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를 든 신부

노를 든 신부

글/그림 오소리 | 이야기꽃
(발행 : 2019/11/25)


제목도 그림도 강렬합니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기다란 노를 들고 홀로 숲길을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어요. 보통 신부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조금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어쩌다 신부 혼자 숲길을 걷고 있는지, 들고 있는 노는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집니다.

외딴섬에 사는 소녀는 친구들이 다들 신부와 신랑이 되어 섬을 떠나자 결심을 했어요.

‘나도 신부가 되어야겠어!’

노를 든 신부

모험을 떠나기로 결심한 딸을 자랑스러워하며 어머니와 아버지는 드레스와 노 하나를 건네주셨어요.

“이제 소녀가 아니라 신부구나.”

부모님이 주신 것은 성장한 딸이 머물 집도 돈도 아닌 드레스와 노 하나. 쓰임새를 예측할 수 없는 노도 그렇지만 드레스 모양도 조금 특별해요. 하늘하늘하고 아름다운 모양새가 아닌 우락부락 근육질 느낌이랄까요? 신부는 그것을 받아들고 씩씩한 표정으로 이제껏 살아왔던 집을 떠나 세상 밖으로 나갑니다. 신부는 조금 긴장이 되면서도 마음이 설렜어요.

노를 든 신부

신부는 섬 여기저기를 떠돌며 자신이 타고 나갈 배를 찾았어요. 신부를 찾는 배는 여기저기 있었지만 정작 마음에 드는 배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어떤 이는 신부가 가진 노 하나로는 갈 수 없다며 신부를 태워주지 않았고, 어떤 이는 수많은 신부들을 한 배에 태워놓고 자신의 배에 타면 절대 외롭지 않을 거라 말하기도 했어요. 호화로운 유람선을 자랑하며 이 배에 타면 모두가 부러워할 거라 말한 이도 있었지만 신부는 배에 오르지 않았어요.

섬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배를 찾지 못한 신부는 숲속을 걸으며 생각했어요.

“차라리 심심한 게 나은지도 모르겠어.”

노를 든 신부

홀로 숲속을 걷던 신부가 만난 건 늪에 빠진 사냥꾼. 다급한 상황 앞에서 신부는 사냥꾼을 구해줄 밧줄을 찾았어요. 그러자 사냥꾼이 말했어요.

“당신에겐 기다란 노가 있잖소!”
신부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습니다.
“오! 당신은 천재예요!”

부모님이 주신 노를 지금까지 어떻게 쓸지 몰랐던 신부, 그 노를 사용해 위험에 빠진 이를 구하고 나서야 깨닫게 됩니다. 노가 꼭 물살을 젓는 용도가 아니어도 된다는 사실을. 심심하고 무료했던 나날을 보내며 그저 배를 타고 섬 밖으로 나갈 궁리만 했던 지난날을 잊고 이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신부는 기다란 노를 사용해 과일을 따고 요리도 하고 커다란 곰과 무시무시한 격투도 했어요. 주린 배를 채우고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된 신부, 비로소 완벽하게 독립해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이제 신부에게 필요한 것은…..

노를 든 신부

자신의 꿈을 찾는 것! 꿈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텅 빈 마음을 채워주고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꿈꾸는 이는 절대로 한곳에 머무르지 않아요. 늘 변화를 원하고 변화를 즐깁니다.

신부는 마을로 내려가 사람들과 함께 야구를 했어요. 기다란 노를 들고 타자석에 선 신부의 모습이 듬직하고 당당해 보입니다. 야무지게 다문 입, 커다란 노를 꼭 쥔 두 팔, 그녀가 얼마나 단단하게 성장했는지 보여주고 있어요.

노를 든 신부

타-악!
홈런 공이 끝없이 날아갔습니다.
오오! 사람들이 신부를 보며 환호했습니다.

강렬한 색감과 거친 붓 터치로 표현한 이 장면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후련해지게 만듭니다. 노 하나 들고 세상 밖으로 당당하게 나선 신부, 수많은 도전과 끝없는 시행착오 속에서도 덤덤히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용기 있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그 후로 신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소문을 들은 유명한 야구팀 감독들이 앞다투어 신부를 찾아왔어요. 이제 신부는 섬을 나갈 배를 타기 위해 사람들을 찾아다닐 이유가 없어졌어요. 모두가 신부를 자기 팀에 데리고 가고 싶어 했으니까요. 신부는 추운 지방 야구 팀과 계약했어요.

“왜냐하면, 하얀 눈을 보고 싶으니까요!”

배가 아닌 비행기를 타고 섬을 떠나게 된 신부, 그녀가 다시 씩씩한 걸음으로 비행기를 타러 갑니다. 그녀는 꿈을 안고 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스스로 결정해 떠난 그곳에서 신부는 다시 새로운 꿈을 꾸겠죠. 꿈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 지금까지의 꿈은 새로운 꿈의 씨앗이 되니까요.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선 한 걸음 내딛는 것. 발걸음을 떼어 일단 시작해야 큰 걸음도 내디딜 수 있습니다. 작은 행동이 커다란 변화와 기회를 불러옵니다.

꿈에 이르는 과정을 담담하고 아름답게 묘사한 그림책 “노를 든 신부”,  자칫 뻔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이토록 가슴 뜨겁게 그려낸 작가의 기지에 감탄하며 오늘 내 손에 들린 것을 다시 한번 꼭 쥐여봅니다. 어제 보다 한 뼘 더 단단해져 있을 오늘의 나를 그려보면서…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