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꼭! 꼭 지킬게
책표지 : Daum 책
약속 꼭! 꼭 지킬게(원제 : Un Jeune Loup Bien Éduqué)

글 장 르로이, 그림 마티유 모데, 옮김 김미선, 키위북스


“약속 꼭! 꼭 지킬게”는 평범한 내용을 독특한 스토리로 풀어낸 장 르로이의 간결하지만 개성 넘치는 이야기와 마치 웹툰을 보는 듯 심플하면서도 익숙한 느낌의 마티유 모데의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입니다.

두 작가의 독특한 감성은 아이들에게 현실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듯 합니다. “약속 꼭! 꼭 지킬게”에서 숲은 희망 가득하고 향긋한 풀내음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초록색이 아닙니다. 황토색에 가까운 진한 노란색이나 짙은 갈색이 그림책 전체의 배경을 이루고 중간 중간엔 배경 전체가 빨갛게 물든 장면들이 서슴지 않고 나옵니다.

약속 꼭! 꼭 지킬게

토끼, 암탉, 그리고 소년을 차례대로 사냥하는 순간의 배경은 모두 빨간색입니다. 늑대가 날카로운 이빨로 사냥감을 물어뜯는 리얼리티를 배제했음에도 불구하고 빨간 배경색 하나만으로 그 순간의 느낌을 섬찟하리만치 현실감 있게 표현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물론 친근한 느낌으로 그려진 캐릭터들의 표정들을 통해 그런 느낌들에 대한 거부감을 최소화 시키고 자신들이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자 하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잘 보여주고 있기때문에 그림책을 보는 동안 불편한 느낌은 전혀 없습니다.

현실을 솔직하면서도 함축적인 표현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약속 꼭! 꼭 지킬게”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인상과 결말에 대한 상상을 하게 되는 그림책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열린 스토리, 열린 결말로 가득한 “약속 꼭! 꼭 지킬게”의 마지막 장면을 한번 볼까요.

처음으로 혼자 사냥을 나선 꼬마 늑대. 토끼를 잡았는데 마지막 소원으로 책을 읽어 달랍니다. 집에 돌아가서 책을 가져 오는 동안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기로 약속했던 토끼는 늑대가 책을 가지러 간 사이 도망쳐 버립니다. 다음엔 암탉을 잡았는데 이 녀석은 마지막 소원으로 음악을 들려 달랍니다. 부모님에게서 마지막 소원은 반드시 지켜줘야 한다고 배운 꼬마 늑대는 어쩔 수 없이 악기를 가지러 집으로 갑니다. 깃털 하나 움직이지 않기로 약속했던 암탉 역시 늑대가 돌아 왔을때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화가 잔뜩 난 꼬마 늑대가 마지막으로 잡은 건 소년입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토끼와 암탉때문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났지만 예의 바르게 마지막 소원을 부탁하는 소년을 위해 그림 그릴 도구를 가지러 집으로 갑니다. 소년의 마지막 소원은 자기를 그려달라는거였거든요.

늑대가 그림 그릴 도구들을 가지고 돌아오니 머리카락 한올 움직이지 않겠다던 소년은 약속을 지켰어요. 그리고 소년은 늑대가 그려준 그림이 마음에 쏙 들어서 친구들에게 멋진 그림을 보여주고 싶다며 늑대를 자기 집으로 데려갑니다. 마지막 소원을 들어줬으니 그 자리에서 바로 소년을 잡아먹고 싶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예의바른 소년의 태도에 어쩔 수 없이 배고픈걸 꾹 참고 소년을 따라 갑니다(이 부분에서 전 소년이 꾀를 부려서 꼬마 늑대가 또 골탕을 먹지 않을까 마음을 졸였습니다 ^^)

약속 꼭! 꼭 지킬게

소년의 집에 들어서는 꼬마 늑대를 보고 토끼와 암탉이 화들짝 놀랍니다. 꼬마 늑대의 표정이 마치 ‘이 녀석들 딱 걸렸어!’ 하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다음 장면에서 겁에 질린 토끼와 암탉은 보이지 않고 걸어 나가는 꼬마 늑대의 뒷모습만 보입니다. 그리고 꼬마 늑대가 그려준 그림을 벽에 거는데 여념이 없는 소년은 이렇게 말하며 그림책은 끝이 납니다.

약속 꼭! 꼭 지킬게

“약속은 꼭 지키는 친구란다”

벽에 못질을 하면서 무심한듯 내뱉는 소년의 한마디. 과연 토끼와 암탉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소년의 마지막 말이 섬뜩하게 느껴진 분들은 아마도 토끼와 암탉은 늑대에게 잡아먹혔을거라고 생각할 것 같고, 그냥 말 그대로 ‘약속을 잘 지키는 좋은 친구야’ 정도로 받아들인 분들은 늑대가 토끼와 암탉을 용서하고 모두가 친구가 되었을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가정교육의 중요성

그림책의 원래 제목은 불어로 ‘Un Jeune Loup Bien Éduqué’입니다. 우리말로 옮겨 보면 ‘예의범절이 바른 어린 늑대’ 라고 해요. 직역을 해 보면 ‘교육을 잘 받은 어린 늑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약속 꼭! 꼭 지킬게”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중에서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은 건 과연 누구일까요?

우선 꼬마 늑대를 한번 볼까요. 꼬마 늑대의 부모님은 “마지막 소원은 꼭 들어줘야 한단다.” 라고 가르치셨대요. 이 한마디의 가르침엔 깊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사냥한 먹잇감의 마지막 소원을 반드시 들어줘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생명을 빼앗는 것에 대해서 그만큼의 책임감을 가지라는 뜻이고, 먹잇감 이전에 하나의 생명이었음을 잊지 말고 존중하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 아닐까요? 단순히 놀이나 유희를 위해 다른 생명에게 위협을 가해서는 안되며 오로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만 사냥을 제한한다는 뜻도 담겨 있을테구요.

그다음으로 약속을 잘 지키는 소년입니다. 엄마 아빠는 소년에게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라고 가르치셨으니 소년 역시 좋은 가정교육을 받은 셈이네요. 좋은 친구를 사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는거라고 말이죠.

그럼 꼬마 늑대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토끼와 암탉은 가정교육을 받지 못한걸까요? 제가 보기엔 이 두 친구 역시 엄마 아빠에게 삶에 대한 훌륭한 가르침을 받고 자란것 같아요. 그림책엔 나와 있지 않지만 이들의 부모님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삶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라고 가르치지 않았을까요? 늑대에게 사로잡힌 위기상황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기지를 발휘해서 건강한 모습으로 엄마 아빠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니까말이죠.

과연 누가 살고 누가 잡아 먹힐까?

자, 그럼 제가 이 그림책을 보고 상상해낸 결말을 한번 이야기해 볼께요. 제 생각엔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되더라도 살아남는건 소년이 아닐까싶습니다. 물론, 토끼와 암탉까지도 모두 살아 남았을 가능성이 높구요.

우선, 토끼가 약속을 지켰다면 책을 다 읽고 난 후 늑대에게 잡아먹혔겠죠. 이 경우에는 암탉과 소년은 살 수 있을겁니다. 꼬마 늑대의 부모님은 사냥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쳤으니 토끼를 배부르게 먹고 난 꼬마 늑대는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았을테니까요. 암탉과 소년은 꼬마 늑대와 마주칠 일이 없었겠죠.

마찬가지로, 토끼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도망친 후 두번째로 잡힌 암탉이 약속을 지켰다면 토끼와 소년은 살 수 있었겠죠. 토끼는 이미 부리나케 엄마 품으로 도망쳤고, 암탉을 먹고 나서 배가 부른 늑대는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고 돌아갔을테니 소년과는 만날 일이 없었을테니까요.

그리고, 이 그림책의 내용대로라면 토끼와 암탉 모두 약속을 지키지 않고 도망 가버리는 바람에 소년이 잡아먹힐 위기에 놓이긴 했지만 위 그림에서 보듯이 결국엔 꼬마 늑대가 토끼와 암탉을 끌고 나가서 잡아 먹고 나면 배가 부르니 소년까지 잡아먹진 않겠죠? ^^

마지막으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배운 토끼와 암탉은 또 다른 꾀를 부려서 다시 한번 꼬마 늑대의 손아귀에서 도망쳤을 가능성도 있어요. 그렇다면 집안에 아무것도 모른 채 남은 소년이 위험해진거 아닐까요? 그런데, 제 생각엔 꼬마 늑대는 비록 토끼와 암탉을 놓쳐버려서 배가 고프긴 해도 소년을 잡아먹진 않았을 것 같아요. 약속을 잘 지키는 소년과는 친구가 되고 말았으니까요. 세상에 친구를 잡아 먹는 꼬마 늑대가 있으려구요. ^^

결국 이 책의 내용과 제 마지막 결론을 합치면 토끼, 암탉, 소년 모두 살아 남을뿐만 아니라 꼬마 늑대와 토끼, 암탉, 소년 모두 사이 좋은 친구가 되었을겁니다. 왜냐구요? 토끼와 암탉은 도망치고 꼬마 늑대와 소년은 친구가 되었으니 다음에 꼬마 늑대가 토끼나 암탉을 사냥하더라도 소년이 자기 친구라고 하면 안잡아 먹을테니까요. 세상에 친구의 친구를 잡아 먹는 꼬마 늑대가 있으려구요. ^^

작가가 던지는 또 다른 화두

이 그림책을 보고 난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저마다 순수하고 즐거운 상상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이 책을 본 어른들은 조금 더 많은 여운을 갖게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약속 꼭! 꼭 지킬게보편적인 관점에서 “약속 꼭! 꼭 지킬게”를 읽고 난 후 얻는 교훈은 약속에 대한 책임감입니다. 약속은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일단 약속을 했다면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눈 앞에 이익을 위해서 약속을 어기는 것이 당장엔 자신에게 유리해 보이지만 결국엔 그로 인해 생기는 좋지 않은 일이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인생이다, 내가 좀 손해를 본다 해도 약속을 지키는 것이 결국엔 나에게 득이 된다… 이런 보편 타당한 교훈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삶이 과연 꼭 그렇게 수학문제 풀듯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게 아니다 보니 우리 엄마 아빠들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약속은 무조건 지켜야만 하는것인가? 그 약속의 내용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일단 약속을 했다면 무조건 지켜야만 하나? 나쁜 사람과의 약속도 무조건 지켜야만 하는건가?

약속에 대한 이런 역설적인 문제들을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가르치고 이해시킬 것인가?

‘경우에 따라서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되기도 해’라는 엄마 아빠의 말에 순수하고 맑은 아이들이 과연 어떤 질문을 할지 지레 겁부터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