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봤자 개구리

그래봤자 개구리

글/그림 장현정 | 모래알
(발행 : 2020/01/30)


개구리 모양으로 뚫린 표지 그림 위에 살포시 손가락을 얹고 찬찬히 그림을 따라가봅니다. 코에서 턱으로, 앞다리 지나 뒷다리, 등에서 눈 그리고 다시 코.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어요. 개구리 몸 가득 채운 개구리 알, 알에서 깨어나면 개구리… 삶은 어쩌면 이렇게 끝없는 순환 아닐까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영원한 순환.

‘저기서 정말 개구리가 나온다고?’ 오래전 생태공원 연못가에서 개구리 알을 보고 딸아이가 저런 질문을 했었어요. 그림책이나 도감으로 수없이 보았지만 실물을 마주하니 개구리 알과 개구리의 연관성을 찾기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때 그 개구리 알, 무사히 개구리가 되었으려나요?

그래봤자 개구리

수많은 개구리 알 사이, 개구리 알 하나는 생각합니다. ‘여기는 어디일까’. 개구리 알은 궁금했어요. 어디로 가야 할지, 가만히 기다려야 할지, 어떤 일이 펼쳐질지. 밀려가고 밀려오는 수많은 것들 사이 물밀듯 수많은 생각들이 밀려옵니다.

“그래봤자 개구리” 표지의 제목에는 ‘개구리’ 세 글자만 파란색으로 쓰여 있어요. 주인공 역시 수많은 개구리 알들 중 유일하게 ‘파란색’입니다. 고유한 존재로서의 나를 그렇게 파란 색깔로 구분 지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봤자 개구리

쫓고 쫓기고 먹고 먹히고… 그러는 사이 조금씩 변하고 있어요. 동그란 개구리 알에서 올챙이로, 올챙이에서 어느새 개구리로. 언제쯤 날 수 있을까 궁금했던 개구리, ‘지금이야’하고 기분 좋게 풀쩍 날아오릅니다. 그리곤 당당하게 외쳤어요.

나는 개구리

푸른 연잎 위로 뛰어올라 저마다 개굴개굴 울고 있는 개구리의 몸짓이 애처롭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저 작은 몸집으로 온 힘 다해 헤쳐온 삶의 고달픈 흔적이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일까요?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잘 했다 토닥토닥 위로해 주고픈 것도 잠시, 개구리의 삶은 개구리가 된 것으로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봤자 개구리

그래봤자 개구리

도처에 개구리를 노리는 것들 투성이인 무시무시한 세상, 힘껏 뛰어봤자 도망쳐 봤자 그래봤자 개구리. 황새에게도 먹구렁이에게도 족제비에게도 한 입 거리일 뿐인 개구리. 그래봤자 개구리.

목숨을 노리는 거대한 존재들, 그에 비해 너무나 작고 미약한 존재인 개구리들, 그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온 힘 다해 힘껏 뛰는 일입니다. 그렇게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것.

그래봤자 개구리

수풀 속으로 숨어든 개구리, 놀라고 지쳐 잔뜩 움츠러든 개구리. 세상은 쉽지 않아요. 만만치 않아요.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개구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아요. 두렵고 무섭고 힘들고 지쳐 그만 포기하고 싶지만 개구리는 두 눈 부릅뜨고 온 힘을 모아 소리칩니다.

그래봤자 개구리

그래! 나 개구리다!

저 작은 몸집에서 터질 듯 쏟아져 나오는 소리, 마치 ‘덤벼라 인생아!’ 하고 소리치는 것 같아요. 개구리를 따라 일제히 울려 퍼지는 개구리 소리, 폭포처럼 쏟아지는 소리에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나의 존재를 그대로 인정한 개구리에게 엄습하는 두려움은 이제 더 이상 예전의 두려움과는 달라요. 쓰디쓴 눈물 삼키고 용기 내어 세상 속으로 한 발 나아가는 개구리의 의연한 모습이 그래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일제히 연못을 가득 메우는 개구리들의 울음소리가 시원하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일 것입니다.

거칠고 대담한 선으로 그린 생명력 넘치는 그림과 여운 가득한 글로 치열한 삶의 모습을 그려낸 그림책 “그래봤자 개구리”, 진정한 용기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끝없는 도전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뜁니다. 저마다 펄떡 거리는 뜨거운 삶을 향해.

“맴” 이후 4년 6개월 만에 신작을 선보인 장현정 작가, “맴”이 소리로 여름을 그려냈었다면 “그래봤자 개구리”는 소리로 삶을 그려낸 그림책입니다.

장현정 작가 인터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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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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