춰질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면지를 보고 경마장 이야기인걸 아는 순간 현실과 동떨어진 채 어줍잖게 미화해 버린 그림과 스토리들이 나오지 않을까 지레 짐작했었는데, 이런 제 예상과는 달리 조은영 작가는 경마장의 풍경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 줍니다. 물론, 아이의 눈과 마음으로 보고 느낀 것들을 말이죠.

아이의 순수함으로 현실을 재해석하다

10년전 제가 보며 눈살을 찌푸렸던 풍경들은 순수한 아이의 눈을 통해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표현됨으로써 그저 소박한 서민들의 삶의 희로애락의 모습으로 재해석됩니다. 만약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왜곡하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핑계로 어색한 동화를 만들어내려고 했다면 이 그림책은 어른들과 아이들 모두에게 외면받았을겁니다. 작가는 현실을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되 아이들의 순수함으로 현실을 필터링함으로써 어른과 아이 모두 거부감 없이 편안하게 보고 공감할 수 있는 그림책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인형은 토토다

나는 말을 본 적은 없지만, 말이 좋다

말을 좋아하는 주인공 꼬마는 어느 날 할아버지를 따라서 경마장에 가게 됩니다. 말 인형 토토도 좋지만 진짜 말을 보게 된다는 생각에 설레임 가득 안고 할아버지를 따라 나선 꼬마. 마치 서커스단처럼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행진을 하는 기수들도 구경하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진짜 말들도 보면서 신이 난 꼬마. 경기를 앞두고 마권을 사느라 잔뜩 예민해져 있는 어른들, 질주하는 말들을 보며 흥분을 가라앉힐 줄 모르는 어른들, 경주가 끝나고 승패가 갈리면서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 등의 이해하기 힘든 분위기들이 아이의 해맑은 눈을 통해 보여지는 그림책 “달려 토토”

변화무쌍한 그림들

“달려 토토”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조은영 작가의 변화무쌍한 그림입니다. 멀리서 보면 다 똑같아 보일 말과 기수들의 모습 하나 하나를 모두 개성 넘치게 그려냈습니다. 경주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말들 하나 하나를 모두 특징을 잡아내어 꼬마가 자신이 응원할 말을 골라 내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권을 구입하는 현장의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모습, 경주가 끝난 직후 희비가 교차되는 상황에서의 다양한 표정들이 아주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마권을 구입하기 위해 분석하는 사람들, 이사람 저사람 눈치 살피는 사람들 하나 하나의 모습이 아주 다채롭습니다.

꼬마가 자신이 응원할 말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1번 말은 계속 씩씩거려서 싫고, 7번말은 6번말의 엉덩이 냄새를 맡아서 더러워서 싫답니다. 마권을 사기 위해 심각한 어른들처럼 꼬마 역시 아주 신중하게 자신이 응원할 말을 고릅니다. 하지만 선택의 기준은 어른들과는 많이 다르죠.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말인형 토토와 닮은 9번말을 골랐네요.(안타깝게도 할아버지는 똥구멍 냄새나 맡던 7번말을 골랐다는…… ^^)

경주마들이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의 관중들의 모습입니다. 한명 한명 제각각의 표정들, 희비가 교차되는 순간을 재미있게 그려냈습니다. 그림 우측 하단 구석에 보면 주인공 꼬마가 활짝 웃는 모습이 보입니다. 자기가 응원하던 말이 제일 먼저 들어왔거든요 ^^ 그런데 꼬마를 데려간 할아버지는 표정이 영……. 손녀의 직감을 믿었더라면 할아버지도 활짝 웃고 계셨을텐데… 아쉽네요 ^^

자기가 걸었던 말이 1등으로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이 꼬마 아이의 눈에는 이렇게 비쳐졌나봅니다. 잔뜩 화가 나거나, 절망에 빠진 어른들의 모습이 아이의 눈엔 조금 무섭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하고 그랬던 모양입니다.

경마장을 화폭에 그대로 담다

“달려 토토”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한번 볼까요?

경주마들이 모두 출발선에 모였습니다.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말들의 표정이 사뭇 비장하기까지 합니다.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시나요? 재미있는건 꼬마가 응원하는 9번말은 왠지 좀 왜소해 보이기도 하고, 사나운 기세로 단숨에 뛰쳐 나가기 위해 잔뜩 날을 세우고 있는 다른 말들과는 달리 순하디 순한 표정으로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순수한 꼬마와 같은 느낌으로 작가가 표현한 듯 합니다.

양 손으로 7번말과 5번말 사이에 갈라진 틈을 잡고 좌라락 펼치면 아래와 같은 그림이 펼쳐집니다. 잔뜩 긴장한채 조금이라도 빨리 뛰쳐 나가기 위해 움찔거리고 있는 말들을 가로 막고 있는 게이트가 열리는 느낌으로 양쪽 대문 접지를 쫘악 펼쳐지는 순간 열두마리의 말들이 일순간 그림책을 보고 있는 우리를 향해 달려나오는 듯한 느낌입니다.

사방으로 흙이 튀고, 기수들의 몸이 말의 움직임에 맞춰 반응을 하는 모습들, 경주가 막 시작되어 속도를 내기 위해 한껏 힘을 다하는 말과 기수들의 모습이 역동적으로 잘 그려졌습니다.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죠.

다음 주에도 또 그 다음 주에도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경마장에 갔다.
그런데 점점 지겨웠다.
그리고 나는 토토를 다시 볼 수 없었다.
사실 토토를 다시 본다 한들 알아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언제부턴가 말들이 다 똑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돈을 건 말의 승패에 따라 어떤 어른들은 환호하고, 어떤 어른들은 좌절에 빠지는 모습들 사이에서 순수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말인형 토토와 닮은 9번말의 승리에 기뻐하는 꼬마의 모습. 말이 좋아서 신나게 할아버지 손 잡고 따라 나선 꼬마의 경마장 나들이는 이렇게 끝이납니다.

조은영 작가는 지난 번에 소개한 국악인 황병기를 그린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라는 그림책에서 처음 만난 작가입니다.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의 그림이 하도 인상적이어서 또 다른 작품이 있나 찾다 읽게 된 그림책이 바로 오늘 소개한 “달려 토토”구요.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력을 갖춘 작가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놀라운 것은 “달려 토토”가 작가의 첫번째 그림책이라는 사실.(참고로, 사진동호회 회원들과 경마장에 갔을때 실제로 할아버지를 따라 온 손녀딸을 보고 이 그림책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꾸밈 없이 바라보고, 그것을 그림책에 솔직하게 담아내는 것이 작가의 바람입니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경마장’은 우리 주변에 있고, 우리는 그곳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지만 때로는 모른 척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외면하기도 하는 일상을 아이의 시각에 맞춰 솔직하고 담담하게 풀어낸 이 책은 ‘그림책’에 대한 작가의 의지를 담은 첫번째 작품입니다.

– 그림책 “달려 토토”의 작가 소개 부분

아쉽게도 조은영 작가의 그림책은 몇권 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좀더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작가 스스로 말했듯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꾸밈 없이 바라보고 그것을 솔직하게 담아내는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길 기대해봅니다.

“달려 토토”, 아직 못보신 분들은 꼭 한번 보시길 권합니다. 보시고 나면 그림책 시상식 중 권위와 전통이 있는 BIB에서 왜 그랑프리를 탔는지, 제가 왜 적극적으로 추천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겁니다. ^^


Mr. 고릴라

Mr. 고릴라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 덕분에 그림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앤서니 브라운은 아닙니다. ^^ 이제 곧 여섯 살이 될 딸아이와 막 한 돌 지난 아들놈을 둔 만으로 30대 아빠입니다 ^^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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