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체험학습 가는 날
(원제 : Field Trip To The Moon)
글/그림 존 헤어 | 행복한그림책
(발행 : 2019/07/15)
며칠 전 미국의 SpaceX가 첫 번째 민간 유인 우주선을 발사했고 무사히 우주정거장과의 도킹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민간 유인 우주선 시대가 시작됐다, 한겨레, 2020/05/31). SpaceX는 인류의 화성 정착을 목표로 설립한 회사인데 그 첫 걸음이 순조롭게 시작된 셈이네요. 머지 않아 우리 아이들이 달이나 화성으로 체험학습을 가는 일이 곧 생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굳이 우주선이 아니어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만 한다면 이 세상뿐만 아니라 저 우주 끝 어디에라도 여행은 가능하죠. 존 헤어의 첫 그림책 “달 체험학습 가는 날”과 함께 달로 떠나볼까요? 노란 우주선을 타고 말이죠.
상상만 해도 신나는 달나라 여행. 하지만 아이들에게 ‘학습’이 붙은 여행은 우리 어른들 생각만큼 즐거운 일은 아닌가 봅니다. 앞장서 가며 열심히 설명을 늘어놓기 바쁜 선생님과 달리 아이들은 제각각입니다. 심지어 저기 한 친구는 한참을 처진 채 딴 생각에 빠져 있는 것 같네요.
뒤처져 있던 친구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나봅니다. 하나라도 더 챙겨 보여주고 설명해주고 싶은 선생님과 달리 아이에게는 지금 눈 앞에 펼쳐진 멋진 우주와 파랗게 빛나는 지구를 스케치북에 담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열심히 그림을 그리던 아이가 잠깐 졸다 정신을 차려보니 친구들과 선생님이 온데간데 없습니다. 보이는 거라고는 친구들의 발자국과 까만 하늘 뿐. 허겁지겁 크레용과 스케치북을 챙겨서 아까 우주선이 착륙했던 곳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우주선은 출발한 뒤였습니다. 아무리 손을 흔들며 소리를 질러봐도 우주선은 점점 멀어져만 가고 결국엔 수많은 별들 중 하나인 양 노란 점처럼 작아져버리고 마네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쩌겠어, 맘 편히 그림을 그리며 기다리고 있으면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데리러 올 거야… 아이는 이런 생각이었을까요? 놀란 것도 잠시 뿐 멀어져가는 우주선을 망연자실 바라보던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서 다시 그림 그리기에 푹 빠져듭니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도 보이지 않던 모습들이 아이 주변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땅 속에서, 바위 뒤에서 하나둘 나타나는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들.
그림에 온통 정신을 쏟고 있던 아이도 결국은 낯선 친구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차분한 아이에 비해서 소스라치게 놀라는 낯선 친구들의 모습이 재미납니다. 바위 뒤로 숨었던 친구들이 하나둘 고개를 삐죽 내밀더니 활짝 웃거나 두 팔 벌려 반기는 모습들도 재미있구요.
오로지 회색 한 가지만으로 채워져 있던 달에서 알록달록한 크레용은 아주 특별합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색깔들에 낯선 친구들은 완전히 매료된 것 같아요. 스케치북에 바위에 신나게 그림을 그려대고 있는 걸 보면 말이죠.
그 때 아이를 두고 떠났던 우주선이 다시 돌아옵니다. 선생님이 저 멀리서 달려오는 사이에 낯선 친구들은 허둥지둥 숨어버립니다.
선생님이 아이를 와락 껴안습니다. 낯선 친구들은 이미 모두 숨어버렸고 보이는 건 그들이 남긴 낙서들 뿐입니다. 달로 되돌아오는 내내 아이 걱정에 어쩔 줄 몰라했던 선생님이었지만 아이와의 감동적인 포옹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바위 위에 그려진 낙서들을 발견했거든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관광지라면 늘 낙서와 쓰레기 때문에 늘 골치가 아프죠. 낯선 친구들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선생님은 당연히 범인은 아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고, 방금 전까지 꼬옥 안아줬던 아이를 세워놓고 한참을 잔소리를 늘어놓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이는 낙서를 지우고 선생님은 주변에 버려진 스케치북 종이들을 줍습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기가 죽은 아이 모습에 웃음이 납니다. 선생님이 꼬옥 안아줬을 때 얼마나 반가웠을텐데… ^^
달 체험학습 가는 날의 해프닝은 이렇게 마무리 됩니다. 선생님 손을 잡고 우주선을 향하던 아이가 뒤를 돌아봅니다. 방금 전까지 재미나게 어울렸던 낯선 친구들이 고개만 살짝 내밀고 잘 가라고 팔을 흔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주선의 라이트 두 개가 마치 눈 같지 않나요? 우주선도 낯선 친구들의 존재를 발견했는지 흠칫 놀란 표정 같아 보이는데요? 우주선에 타고 있던 친구들은 달에 혼자 남았던 친구가 마냥 부럽지 않았을까요? 자기들은 못해본 모험을 저마다 상상하면서 말이죠. 그 부러움의 눈길로 창밖을 바라보던 아이들도 모두 낯선 친구들을 발견했을 것만 같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달에 사는 낯선 친구들을 선생님만 못 본 셈이네요.
“달 체험학습 가는 날”은 글 없는 그림책입니다. 그림은 같지만 그림 속 다양한 상황들을 읽어내는 건 보는 이들마다 조금씩 다르죠. 주어진 그림에 저마다의 상상력이 보태지니까요. 이게 바로 글 없는 그림책의 매력입니다.
여러분들의 눈과 마음, 그리고 즐거운 상상으로 “달 체험학습 가는 날”의 노란 우주선을 타고 멋진 달나라 여행 즐겨 보세요!
※ 함께 읽어 보세요
- 타다, 아폴로 11호 / 브라이언 플로카 / 너머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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