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내라

밀어내라

이상옥 | 그림 조원희 | 한솔수북
(발행 : 2019/12/20)


붉은 막대기 하나에 의지한 채 작은 얼음조각 위에 혼자 서있는 펭귄. 어쩌다 이렇게 홀로 표류하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이렇게 혼자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바라보니 펭귄이 더 쓸쓸해 보입니다. 어딘가 겁에 질린 모습 같기도 하고요. “밀어내라”, 명령조로 쓰인 제목에서 비장함이 느껴집니다. 표류하는 펭귄은 밀려난 것일까요? 밀어낸 것일까요?

이 그림책은 한 무리의 펭귄 이야기를 통해 차별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혐오 그리고 관용, 공존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생김이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가 밀어낸 것은 무엇인지, 과연 우리가 밀어내려고 했던 것들을 완벽히 밀어낼 수는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밀어내라

경직된 표정, 붉은 막대기, 붉은 눈, 붉은 목덜미, 경직된 표정으로 대열에 맞춰 걸어가는 그들에게서 비장함이 느껴집니다. 무리 지어 걸어가던 펭귄들 중 가장 목소리가 큰 펭귄이 소리칩니다.

“밀어내라! 밀어내라!”

펭귄들은 들고 있던 기다란 막대기를 일제히 들고 앞으로 나갔어요. 그리곤…

밀어내라

“우리와 다른 펭귄은 오지 마라!”
“다른 펭귄은 오지 마라!”
힘센 펭귄들이 긴 막대기로 밀어냅니다.

막대기로 밀어내는 펭귄 무리는 필사적입니다. 밀려난 펭귄 가족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에요.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어린 펭귄들은 이 상황이 몹시도 어리둥절한 모양입니다. 밀어내어 봤자 붉은 막대기 길이만큼인걸. 저들 역시 다가오는 그들 보다 조금 더 큰 빙하 조각 위에 있을 뿐인걸.

펭귄 무리들은 이어서 찾아오는 다른 동물들도 밀어냈어요. 물개 가족도 북극곰 가족도. 아기 펭귄들이 묻습니다. ‘왜 밀어내요?’하고. 밀어내야 할 이유는 아주 많아요. 태어난 곳이 달라서, 우리와 다른 동물이니까. 직면한 상황이 커다란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다양한 이유를 만들어냅니다. 곰들이 무거워 얼음이 녹는 것 같다, 물개들은 너무 많이 먹는다, 다른 동물들 때문에 우리가 먹을 게 부족해질 것 같다는 가짜 뉴스를 만들어내며 집단을 선동합니다.

밀어내라

잠시 후 쩌저적 커다란 소리를 내며 아이들이 놀고 있던 빙하 조각이 떨어져 나갔어요. 놀란 아이들이 다급하게 엄마 아빠를 불렀지만 한쪽 끝에서 다른 이들을 밀어내는데 몰두하고 있는 어른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어요. 아니 들을 수 없었어요. 광기 어린 눈동자, 흥분된 몸짓, 차별과 혐오가 어른들의 눈과 귀를 막아버렸습니다.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엄마 아빠를 바라보는 아기 펭귄들의 망연자실한 표정은 어른 펭귄들에 의해 밀려났던 다른 동물들의 표정을 생각나게 합니다. 어른 펭귄들이 밀어낸 건 결국 무엇이었을까요?

펭귄들이 사는 빙하는 8자를 눕힌 무한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뱅글뱅글 돌고 돌아 모두 원점으로 돌아오는 모양이죠. 내가 행한 일들이 결국 모두 나에게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습니다. 밀어내고 밀어내던 모든 행동들이 나에게로 돌아오고 마는… 한쪽을 누르면 반대쪽은 튀어 오르게 마련입니다. 한쪽에서 밀어내는데 온 힘을 쏟아버리니 결국 균형이 깨져 버렸고 한쪽이 그만 떨어져 나가고 말았습니다.

‘다름’의 이유를 굳이 찾으려 들자면 무한대일지도 모릅니다. 국가가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나이가 다르고 생김이 다르고 크기가 다르고… 반대로 ‘같음’을 찾는 것 역시 무한대입니다. ‘다름’은 우리를 점점 더 작게 쪼개고 나누지만 ‘같음’은 우리를 점점 더 커다랗게 만듭니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우리가 있고, 각각의 우리는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이어져 있어요. 서로를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더 큰 우리가 될 수 있어요. 함께 더 건강하고 튼튼한 우리로.

더불어 함께의 의미를 되새겨 주는 그림책 “밀어내라”, 우리가 그동안 밀어낸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수많은 밀어냄 속에 혹시 우리가 있었던 건 아닌지. 상대방을 향한 냉혹한 긴 막대기와 사납고 무서운 눈빛을 거두며 세상을 바라봅니다. 사랑의 토대는 이해, 우리는 지금 이해와 소통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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