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 그거 나 줘

잠깐만! 그거 나 줘

(원제 : Stop! Monsters!)
글/그림 마크 얀센 | 옮김 이경화 | 주니어김영사
(발행 : 2020/01/28)


커다란 뿔, 삐죽삐죽 무시무시한 이빨들, 빽빽하게 뒤덮인 초록색 털, 화면을 가득 채우는 괴물의 얼굴… 오싹해져 그림책을 만지는 것조차 무서워할 어린 친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게다가 제목도 “잠깐만! 그거 나 줘”라니. 저 무시무시한 괴물의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오는 것 같아요. 당장 내놓지 않았다가는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예요.

잠깐만! 그거 나 줘

시타와 샤피라가 함께 집을 나섰어요. 시타의 자전거에 실린 건 그릇, 손잡이 달린 냄비, 난로, 쇠사슬, 톱과 톱니바퀴 등등의 고물들. 두 아이는 이 고물들을 자전거에 싣고 치우러 가는 길이에요. 쓰레기장을 향해 룰루랄라 즐겁게 길을 가고 있는데…

잠깐만! 그거 나 줘

어디선가 나타난 커다란 초록 괴물, 괴물은 자매가 가던 길을 떡하니 가로막고는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쳤어요.

잠깐만!
“그거 나 줘.”

놀란 샤피라가 잔뜩 긴장해 있어요. 시타는 언니답게 침착하게 괴물이 가리키는 것을 바라보며 물어보았어요.

“녹슨 그릇과 냄비가 담긴 상자 말이야?”

뭔가 대단한 것을 요구할 것 같았는데 별거 아닌 ‘녹슨 그릇과 냄비가 담긴 상자’라니, 시타의 질문에 괴물의 대답이 재미있습니다.

잠깐만! 그거 나 줘

“아니!”
괴물이 대답했어.
“예쁜 보석이 달린 이 목걸이 말이야.
봐, 얼마나 예쁜지!”

주렁주렁 사슬에 매달린 녹슨 그릇과 낡은 냄비를 목에 두르고 만족한 듯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괴물. 살짝 아방가르드 스타일이라고나 할까요? 패션피플 괴물입니다. ^^ 아이들 눈엔 ‘고물’이지만 괴물 눈엔 ‘보물’입니다. 쓰레기를 손쉽게 처리한 시타와 샤피라도 예쁜 목걸이를 얻은 괴물도 만족스러운 순간이에요. 한결 홀가분해진 손수레를 끌고 아이들은 다시 길을 나섭니다.

하지만 오늘 고물을 버리러 가는 길은 쉽지 않아요. 두 아이가 가는 길목마다 커다란 괴물이 나타나 ‘잠깐만!’하고 길을 막아서거든요. 이들이 요구한 건 한결같이 아이들이 싣고 가던 각종 고물들입니다. 두 번째 괴물은 헌 난로를 색소폰으로 활용해요. 낡은 자전거는 괴물의 앙증맞은 안경이 되고 녹슨 톱과 톱니바퀴는 불 뿜는 무시무시한 괴물의 찰랑찰랑 귀여운 귀걸이가 되죠.

이제 남은 것은 없어요. 쓰레기장까지 갈 필요도 없이 집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잠깐만! 그거 나 줘

‘집으로 돌아가자’는 시타의 말에 함께 마음이 홀가분해진 것도 잠시, 자매 앞에 커다란 털북숭이 괴물이 나타났어요. 그리곤 이제껏 다른 괴물이 그랬던 것과 똑같이 소리쳤죠.

잠깐만!

내어줄게 아무것도 없는데… 어째야 하나 당황하고 있는 시타와 샤피라, 이들은 어떻게 될까요? 흠, 설마… 이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가 섬뜩하게 마무리되는 건 아니겠죠?

길모퉁이마다 나타나 ‘잠깐만!’하고 외치는 괴물들의 모습에서 산모퉁이 돌 때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하고 자꾸만 나타나는 전래동화 ‘해님 달님’의 호랑이를 떠올리게 됩니다. 더구나 마지막 장면의 괴물은 호랑이를 닮아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용기 모자”, “쉿! 나는 섬이야”, “아무 일 없었어”, “사자가 좋아요!”, “공룡은 없어” 등의 그림책 속에 아이같이 밝고 유쾌한 상상을 담아내는 작가 마크 얀센, 단순한 스토리에 담긴 화려한 그림은 그의 상상 세계를 더욱 환상적으로 보이게 만들어요. 고물을 소중하게 받아들고 행복하게 웃는 괴물들의 모습은 엄마 아빠가 쓸데없다고 버리려는 물건을 색다르게 변신 시키고는 활짝 웃고 있는 아이들 같아 절로 미소 짓게 되네요.

극적인 상황을 반복적으로 되풀이하며 독자들을 긴장 시키고 끝내 그들의 미소가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무장해제 시켜버리는 행복한 그림책 “잠깐만! 그거 나 줘”, 수명이 다했다고 생각했던 물건의 쓰임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쓸모의 기준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 함께 읽어 보세요 : 떨어질 수 없어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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