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의 달빛 담요

소피의 달빛 담요

(원제 : Sophie’s Masterpiece)
에일린 스피넬리 | 그림 제인 다이어 | 옮김 김흥숙 | 파란자전거
(발행 : 2001/12/01)


검은 외투를 입은 이가 골무 의자 위에 앉아 팔다리를 부지런하게 움직여 가느다란 하얀 실로 아름다운 망사 커튼을 만들고 있어요. 길쭉길쭉한 팔 다리가 여덟 개인 그녀의 정체는 거미. 이름은 소피입니다. 일에 몰입해 있는 그녀에게서 예술가의 고뇌가 느껴집니다. 혼을 불살라 만든 예술품은 그것을 원하는 사람, 작품에 담긴 진정성을 알아보는 이 앞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소피는 보통 집거미가 아니었어요.
소피는 예술가였지요.

소피의 달빛 담요

소피가 만든 거미줄은 너무나 아름다워 친구들은 소피를 놀라운 아이라고 불렀어요. 다들 소피라면 언젠가 정말 멋진 작품을 만들 거라고 말했습니다.

어른이 된 소피는 독립해 비이크맨 씨의 하숙집에서 살게 됩니다. 거대한 저택을 마주한 소피는 어떤 기분일까요? 약간의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감정이었겠죠. 새 출발을 앞둔 이들의 마음이 그렇듯이. 여기저기 낡고 빛바랜 것 들로 가득한 집 안을 둘러보던 소피는 제일 먼저 비단 거미줄에 황금빛 햇살을 섞어 현관에 달 거미줄 커튼을 짜기로 마음먹었어요.

소피의 달빛 담요

“으악! 우리 집 현관에 거미는 안 돼!”

소피는 그 집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어요. 소피가 거미라는 사실에 다들 놀라 소스라쳤죠. 커튼을 짜던 소피를 향해 걸레를 휘두르며 소리를 지르는 주인아주머니를 피해 선장 아저씨가 사는 다락방으로 피신한 소피는 아저씨에게 파란색 새 옷을 만들어 주려고 했어요. 하지만 아저씨는 소피를 보자마자 놀라 지붕으로 도망쳤어요. 낡고 더러운 슬리퍼를 신고 있는 요리사에게 소피가 새 슬리퍼를 한 켤레 짜주려고 했지만 요리사는 소피의 마음을 알 턱이 없었어요. 마음을 알아주는 이를 만나는 일이 이렇게나 어렵습니다. 상대를 돕기 위해 다가갔지만 그런 소피의 마음을 다들 알아보지 못한 채 소피의 외양만 보고 다들 기겁을 해버리니 말이에요.

소피의 달빛 담요

자신을 혐오하는 이들을 피해 도망친 소피가 정착한 곳은 3층 젊은 여자 혼자 사는 방의 뜨개질 바구니 속. 가파른 계단을 올라 긴 여행을 마친 소피는 이제 할머니 거미가 되었어요. 물론 이곳에 살던 젊은 여인도 어느 날 자신의 뜨개질 바구니에 사는 소피를 발견했어요. 어디론가 떠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던 소피는 겁에 질렸지만 젊은 여인은 다른 사람과 달리 소피를 보고 놀라지 않았아요. 그저 조용히 미소만 짓고는 바늘과 실을 집어 들어 뜨개질을 시작했을 뿐.

뜨개질하는 여인, 뜨개질 좋아하는 거미.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소피와 여인이 만났습니다. 여인은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 쉬지 않고 뜨개질을 해요. 소피에겐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며 잘 하는 일이 뜨개질이에요.

소피의 달빛 담요

매일 같이 뜨개질을 하던 여인이 털실이 모자라 아기의 담요를 완성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소피는 마지막 힘을 다해 여인과 태어날 아기를 위한 담요를 짜기로 마음먹습니다. 기력이 쇠해진 소피에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어요.

‘저 달빛으로 아기 담요를 짜야겠군. 물론 별빛도 조금 섞어서 말이야.’
담요를 짜기 시작하자 자꾸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어요.
소피는 그 모든 것을 넣어 담요를 짜기 시작했어요.
향기로운 솔잎 이슬 조각…… 밤의 도깨비불……
옛날에 듣던 자장가…… 장난스런 눈송이……

젊은 여인은 소피가 창문턱에 남겨놓은 아름다운 선물을 갓 태어난 아기에게 덮어주었어요. 달빛 담요는 자신에게 친절을 베푼 이에게 건네는 감사의 선물이자 자신의 소명을 다해 만들어낸 소피 생애 최고의 작품이었지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보통의 사람들이 베푸는 친절, 따스한 마음 아닐까요? 쓰디쓴 삶 속에서 만난 따뜻한 친절을 잊지 않고 자신의 마지막 소명을 다하는 소피, 그녀가 남긴 생애 최고의 작품 거미줄 담요에는 세상에 대한 믿음과 사랑, 감사의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글을 쓴 에일린 스피넬리는 젊은 시절 살았던 하숙집에서 형편이 어려웠던 아기 엄마가 집주인에게 받은 낡은 담요를 갓 태어난 아기에게 덮어주었던 일을 기억하며 이 이야기를 썼다고 해요. 소피가 한 올 한 올 거미줄을 자아 달빛 담요를 만든 것처럼 에일린 스피넬리 역시 오래전 기억을 더듬으며 한 줄 한 줄 이야기를 엮어 이 그림책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림 작가 제인 다이어는 “쿠키 한 입의 인생 수업”을 그린 ‘쿠키 한 입’ 시리즈의 그림 작가입니다. 제인 다이어는 이 그림책의 주인공 소피를 피사우리나 미라(Pisaurina Mira) 거미를 모델로 그렸다고 해요. 길쭉길쭉한 팔 다리가 소피와 많이 닮았어요. 제인 다이어는 본문 첫 페이지에 ‘파사우리나 미라’라는 글자와 함께 소피의 모델을 그려 넣었으니 다들 한 번 찾아보세요. 또 글이 있는 페이지 가장 자리에 소피의 은빛 거미줄을 연상시키는 프레임이 걸려있으니 이것도 눈여겨 살펴보시구요. 이 이야기를 위해 마치 소피가 정성을 다해 거미줄로 자아 걸어놓은 것 같아요.

담요 한 올 한 올 새겨 넣은 소피의 숭고한 사랑에 마음이 아릿해지는 그림책 “소피의 달빛 담요”, 예술가 거미 소피가 삶의 소명을 다할 수 있었던 건 젊은 여인이 베푼 배려와 친절입니다. 사랑은 돌고 도는 행복한 마법,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커다란 힘입니다.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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